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사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왼쪽)과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AFPBBNews=뉴스1
올해 아카데미 감독상은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2017)의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 감독에게 돌아갔다. 이 영화는 시상식 사회자 킴멜이 "작년에 할리우드에서는 남자들이 죽을 쒀서 여자들이 물고기와 데이트를 시작했다"고 농담을 했던 작품이다. 13개 부문에서 후보로 올라 작품상, 감독상 포함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여우주연상 후보 샐리 호킨스의 연기도 뛰어났다고 평가 받는다. 델 토로는 '퍼시픽 림'(Pacific Rim, 2013)을 연출했던 감독이다.
현재 미국 인구의 약 10%가 멕시코 계다. 특히 할리우드와 LA가 있는 캘리포니아는 과연 미국의 언어가 영어인지 헛갈릴 정도로 스페인어가 통용된다. 영화 제작자들이 이 점을 소홀히 할 리가 없다. '토이 스토리 3'에서도 버즈 라이트이어가 스페인어로 작동되는 장면이 나오는 데 큰 인기를 끌었다. 올 해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 수상작인 '코코'(Coco, 2017)는 아예 멕시코 문화가 소재다.
배우로도 안소니 퀸의 맥을 잇는 히스패닉, 라틴 계 배우들이 많이 활약한다. 대중적으로는 나와 동갑인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가장 많이 알려졌고 셀마 하이예크, 페넬로페 크루즈, 하비어 바뎀, 제시카 알바, 앤디 가르시아, 베니시오 델 토로가 있다.
2007년 제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서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사진 왼쪽부터) /AFPBBNews=뉴스1
최근 히스패닉 계 감독들이 맹활약 중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알레한드로 이냐리투(Alejandro Iñárritu)와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이다. 세 감독은 당연히 가까운 사이다. 할리우드에서는 'The Three Amigos of Cinema'라고 불린다.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 2004)를 연출했던 쿠아론은 아카데미상을 받은 최초의 멕시코 계 감독이다. 타임지가 선정한 2013년 최고의 영화 '그래비티'(Gravity)를 연출해서 감독상을 받았다. 조지 클루니와 산드라 벌록 딱 두 배우만 출연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스페이스 셔틀과 여러 인공 우주물체들이 파괴되는 모습이 담겨있다. 특수효과의 최고봉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쿠아론은 롱테이크로 유명한 감독인데 우주공간에서 벌어지는 희대의 사고를 초반 20분을 포함한 긴 샷으로 멋지게 잡아냈다.
사진=영화 '그래비티' 스틸컷
'그래비티'는 대개 SF 영화로 분류된다. 그러나 쿠아론은 '여성이 우주공간에 있는 드라마'라고 영화의 성격을 규정짓는다. 영화의 주제는 '역경'이고 우주선의 파편들이 그를 상징한다고 한다. 인간의 생존투쟁을 담고 있고 재난을 당한 후의 심리적 재기를 담는다.
이냐리투는 4개 국어가 사용된 '바벨'(Babel, 2006)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가 되었던 최초의 멕시코 계 감독이다. 이 영화에는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이 나오고 모로코, 멕시코, 미국, 일본 4개국에서 각각 하나씩 4개의 스토리가 펼쳐진다. 깐느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사진=영화 '버드맨' 스틸컷
이냐리투는 '버드맨'(Birdman, 2014)과 '레버넌트'(The Revenant, 2015)로 2년 연속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는데 1950년 이래 유일하게 연속으로 감독상을 받은 감독이 되었다. 더구나 외국계이기 때문에 이 기록은 아마 깨지기 어려울 것이다. 총 4회 수상했던 존 포드 감독이 2년 연속(1940, 1941) 수상한 적이 있고 죠셉 만키에비치 감독이 2년 연속(1949, 1950) 수상한 적이 있다. 윌리엄 와일러와 프랭크 카프라 감독은 총 3회씩 수상했지만 2년 연속은 없었다.
마이클 키튼의 블랙 코미디 '버드맨'은 폐물 배우가 재기를 위해 애쓰는 내용이다. 아카데미 작품상도 받았고 키튼은 남우주연상 후보에 선정되었다. 이 영화는 영화 전체가 마치 한 번의 테이크로 완성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감독이 우리는 인생을 편집 없이 딱 한 번만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뒤 나란히 포즈를 취한 배우 숀 펜(왼쪽에서 2번째)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왼쪽에서 3번째) /AFPBBNews=뉴스1
작품상 발표는 숀 펜이 맡았다. 그런데 숀 펜은 발표를 하기 전에 "누가 이 망할 자식한테 영주권을 줬나?"라는 멘트를 했는데 이것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이 불쾌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펜은 나중에 자신의 발언을 강변했다. 외국인들에게 문을 꼭꼭 닫으려 하는 미국에 대한 풍자라고 한다. 문호를 닫으면 이냐리투 같은 훌륭한 감독이 어떻게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다. 실제로 그 멘트는 이냐리투와 자신 사이의 조크였다고 했다. 이냐리투와 숀 펜은 '21 그램'(21 Grams, 2003)에서 같이 작업한 적이 있다.
할리우드에서 히스패닉, 라틴 계 외에도 외국계(영국과 캐나다는 제외) 감독들이 활약한 역사는 짧지 않다. 로만 폴란스키, 닐 블롬캠프, 세르지오 레오네, 뤽 배송, 볼프강 피터슨,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받은 타이완 출신 리안(Ang Lee)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많다. 이들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이들이 캐스팅 하는 외국계 배우들의 개성이 영화에 투영되어 할리우드 영화의 내용이 더 풍부해진다. 봉준호 감독이 이 대열에 합류한 것은 대단히 기쁜 일이다. 더 많은 국내 감독들이 할리우드에 진출하면 좋겠다.
2017년 칸 영화제 70주년 행사에 나란히 참석한 멕시코 출신의 할리우드 주역들. 사진 왼쪽부터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파트너 셰헤라자드 골드스미스, 알폰소 쿠아론 감독, 배우 디에고 루나 /AFPBBNews=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