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이 밝힌 '버닝'.."韓젊은이들, 종수와 벤 사이 어디쯤"(인터뷰①)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 인터뷰

칸(프랑스)=김현록 기자  |  2018.05.21 07:00
이창동 감독 /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이창동 감독 /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올해 칸영화제의 화제작이었다. 비록 본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세계 평단으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았고, 스크린 데일리로부터는 역대 최고 평점을 받는 등 돌아온 이창동 감독의 저력을 확인시켰다.


영화 '버닝'은 소설가가 되고 싶지만 재판 중인 아버지의 집을 지키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고작인 청년 종수(유아인 분)의 시선을 따라간다. 우연히 만난 동창생 해미(전종서 분)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은 그는, 해미가 소개한 '위대한 개츠비' 같은 수상한 남자 벤(스티븐 연 분)을 만난다. 어느날 해미가 사라져버린 뒤 종수는 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비루한 청년의 질투와 욕망, 분노와 자격지심은 스멀스멀 커져 가지만 그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다. 그렇기에 감독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영화 '버닝'은 지난 17일 한국에서 개봉해 국내 관객들과도 만나고 있다. '버닝'이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뒤 프랑스 칸의 해변이 바라보이는 테라스에서 만난 이창동 감독은에게서 '버닝'에 대한 몇몇 궁금증들을 물어볼 수 있었다. 이창동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다음 내용은 영화 '버닝'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외적 이슈 때문에 감독으로서도 신경이 쓰였을 것 같다.


▶신경 안 썼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다. 다른 영화라면 덜 그랬을 텐데.

-'버닝'을 통해 청춘의 분노를 그렸다.

▶'청춘의 분노'라고 규정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젊은 주인공이 나오고 젊은이의 삶의 방식을 담는데, 꼭 청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세계, 현실이 어떤 모습일지 묻고 싶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도 질문하고 싶었다.


이게, 종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종수와 벤의 이야기다. 물론 그 사이에 여자가 있지만.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이 종수와 벤 사이 어디쯤 있을 것 같다. 종수는 본의 아니게 아버지가 살던 파주에 산다. 파주라는 곳이 한국사회에서 급속히 없어져가는 공간이다. 이미 그런 농촌공동체는 급속도로 없어지고 있다. 특히 수도권에는 촬영할 곳이 없다. 농촌인지 아닌지 모르는 곳에 창고가 들어서고 공장이 들어서고 전원주택이 들어선다. 그러나 과거와 연결돼 있고 분명히 우리 현실인 곳에 사는 종수가 있고 서래마을에 사는 세련되고 여유있고 자기가 원하는 걸 누리고 사는 젊은 친구 벤이 있다. 많은 친구들은 벤 쪽에 가깝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 형편이 되지 않아도.

-모호하게 끝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과 비교해 영화의 막바지에 종수에게 더 구체적인 행동을 부여한 이유가 있을까.

▶그것 또한 종수의 행동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그 모습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을 제가 무슨 의미나 관념으로나 주장하고 메시지로 담는 게 아니라 그 이미지로 감각으로 보고 느끼고 무엇인지 생각하기를 원했다. 이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모습을 띠고 있는데 이 미스터리가 벤이라는 인물이 누군지를 따라가는 미스터리다. 벤이 누구지를 계속 따라오지만 결국은 종수는 누구지로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한가지 장르로 규정하기 힘든 영화다.

▶그렇죠. 일단 젊은 친구들 이야기가 나오니까. 세 명이 젊고 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구들이다. 그들의 삶 속에서 각자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해미는 어디로 갔나', '벤이 누구인가'가 미스터리라면 단순한 미스터리가 더 많은 미스터리와 확산되거나 심화되도록 하고 싶었다.

-일면 미스터리 장르영화처럼 느껴지는 부분까지 있다.

▶쉬운 장르영화처럼 그런 문법을 따라간다면 지금처럼 찍으면 안된다. 그런 방법은 매뉴얼이 있다. 누구나 효과적인 방식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최대한 스릴러로서의 텐션을 강화시키고 마지막까지 폭발력을 가지고 유지해가면서 마지막에 터뜨리는 것. 그것은 관객들도 기대할 것이고. 그런 관습적인 영화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것을 넘어가 보고 싶었다. 그래야만 관객이 그 미스터리를 더 받아들이게 될 것이니까.

이를테면 장르영화의 방식으로 정보를 얼마만큼 주느냐의 문제가 있을 것이고 감정적으로 얼마나 긴장감을 강화시키느냐도 있을 것이다. 계속 줄다리기를 해야만 했다. 정보를 너무 안 줄 수도 없고 어느 정도 주고 뒤집기도 하고. 결국은 관객이 영화라는 매체를 '생각'한다기보다는 '느끼면서' 질문하도록 해보고 싶었다.

-배우들에게조차 이를테면 벤이 살인자인지 아닌지 정해주지 않고 배우가 생각하고 연기하도록 열어둔 채 이 영화를 찍었다는 것이 놀랍다.

▶원래 그런 스타일이다. 설명해주고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는다. 뭔가 표현하면 표현하지 말라고 말한다. 배우들이 힘들어지는 측면이 있다. 반면 뭔가 자기 감정을 찾아가는 데 나름의 여유로움을 얻기도 한다.

이번 경우는 그것이 중요한 문제다. 미스터리에 관련된 것이다. 배우는 어쨌든 내적 동기가 있어야 뭘 해도 한다. 작은 표정 하나에도 내적 동기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해답을 가지고 있으면, 그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미스터리 장르가 그 해답을 보여주지 않나. 제가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미스터리는 그것이 아니다. 눈앞에 있는 미스터리가 세상의 미스터리까지 연결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답을 주는 건 아니라고 봤다. 미스터리 자체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려면 벤이 누구인가를 미스터리로 남겨주는 것이 중요하다. 배우에게는 매우 어렵겠지만. 사실은 본인도 모를 수도 있다. 자신이 연쇄살인범인지, 여유있고 세련되고 심지어 남들에게 선의를 베풀며 사는 친구인지. 왜냐면 사람을 죽이는 데도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죽이는 방법도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멀리 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의식이 덜하다. 숫자로 돼 있는 사람은 그냥 숫자일 뿐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데 그것 때문에 아프리카의 누군가가 죽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인과관계가 미스터리인 거다.

-중요한 결정을 배우에게 맡기고 보면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을 텐데.

▶물론이다. 그 때문에 원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다. 촬영 중에도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 '좀 기분 나쁘게 보인다' 얘기하기도 하고, 본인도 '너무한 것 아닌가요'하고 묻기도 하고. 굉장히 미묘한 조절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촬영 끝나고 편집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인터뷰 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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