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C '역적' 방송화면 캡처
'역적' 심희섭이 박은석에게 조선이 가진 부조리를 토로했다.
7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극본 황진영 연출 김진만 진창규 제작 후너스엔터테인먼트. 이하 '역적')에서 연산군(김지석 분)은 길현(심희섭 분)과 수학(박은석 분)을 문사낭청직에 올렸다.
이 사실을 들은 사관원 대사간 정3품 이억공은 길현에게 연산군이 왜 그를 문사낭청에 올렸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박원일의 손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국청은 자네 손으로 자네 조부들을 불러 매질하는 자리일세 부끄럽지 않은가"라며 세조의 밑에서 일한 길현의 조부를 공격했다.
길현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는 세조 대왕에 부역한 자가 더럽다 여기시면서 어찌 그 손자가 다스리는 조정의 녹을 받으십니까? 그것은 부끄럽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하며 이억공에게 일침을 놓았다.
수학은 선배에게 반항하는 길현을 힐난했다. 수학의 논리는 이러했다. 삼사 선배들한테 찍히면 수학이나 길현처럼 집안이 좋지 않은 이들에게는 평생 관직 생활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길현은 그 말에도 전혀 겁먹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난 평생 감히 내가 이런 곳에 서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나라를 쓸고 닦고 가꾸는 사람들 틈에 껴서 나도 작은 보탬이 되는 삶을 살게 될 거라 꿈도 꾸지 못했네"라며 그는 신분 차이로 수모받았던 자신과 가족의 삶을 회상했다.
길현은 과거의 자신을 '조선 밖의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아무리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어도 높은 사람 말 한마디면 바스라지는 것이었어. 나는 이 나라 조선 밖에 있는 사람이었거든."
길현의 이 대사는 '헬조선'이라 불리는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도 공감을 선사했다. 소위 '수저'를 잘못 물고 태어난 사람들은 조국을 지옥이라고 명명했다. 길현이 '조선 밖에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들 역시 조국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대한민국 밖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혹자는 이런 이들에게 애국심을 강요한다. 하지만 애국심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역적'에서 길현은 말했다. "나도 이제 이 나라 조선의 일부야. 나도 이제 쉽게 바스러지지 않아. 내게 이런 꿈 같은 생활을 안겨주신 분이 전하일세. 나는 차마 전하를 저버릴 수 없으니 그리 알아." 조선 밖의 사람이었던 길현은 과거라는 공정한 기회를 통해 관직을 얻은 후에 비로소 조선에 '충심'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떤가. 작년 대한민국에서 누군가는 부모님의 권력을 등에 업은 채 학교에 나가지 않고도 학점을 얻었다. 반면 평범한 대학생들은 지금도 학점을 받기 위해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 한, 또 공정한 기회가 보장된다고 믿을 수 없는 한 '헬조선'이라는 불명예는 이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