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피셔(왼쪽) 등 캔자스시티 선수들이 휴스턴에 역전승을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미국에도 많은 모양이다. 특히 지난 주말 미국프로풋볼(NFL) 플레이오프에서 한 미국인 팬의 경우는 스토리가 하도 리얼하고 절실해 졸지에 유명인사가 됐고 그의 사연은 ESPN에까지 보도됐다. 찰스 펜이라는 캔자스시티 칩스의 한 ‘슈퍼 팬’ 이야기다. 그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펜의 사연은 지난 2013시즌 와일드카드 라운드 플레이오프 경기부터 시작된다. 당시 캔자스시티는 홈에서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와 혈전 끝에 44-45로 패해 탈락했고 그 경기를 현장에서 본 것에서부터 펜의 징크스가 본격 시작됐다. 이후 그가 직접 경기장을 찾은 캔자스시티 경기마다 팀이 지는 일이 반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펜은 지난해 캔자스시티의 플레이오프 디비전 라운드 경기는 집에서 봤고 캔자스시티는 그 경기에서 낙승을 거뒀다. 승리에 고무된 그는 캔자스시티가 슈퍼보울에 가는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의 AFC 결승전 때 직접 경기장을 찾았으나 캔자스시티는 오버타임 끝에 패해 징크스의 악몽을 되살렸다.
펜은 “이 경기 1쿼터 도중 내가 경기장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찰스, 당장 경기장에서 나와’라고 말했지만 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우리가 이길 거야. 괜찮아’라고 했다. 그런데 오버타임 끝에 졌다”고 털어놨다.
캔자스시티의 열성 팬인 찰스 펜. /사진=펜 SNS 캡처
하지만 그가 경기장에 나타났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경기는 캔자스시티 입장에서 시작부터 끔찍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휴스턴은 1쿼터 첫 공격에서 쿼터백 드숀 왓슨의 54야드 터치다운 패스로 일찌감치 7-0 리드를 잡았고 캔자스시티는 이어진 첫 공격에서 단 하나의 퍼스트다운도 얻지 못한 채 펀트를 시도했으나 그 펀트마저 블록당해 리턴 터치다운을 얻어맞고 졸지에 0-14로 뒤졌다.
그리고 1쿼터 막판엔 펀트 리턴맨이 볼을 잡다 놓치는 바람에 또 하나의 터치다운을 허용, 점수는 0-21까지 벌어졌다. 휴스턴은 2쿼터 초반 필드골까지 보태 24-0으로 앞서가며 승리를 예약한 듯했다.
두려워하던 악몽이 현실로 나타나자 펜은 일찌감치 “이것은 나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1쿼터 종료 후 바로 좌석에서 일어나 경기장을 떠나는 동영상을 찍어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그는 경기장을 나서며 “도저히 안 되겠어요. 내가 나가야만 합니다. 그게 (우리 팀의) 유일한 희망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펜이 경기장을 떠나자 캔자스시티는 거짓말처럼 달라졌다. 연속으로 무려 41점을 뽑아내 0-24로 뒤지던 경기를 단숨에 41-24로 역전시켰고 결국 51-31로 낙승을 거뒀다.
펜은 ESPN과 인터뷰에서 “경기가 시작 직후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면서 “결국 난 그들을 위해 비즈니스 차원의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내가 아니라 캔자스시티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역사가 됐다. 그들은 해냈다”고 기뻐했다.
캔사스시티가 역전승을 거두고 그가 경기장을 떠나는 트위터 비디오가 큰 화제가 되면서 펜은 지역방송은 물론 ESPN에까지 출연했고 졸지에 유명인사가 됐다. 그리고 그는 이번 주말에 벌어지는 테네시 타이탄스와의 AFC 결승에선 아예 딴 생각하지 않고 집에서 얌전히 혼자서 TV를 볼 예정이다.
캔자스시티의 패트릭 마홈스. /AFPBBNews=뉴스1
펜은 “그가 나에게 희생에 감사한다고 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면서 “팻(마홈스)이 집에 있으라면 집에 있어야 한다. 그는 캡틴이고 리그 MVP다. 당연히 그의 말을 들을 것”이라면서 “그렇지 않아도 몇 년 전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테네시에 진 것 때문에 아직도 겁이 난다”고 말했다.
캔자스시티는 이번 승리로 6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그들이 당한 마지막 패배는 지난 11월10일(현지시간)로 두 달 전의 일이다. 캔자스시티에 마지막으로 패배를 안겨준 팀은 테네시 타이탄스. 바로 이번 주말 AFC 결승에서 만날 상대이자 이번 포스트시즌의 최고 신데렐라로 떠오른 돌풍의 팀이다. 펜으로선 이번 주말에도 얌전히 집에서 TV로 응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찰스 펜의 사연을 소개한 ESPN 기사. /사진=ESPN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