정종철 /사진=스타뉴스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얘기가 나오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표정이 진지해지고 갖은 쓴소리를 쏟아냈다. 무턱대고 내뱉는 말들은 아니었다. 고민이 담겨 있었고, 애정도 섞여있었다.
개그맨 정종철(39)을 만났다. 그는 최근 제작자로 활동 중이다. 'ODJ'라는 이름으로 후배들을 모아 '비트파이터'라는 비트박스 전문 그룹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ODJ는 '개콘' 시절 그를 대표했던 '옥동자'에서 따온 것이다. 후배 자랑을 한창 하던 그는 자연스레 '개콘' 얘기로 옮겨가자 자리를 고쳐 앉았다.
"지금 '개콘'이 위기라고 하는데 저는 몇 년 전부터 걱정이 크게 됐어요. 어느 날 인가 '개콘'을 보는데 남, 여 개그맨들이 문 앞에서 연애하는 내용이 나왔어요. '저게 뭐지?, 저게 개그인가'라는 생각부터 들더라고요. 그건 적어도 제가 아는 개그는 아니었어요. 제가 아는 '개콘'의 모습도 아니었고요. 어설픈 시트콤이죠."
정종철은 "언제부터인가 '개콘' 개그맨들이 개그가 아닌 시트콤을 어설프게 따라하고 있다"며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캐릭터도 없고, 그냥 보기만 해도 웃기는 코너도 없다"고 했다.
"지금 하는 '개콘'을 보면 누군가가 단 하루라고 없으면 안되는 코너는 없어 보여요. 그 누군가를 대신할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거죠. 그만큼 개그만 각자의 개성이 없어 보여요. 선배 개그맨들도 다 떠나가고 중심 잡아주는 사람 없이 고만고만한 친구들끼리 고군분투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그는 '개콘'의 가장 문제점은 타겟 시청층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TV를 잘 보지 않아요.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이 보고 싶은 걸 찾아보는 식이죠. 근데 '개콘'을 보면 어린 친구들에게 맞춰져 있어요. 정작 그 시간에 TV를 보는 30대 후반 40대, 50대 시청자들은 '개콘'을 보면 무슨 내용인지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어요. TV 앞에 있는 시청자와 '개콘'이 노리는 시청자가 다른 겁니다."
정종철은 "예전에는 한 코너가 인기가 있으면 그 코너를 보려고 채널 고정을 하는 시청자들이 있었다"며 "그렇게 보다가 다른 코너들도 인기도 얻고, 스타도 나오곤 했는데 이제는 필요한 코너를 다시보기로 쏙쏙 보는 시대라 과거 '개콘'의 전략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일요일 오후 9시 황금 시간대가 모든 걸 보장해주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정종철의 쓴소리는 계속됐다. 이번에는 '개콘' 특유의 '작가주의'를 꼽았다.
"제발 대본에 의존하는 개그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자꾸 예전 얘기해서 그런데 예전에는 수요일이 녹화면 목요일부터 화요일까지 대학로 공연장에서 공연하고 거기서 반응이 제일 좋은 걸로 바로 녹화를 했어요. 물론 대본은 있었죠. 하지만 그 당시 대본은 개그를 위한 대본이 아니라 녹화 날 카메라 커트에 참고 하기 위해 필요할 뿐이었죠. 개그맨들이 작가들에게 불러줬어요. 자 이렇게 이렇게 쓰라고. 그런데 지금은 그게 반대가 됐죠. 작가들이 대본을 쓰고 개그맨들이 그것대로 해요. 제가 만약 지금 '개콘'에서 개그를 하면 저는 잘할 자신이 없어요. 저는 대본대로 하는 개그가 아니라 흐름을 보고 남의 개그를 받아치는 형태의 개그거든요. 이런 개그는 대본이 있는 개그와는 절대 어울릴 수가 없어요."
정종철은 "제발 작가들이 대본에 의존하는 개그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제작진도 개그맨들이 제작진 말 잘 듣고 작가들 대본 잘 따라 하기만 바라면 안된다. 그러면 개그맨들이 기가 죽는다. 개그는 개그맨 스스로에게 맡겨야 하고, 그래야 개그맨들이 기를 펴고 시청자들도 웃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개콘' 제작진에게도 부탁했다. 연출자는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관리'에 충실했으면 한다고 했다.
"PD는 관리를 잘해주면 돼요. 개그맨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들이 어떻게 개그에 집중하고 좋은 개그, 재미있는 개그를 할 수 있을지 관리, 지원만 잘 해주면 된다고 봐요. '너희들 이렇게 이렇게 해라'하는 순간 개그맨들은 눈치만 보게 돼요. 주눅 들고 스스로 재미없는데 누굴 웃기겠습니까."
정종철이 '개콘'을 떠난 지 10년째. 그의 이러한 쓴소리들이 현재의 '개콘' 제작진과 그리고 '개콘'을 무대로 활동하는 후배 개그맨들에게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쓴소리들에는 분명 '진심'이 담겨있었다.
"제게 '개콘'은 고향 같은 존재에요. 지금이 정종철, 옥동자를 있게 해준 고향이죠. 저는 그런 고향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그 고향을 지키고 있는 후배들도 잘됐으면 좋겠고요. 그렇게 모두 잘 되려면, 분명 바뀌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