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대한민국이란 비관, 하정우란 낙관①

[[리뷰]'터널'

김현록 기자  |  2016.08.04 11:08
사진=\'터널\' 포스터 사진='터널' 포스터


"대한민국의 안전이 무너졌습니다." 이 문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부사는 안타깝게도 '또'다.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것도 자꾸 찾아온다. 그래서 더 자꾸 까먹는다. 그 속에 사람이 있다는 걸. '터널'(감독 김성훈)은 그 망각이 더 큰 재난이라고 말하는 영화다.


자동차 세일즈맨 정수가 딸의 생일케이크를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난데없이 터널이 무너져내린다. 칠흑 같은 어둠과 콘크리트 더미 속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정수는 119에 직접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하고 가족들을 안심시킨다. 노련한 구조대책반 대장 대경이, 뉴스로 남편의 소식을 들은 아내 세현이, 흥분한 기자들이 달려오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구조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사건사고까지 겹친다. 정수에게 남은 것은 케이크 하나와 생수 두 병뿐.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터널 안 정수의 고군분투가 이어지지만 구조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기약 없는 가능성을 두고 여론 또한 분열되기 시작한다.

터널이 무너졌다. 한 남자가 갇혔다. 구조작업이 펼쳐진다. 그 남자는 살아남을까. 어쩌면 단순한 이야기다. 김성훈 감독은 딴 이야기를 할 마음이 없다. 거두절미, 영화 시작 5분 만에 터널을 무너뜨리고 본론을 시작한다. 흔한 플래시백 하나 없다. 카메라는 터널 안 정수의 생존기, 터널 밖의 구조기를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비춘다. 그렇게 담긴 것은 한국이란 사회의 축소판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터널 밖 상황엔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재난은 곧 인재요, 해결은 속수무책인데 관료들은 사진찍기에 바쁘고, 기자들은 걸리적거리기만 한다. 영화뿐 아니라 뉴스에서도 수없이 목격했던 장면이다.


터널 밖에서 기가 막혀 갑갑해진 숨통을 터 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터널 속의 유머다. 일단 상황파악을 마친 정수는 늘어지는 구조를 기다리며 거처를 단장하고 매무새를 다듬는다. 비록 언제 돌더미에 깔릴지 모르는 찌그러진 차 안이지만, 누울 곳을 청소하고, 물통에 눈금을 그어가며 물을 마시고, 양말이며 축구유니폼을 겹겹이 껴입는 리얼한 생존기가 뜻밖의 웃음을 자아낸다. 그래서 '터널'은 전화통을 붙들고 벌이는 '더 테러 라이브'의 하정우 원맨쇼보다 한국판 '캐스트 어웨이', '로빈슨 크루소'를 더 가까이 연상시킨다. 화성에 고립된 우주인의 귀환작전을 담은 '마션'도 떠오른다. 한 생명을 위해 무엇을 감수할 수 있느냐가 다를 뿐.

정수 역을 맡은 하정우는 검은 흙먼지 속에서도 눈부시다. 절체절명의 순간 나오는 코미디로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다. 하정우가 아니었다면 정수보다 관객이 먼저 질식했을지 모른다. 오직 전화 통화만으로 진한 감정선을 함께 그려낸 배두나, 오달수의 열연 또한 깊은 인상을 남긴다.


터널 붕괴 이후 별다른 사건 없이도 굴곡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 가는 김성훈 감독의 노련한 솜씨는 '끝까지 간다'에서 확인한 그대로다. 영리하고도 강력하다.

1000만 흥행을 향해 가는 '부산행'처럼, '터널' 또한 세월호의 비극을 연상시킨다. 세월호가 가라앉지 않았다면 삼풍백화점이, 성수대교가, 추락한 에어콘 수리기사가, 숨진 스크린도어 청년이, 또 다른 무엇이 떠올랐을 것이다. '터널'이 건드리는 것은 이 땅에 발붙인 이들의 어떤 기억이다. 무엇을 소환할 것인지는 각자 몫이다.

8월 10일 개봉. 러닝타임 126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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