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 류호진PD/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tvN '어쩌다 사장2'로 류호진 PD는 스타 PD, 스타 메이커로서의 능력을 재차 입증했다. "아유, 제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잖아요"라고 겸손 떠는 류 PD다.
KBS에서 CJ ENM으로 이적 후, 자신의 역량을 입증한 류호진 PD. KBS '1박2일' PD에서 '어쩌다 사장' PD로 CJ ENM의 'tvN 예능 스타 PD'로 자리잡았다. 특유의 '웃음'과 '감동'을 예능에 섞는 그가 앞으로 어떤 예능을 선보일지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크다.
CJ ENM 류호진PD/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 크게 소개할 거는 없다. 간단하게 저를 소개하자면, 2008년 KBS에 입사해 예능 PD를 처음 시작했다. 2016년 KBS에서 자회사 몬스터 유니온 설립과 함께 자리를 한번 옮기게 됐다. 이후 2019년 몬스터 유니온을 떠나 현재의 tvN으로 오게 됐다.
-'1박2일'(시즌3) 외에 KBS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연출한 스타 PD다. 예능 PD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선생님들도 뭔가 쓰는 쪽으로 가 보라고 했습니다. 대학 진학 때 성적에 맞춰서 신문방송학과를 가게 됐는데, 학교 방송국 같은데서 일하면서 점점 진로가 미디어쪽으로 고정됐던 것 같다. 원래는 기자나 아나운서도 하고 싶었다. 아나운서는 카메라 테스트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패션지에서도 짧게나마 에디터로 경험을 해 볼 수 있었다. 기자는 저에겐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 같아서 PD 시험을 봐서 지금에 오게 됐다.
-기자, 아나운서가 아닌 PD로 성공을 거두게 됐다. 지금 첫 연출(입봉작)을 돌아보면 어떤 느낌인가.
▶ 제 첫 입봉작은 '1박2일 시즌3'였다. 당시 그 프로그램이 조금 흔들리던 시기였다. 그래서 회사에서 좀 파격적으로 어린 연차였던 저를 발탁해서 연출을 시켰다. 비하인드인데, 당시 주변에서 "망할거야"라고 생각했던 분위기도 있었다. 그래서 "이왕 망할거면, 어린 애가 망하는게 덜 다칠거야"라고 했다. 캐스팅이나 여러가지가 운이 잘 맞아서 다행히 다치진 않고 입봉을 해 낼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진짜 운이 좋았던 케이스다. 연기자들이 정말 잘 모여주었고,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지현숙 작가님도 그때 처음 만나게 됐다. 대작가인 문은애 작가님이나 '돌싱글즈'의 정선영 작가님 같은 뛰어난 작가님이 집필을 맡아주셨다. KBS 입장에서도 중요한 프로그램이어서 뛰어난 후배들을 저희 팀에 보내줬는데, 당시에 같이 일했던 후배들(박인석, 안상은, 김민석, 신수정, 김성, 유일용 등)은 지금 모두 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당연히 그 프로그램은 일정도 힘들고 심리적 압박도 컸지만, 저에겐 연출의 기본을 가르쳐줬고, 또 좋은 아이템을 만났을 때 느끼는, 방송 만드는 보람도 알려준 프로그램입니다.
-'1박2일' 외에 '우리동네 예체능' '최고의 한방' '거기가 어딘데??' '수요일은 음악프로' '서울촌놈' '어쩌다 사장'(시즌 1, 2) 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함께 했다. 여러 프로그램을 하면서, 위기의 순간은 없었는가.
▶ 음, 매일이 위기의 순간이죠. 그 중에서 '최고의 한방'이라는 드라마를 연출하던 시절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원래 잘 모르는 일에 손대는 편이 아닌데, 그때는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좀 고민하다가 맡았다. 아무래도 낯선 장르에, 연습도 경험도 없던 일을 시작하니까, 빠르고 좋은 판단을 내리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현장에서 배운 것도 느낀 것도 많았다. 한편으로는 압박감이나 이방인 같은 기분도 느꼈다. 가수나 아이돌들이 드라마 찍는다고 하면 응원합니다. 잘 적응했으면 한다. 아무튼, 그 일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기술도 얻었다. 다만, 그 때의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군대에 갔다온 그런 기분이 든다. 하하하.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면, 뿌듯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언제였는가.
▶ 뿌듯한 순간은 종종 있었다. '거기가 어딘데??' 끝날 때, 오만 바다에서 촬영이었다. 그 때 촬영 마치고 숙소에 복귀할 때 '아, 이 맛에 연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가 어딘데??' 촬영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다. 그래서 '끝난 거야?'라는 순간, 스태프들이 촬영이 끝났다고 하니까, 바다에 뛰어들어갔다. 촬영의 경험, 스태프들과 공유하는 순간 뿌듯했다.
