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크 승연 /사진=임성균 기자
"지금 내가 다운로드 중인데 다른 컴퓨터 쓰면 안될까. 부탁할게."
브라질 한 축구 유소년팀 기숙사 공용PC실. 소년 승연은 친구들에게 또 부탁을 했다. 하루 종일 걸리는 다운로드. 친구들에게 염치가 없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구 반대편으로 축구 유학을 온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보이그룹 유니크의 승연(19)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떠났다. 축구로 성공하고 싶었다. 열심히 뛰었다. 뛰고 또 뛰었다. 하지만 향수는 어쩔 수 없었다. K팝 음악방송 보는 걸로 달랬다. 현지 열악한 인터넷 사정으로 음악방송 한 회를 다운로드하는 데 하루 정도 걸렸다. 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비스트 선배님들이 데뷔했을 때였어요. 미쓰에이 선배님들도 나온 지 얼마 안됐을 때였고요. 유키스 선배님들이 '만만하니'로 활동할 때였죠. 애프터스쿨 선배님들도 '뱅'으로 활동했고요. '뮤직뱅크'였던 것 같은데 한 프로그램을 몇 번을 돌려봤으니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보면서 '저 무대에 서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유니크 승연 /사진=임성균 기자
승연은 2014년 유니크 멤버로 가수 데뷔했다. 브라질서 보고 또 보던 그 '뮤직뱅크' 무대에도 섰다.
"'뮤직뱅크' 무대에 섰는데, 브라질서 보던 가수들이 저를 보고 있으니 신기했어요. 리허설 때는 그날 출연하는 가수들이 객석에 앉아 다른 가수들의 무대를 보기도 하거든요. 그 느낌, 잊을 수 없어요. 리허설이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어요. 아니겠지만, 다를 저를 쳐다보는 것 같았거든요."
중간 얘기를 건너뛰어서 이 '브라질 축구소년'이 바로 국내에 들어와 아이돌그룹으로 데뷔한 것 같지만, 승연의 가수 데뷔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승연은 "브라질서 돌아와 3년 동안 오디션만 50번 넘게 봤다"고 했다. 결과는 모두 탈락.
"브라질에서 2년 있다 한국에 돌아왔어요. 그러고 나서 필리핀에 가서 1년 동안 영어공부를 했죠. 가수가 되겠다고 하니 부모님이 영어공부부터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필리핀에 있으면서 기회만 되면 한국에 와서 오디션을 봤어요. SM, YG, JYP 등 여러 군데 오디션을 봤는데 볼 때마다 탈락했어요. 2011년에 '슈퍼스타K3'도 예선에 참가했는데 떨어졌어요."
승연은 천신만고 끝에 기회를 얻어 유니크 멤버로 데뷔했다. 유니크는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Baby Ride'와 'RECIPE' 등 2곡이 연달아 중국 최대 음악사이트에서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서는 여전히 인지도가 낮다. 승연은 "한강에서 맥주를 마셔도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며 웃었다.
유니크 승연 /사진=임성균 기자
"2주에 한 번 정도를 그래도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웃음). 전 그래서 편하게 혼자 돌아다녀요. 친구들도 편하게 만나고요. 아, 얼마 전에 놀이공원에 갔는데 일하시는 분이 알아보셨어요. 유니크 승연씨 아니냐고요. 기분 좋았어요."
승연은 "중국 팬들이 정말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하지만 한국인이니 한국에서 알아봐 주시고 사랑해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 '인지도'를 위해서 승연은 예능 프로그램에 도전했다. 지난 31일 방송된 tvN '예능인력소'가 승연의 야심 찬 예능 도전 첫발이다. 승연은 이날 방송에서 개그맨 정찬민에 져 아쉽게 2위를 차지했다.
"긴장이 정말 많이 됐어요. 최선을 다했죠. 처음에 1등을 달려서 솔직히 기대도 좀 했어요. 김구라 선배님이 리액션도 잘해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런데 뒷심이 부족했나 봐요. 비록 2등을 했지만 배운 게 정말 많아요. 이번에 '예능인력소'에 출연하고 나서 말하는 게 많이 편해졌어요. 사람들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을 확실히 배웠죠."
승연에게 좋아하는 예능을 꼽아 달랬더니 현재 방송 중인 예능프로그램 명이 줄줄이 나왔다.
"엄청 많아요. 어렸을 때부터 예능 보는 걸 좋아했어요. '무한도전'을 정말 좋아하고, '나 혼자 산다'도 재밌게 봐요. '마리텔', '아는 형님', 'SNL', '썰전', '용감한 기자들', '라디오스타'도 좋아해요. 예전에는 '우리 결혼했어요'도 자주 보고 그랬어요. '개콘'이나 '웃찾사', '코빅'도 빼놓을 수 없죠. 시간이 없으니까 '본방사수'는 못하고 다시보기로 봐요. '삼시세끼'는 한번 출연해보고 싶어요. 'SNL'도요(웃음)."
그렇다고 '예능인 승연'으로 거듭날 수는 없을 터. 승연은 음악 얘기가 나오자 자못 진지해졌다.
"제가 유니크 멤버니까, 가수로서 인정받는 게 제일 중요하죠. 그래서 요즘 곡 쓰는 연습도 많이 하고 있어요. 유니크 '완전체'는 내년 초 나올 예정인데, 곡 작업을 계속 하고 있어요. 일본, 미국에서 공연도 예정돼 있고요."
승연이 이처럼 예능과 본업인 가수 활동에 열심인 데는 스스로 욕심도 있지만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목적도 크다.
유니크 승연 /사진=임성균 기자
"어머니는 늘 저를 응원해주셨어요. 자식이 돈이 없어 남들 앞에서 기죽는 걸 싫어하셔서 아들이 부족함 없이 자라게 하셨어요. 오디션에서 계속 떨어질 때도 늘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죠. 어머니는 제가 힘들지 않고 재밌는 일을 하면 좋으시대요. 저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더 오기가 생겨요. 또 실망 시켜 드릴 수 없거든요. 축구를 포기했을 때처럼요. 저한테는 이것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에요. 제가 가수가 됐을 때 자랑스럽다고 하셨어요. 저는 그냥 가수가 아니라 한국에서 누구나 알아보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어머니가 '나 누구 엄마에요' 했을 때 사람들이 바로 알 수 있는 그런 가수요."
'가수 승연'으로서 목표는 '공감'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닐 수 있는데 제 얘기를 써서 공감을 얻는 가수가 되는 게 목표에요. 누구는 감동을 받을 수 있고, 누구는 재밌을 수 있겠죠. 많은 사람들이 제 얘기로 공감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고 싶어요. 이승철 선배님이나 윤종신 선배님 같은, 들으면서 보이는 가수가 목표에요."
'유니크 승연'으로서 팬들에 대한 감사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많은 팬분들이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려요. '언제 노래 나오냐'. '한국에서 언제 활동 하냐' 같은 질문에 정말 감사드려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멋진 모습과 좋은 노래도 찾아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