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한컷]"블랙리스트는 큰 죄" 류승완 감독이 목소리 높인 까닭

김현록 기자  |  2017.02.11 11:50
류승완 감독 / 사진=스타뉴스 류승완 감독 / 사진=스타뉴스


지난 7일 서울 종로의 서울극장 3층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분노하는 범 영화인 1052명이 리스트를 근거로 한 배제, 탄압에 가담했다며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퇴 및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름을 올린 1052명이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뜻을 함께하는 각 영화단체의 대표, 블랙리스트에 올라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이들 등이 함께했습니다.


영등위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던 '불안한 외출' 김철민 감독, 2차례 제한상영가를 받아 소송 끝에 영화를 개봉했던 '자가당착'의 김선 감독, 개봉직후 다양성영화 흥행 1위를 했는데 극장에서 영화가 내려졌던 '천안함 프로젝트'의 백승우 감독이 차례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세월호를 다룬 다큐 '다이빙벨' 배급사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 영화관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인디스페이스의 안소현 사무국장, 역시 회사이름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아트나인-엣나인필름의 정상진 대표, '일급기밀' 제작사 미인픽쳐스의 안영진 대표도 차례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끈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다이빙벨' 상영 후 보복성 조처에 시달리며 급기야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사실상 해촉된 뒤 지난해 반쪽 축제를 치러야 했던 부산국제영화제의 남동철 프로그래머입니다. 부산영화제 인사가 집회,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들고 나온 일이 그간 거의 없었던 터입니다. 남 프로그래머는 "2년이 넘게 이 문제로 싸웠다"면서 "순진한 생각도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굉장한 보복이 있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이어 "조폭이나 다름없는 행태"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류승완 감독의 등장에 시선이 집중됐습니다. '베틀린', '부당거래', '베테랑'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흥행 감독으로 떠오른 그는 현재 '군함도'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에 한창입니다. 이 날은 한국영화감독조합 부위원장 자격으로 짬을 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는 작심한 듯 날선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그 역시 2010년 권력자들의 추악한 뒷모습을 담아낸 '부당거래' 이후 해외문화원 주최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들의 곤란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가 놀랍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괜찮다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몇몇 분들은 빨갱이 몇몇 이름 적어 관리하는 데 무슨 큰 죄야' 하시는데 큰 죄가 맞습니다.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데 이를 빼앗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빼앗아 가는 큰 죄에요. 국가가 개인을 억압하는 겁니다. 학교에서 몇 사람 왕따시키는 것도 큰일인데, 하물며 이건 국가가 왕따를 시키는 거잖아요!"


기자회견이 끝난 뒤 류승완 감독은 "돌아가며 불려나온다"고 머쓱해 했지만 블랙리스트에 대한 생각, 그 책임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분명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블랙리스트는 참 낯설지가 않습니다. 반항적인 예술가들에 대한 견제는 국사독재정권 시절부터 사전 검열과 사후 검열로 나타났습니다. 일제강점기도 아니건만 불리워선 안될 노래들과 상영되어선 안될 영화들의 목록이 만들어졌습니다. 탄핵 정국과 함께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이 수면에 오르기 전에도 그런게 있다는 소문은 이미 파다했습니다. 3년 넘게 고초를 겪은 부산영화제 사태가 블랙리스트와 무관치 않다는 증거를 특검이 잡았다고 했을 때, 영화제 사람들마저도 "그럴 줄 알았다" 할 뿐 놀라워하지 않았습니다. 정권 입맛에 안 맞는 영화들이 모태펀드 투자를 못 받았다는 이야기도 너무나 빈번히 들려왔습니다. 누구든 무뎌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류 감독의 말마따나 익숙하다 해서 괜찮은 건 아닙니다. 정말 큰 죄가 맞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진상을 밝혀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정국 속 수사선상과 법망을 이리저리 빠져나가 '법꾸라지'라는 별명까지 생겼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결국 구속된 게 이 블랙리스트 때문이었습니다. 김종덕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등이 줄줄이 구속돼 수사를 받았습니다. 문화의 주무부서가 이 지경이라니 수치스럽지만 도려내야 건강한 새 살이 돋겠지요. 블랙리스트 파문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요. 이제라도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겁니다. 이대로 무뎌져선 안될 겁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뉴스 단독

HOT ISSUE

스타 인터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