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따뜻한 위로

[리뷰] 태풍이 지나가고

김미화 기자  |  2016.07.19 08:43
/사진=영화 포스터 /사진=영화 포스터


"모두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뜨거운 여름 잠시 땀을 식힐 수 있는 그늘 같은 영화가 관객을 찾는다.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한국 관객에게도 사랑받는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 작품 '태풍이 지나가고'가 개봉한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채 유명 작가를 꿈꾸는 사설탐정 료타가 태풍이 휘몰아친 밤, 헤어졌던 가족과 함께 예기치 못한 하룻밤을 보내며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아베 히로시가 '걸어도 걸어도'에 이어 두 번째로 고레에다 감독과 호흡을 맞췄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5번째 호흡을 맞추는 키키 키린이 할머니 역할을 맡아 영화의 중심을 잡는다.

영화의 주요 인물은 아빠 료타, 엄마 쿄고, 아들 싱고 그리고 할머니 요시코. 다섯 사람은 한 때 가족이었지만 료타와 쿄고가 이혼하며 헤어져서 지낸다.


철 없는 가장 료타는 자신을 대기만성형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소설가인 그는 15년 전 낸 소설로 한 문학상에서 수상한 뒤, 그 과거의 영광만을 좇으며 산다. 소설을 쓴다고 가정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살았고 결국 이혼 후에 아내와 아이의 소중함을 깨닫지만 이미 늦었다. 사설 탐정 업체에서 일하며 소설을 위한 취재를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가는 그는 경륜, 도박, 복권을 삶의 낙으로 생각한다. 아들의 양육비도 주지 못하면서 경륜장에서는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는 철 없는 아빠다.

료타가 과거를 돌아보고 산다면 엄마 쿄고는 미래를 위해 산다. 철없는 남편과 살다가 견딜 수 없어 이혼한 쿄고는 아이를 위해 '괜찮은' 남자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을 준비한다. "그 남자를 사랑하느냐"는 료타의 질문에 "어른은 사랑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는 그의 답이 말해 주듯이, 사랑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과거를 찾아 헤매는 료타나 미래를 추구하는 쿄고와 달리 할머니 요시코는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오래된 연립주택에 살고있는 그에게는 두 자녀가 삶의 낙이자 걱정거리다. 요시코는 노인들의 클래식 모임에도 나가고, 매일 물을 주며 화초를 키우는 등 자신의 노년을 즐긴다. 그는 어른이 된 아들에게 "원하지 않는 인생을 살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한 삶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요시코는 그래도 날마다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라며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아들을 달랜다.

아들을 향해 내뱉는 요시코의 대사는 그대로 스크린 밖으로 나와 관객의 마음에 박힌다. 누구나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꿈을 가지고, 누구나 어른이 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꿈꾸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꿈꾸는 어른'과 '어른이 된 나' 사이의 중간에서 관객이 생각하게 만든다. 교훈을 주려고 하거나 감동을 주려고 하는 노력 없이 담담하게 '다들 그렇게 사는거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스스로를 위안하게 만든다. 그 속에는 잔잔한 웃음이 있다. 태풍이 지나가도 변함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우리네 삶과 같다. 극화 되지 않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그들의 일상을 보며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올 여름 성수기 극장가에는 좀비영화부터 전쟁영화까지 다양한 블록버스터들이 기다리고 있다. '태풍이 지나가고'에는 화려한 볼거리나 스릴 넘치는 이야기는 없다. '원하는 어른이 될 필요 없이 즐겁게 살면 된다'는 어쩌면 식상한 메시지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손을 거쳐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지금 나는 행복한지 고민하는 관객에게 진한 여운을 남길 듯 하다. 런닝타임 117분, 12세 이상 관람가. 2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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