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2일(현지시간) 포르투갈과 경기에서 승리해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① 부상·심판·퇴장... 악재 또 악재,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다
벤투호의 이번 카타르 월드컵 여정은 그야말로 '악재의 연속'이었다.
개막을 앞둔 시점부터 에이스 손흥민이 수술대에 올랐다. 지난달 초 상대 수비수와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눈 주위 뼈 네 군데가 골절됐다. 부상 초반엔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의학계의 공통된 소견이었고, 안면 보호 마스크를 착용하더라도 100% 경기력을 보여주진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손흥민을 중심으로 4년을 준비한 벤투호 입장에선 치명적인 소식이었다.
카타르 입성 후에도 악재는 끊이지 않았다. 황희찬(26·울버햄튼)은 햄스트링 부상을 안은 채 대표팀에 합류한 뒤 줄곧 재활에만 매달렸다. 우루과이와의 첫 경기에선 수비의 핵심인 김민재(26·나폴리)가 종아리 근육 부상을 당해 쓰러졌다. 가나와의 2차전에서는 앤서니 테일러(44·잉글랜드) 주심의 석연찮은 판정, 그리고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감독의 퇴장으로 16강 명운이 걸린 포르투갈전을 지휘할 수 없는 변수까지 등장했다.
한 대회에 이 정도까지 악재가 연이어 발생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안타까웠던 상황. 그럼에도 벤투호가 월드컵 16강이라는 성과를 올린 건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손흥민이 11월 16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닝센터에서 수술한 왼쪽 눈 주위를 보호할 마스크를 쓰고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적 같은 회복 속도를 보인 손흥민은 결국 조별리그 1차전부터 전 경기를 선발 풀타임 출전했다. 골은 터지지 않았으나 포르투갈전에서 황희찬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지난 두 번의 월드컵에선 아쉬움의 눈물을 쏟았다면, 이번엔 '드디어 해냈다'는 감동의 눈물을 그라운드 위에서 흘렸다.
김민재의 부상 공백은 그의 투혼, 그리고 다른 수비 자원들의 노력으로 극복했다. 우루과이전 부상 후 제대로 훈련조차 하지 못하던 그는 가나와의 2차전에 통증을 참아가며 그라운드를 누비는 투혼을 펼쳤다. 가나전 출전이 독이 돼 포르투갈전엔 벤치를 지켰으나, 다행히 권경원(30·감바오사카)과 김영권(32·울산현대)이 공백을 잘 메우며 16강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김민재(가운데)가 11월 28일(현지시간) 가나와 경기에서 2-3으로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벤투 감독의 가나전 퇴장으로 직접 지휘하지 못했던 포르투갈전은 세르지우 코스타(49·포르투갈) 수석코치를 비롯한 코치진이 팀을 잘 이끌었고, 선수들 역시 흔들리지 않았다.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린 황희찬의 교체 투입을 결정한 것도 코스타 코치였다. 벤투 감독은 4년을 함께한 선수들과 코치진에 대한 깊은 신임을 보냈다.
지칠 대로 지친 수비진, 그리고 현격했던 실력 탓에 세계 최강 브라질과 16강전에선 1-4 완패를 당해 원정 첫 8강 역사를 쓰지는 못했다. 그러나 대회 내내 끊이지 않았던 악재들을 극복하고, 불과 9%(미국 통계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 기준)에 불과했던 16강 확률을 뚫어냈다는 점만으로도 벤투호의 카타르 월드컵 여정은 박수가 아깝지 않았다.
5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스타디움 974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한국-브라질의 16강전. 1-4로 패배하며 월드컵을 마무리한 한국 선수들이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