제가 조연출 할때 '우리동네 예체능' 촬영을 한면서 유남규 감독님을 만났을 때도 정말 기억에 남는다. '유남규VS김기택 리벤지 매치'였다. 제가 이 경기를 물론, 예능이었지만 직관을 했다는게 평생 기억으로 남는다.
CJ ENM 류호진PD/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 어떤 의미인지 저는 오히려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스스로는 지나치게 지루하고 감성에 치우치는가 싶은 생각도 종종 합니다. 매번 만들 때는 '다시는 감성팔이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시작하는데, 프로그램이 끝날 때 쯤 보면 또 그렇게 되어 있다.
저 스스로 사소한 일에서라도 의미를 찾아보길 좋아하고, 사람이든 사건이든 거기서 좋은 면을 좀 더 보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표정이든 말이든 의미든, 상냥한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연애 버라이어티는 못할 듯 싶다. 여하튼, 저 개인의 심리에 기인하는 거겠지만, 갈등을 회피하는 편이니까 당연히 자극적인 내용이 될 수는 없다. 대신 갈등이 약해서 밋밋한 면을 포근함으로 보상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좋아하시는 분들은 계속 찾아 주시는게 아닌가 싶다.
-시청자들에게 재미-감동을 선사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하는데, 일에 대한 만족감은 얼마나 되는가.
▶ 순조로울 때는 이만한 직업도 없다 싶고, 안될 때는 빨리 때려치고 싶고 그렇습니다. 창작을 원하되,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깊은 세계관 같은 것보다, 그냥 보편적인 세상의 풍경과 대화를 통해 창작을 하고 싶다면 예능 피디 만한 직업도 없는 것 같다. 드라마만큼 창작자 소수의 능력과 시선에 깊이 치우치지도, 다큐멘터리처럼 사회적 의미와 보편성에 전념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보고 싶은 세상, 보여주고 싶은 세상, 그런 프레이밍을 좋아한다면 예능 피디는 충분히 매력적인 직업인 것 같습니다. 거기엔 사람도 대화도 풍경도 음식도 음악도 춤도 스포츠도 다 있으니까. 육체적으로 힘들고 일이 바쁜건 뭐, 요즘 많은 분들이 다 그렇게 살기도 하고. 특별히 더 엄살을 부리진 않으려고 합니다 이제. 하하하.
-그동안 여러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많은 스타들을 만났다. 이 중 유독 '애정'하는 스타가 있다면 누구일까.
▶ 당.연.히, '차태현'이죠.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다. 제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같이 했다. 어떤 의미에서 제 프로그램에 관한 모든 추억에는 차태현형이 들어 있다.
배우 차태현/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대한민국 최고의 MC'다. 개인적으로는 정말로 '은인'이다.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설명은 생략'이라고 할 정도로 차태현과의 우정이 두터운 것으로 안다. 비하인드도 꽤 많을 텐데, 두 사람의 만남 비하인드를 한 번 들려달라.
▶ 제가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닐 때 차태현 형은 데뷔를 하고, 굵직한 활동을 시작했다. 제가 KBS에 입사했을 무렵에 차태현은 영화를 찍었다. 서로 만날 일이 없었다. 그러다 '1박2일'을 하면서 만나게 됐는데, 그 인연이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질지는 몰랐다. 사실, 형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다. '스타니까 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1박2일') 첫 촬영 때, 긴장도 많이 했다. 그 때는 속여서 까나리만 먹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까나리 먹고 나서 화를 낼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좋아했다. 자기가 멤버들도 다 까나리 먹이겠다고 하길래, '아, 이 사람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형은 제가 짜놓은 거를 다 이해했다. 사적인 영역에서는 취미나 세계관이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태현이란 스타가 제 은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제작 철학이 유사하고, 솔선수범한다는 거다. 프로그램을 할 때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게 정말 잘 맞는다.
-2013년 '1박2일'로 인연을 맺은 후 벌써 9년이 됐다. 오랜 시간 동안 의견 충돌로 다투는 경우도 없었는가.
▶ 다투지는 않았다. 의견 충돌도 거의 없다. 서로 생각하는 게 비슷하다. 생각이 다를 때는 '저 형이 저렇게까지 한다고 생각하면, 할 필요가 없는 거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게 효율적이다.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쓰지 않는다.
-'어쩌다 사장' 1, 2로 차태현 외에 조인성까지 '예능 스타'로 거듭났다. 차태현 외에 '이 스타만큼은 예능 스타로 거듭나게 했다'고 할 스타가 있을까.
▶ 조인성 씨는 원래 중량감이 큰 배우였다. 이전에 큰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출연해서도 예능 센스를 유감없이 발휘하던 면모가 있어서, 제가 뭘 했다기보다 도움을 받은게 너무 크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은 ('1박2일 시즌3'에서 만난) 고 김주혁 선배님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분도 연예 활동의 행보가 좁은 편은 아니셨지만. 실은 예능을 잘 모르던 분이었고, 그의 변화를 오랫동안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던게 지금도 행복합니다.
-(인터뷰②)에서 이어.
이경호 기자 sky@mtsta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