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지 "심장을 막 뛰게 한 '안나', 내게 '궁디 팡팡'하게 했다" [★FULL인터뷰]

2022 영화 결산 릴레이 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22.12.27 09:00
2022년 한국영화계는 코로나 팬데믹을 이겨내려는 움직임이 활발했습니다. 그만큼 성과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올해를 빛낸 영화인들을 스타뉴스가 만났습니다. 첫 주자는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이며, 두 번째 주자는 '안나'로 큰 사랑을 받은 수지입니다.


수지는 안나였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를 본 사람들에게, 수지는 안나였다. 배우가 오롯이 작품 속 이름으로 기억될 수 있는 건, 축복이자 큰 시험이다. 수지는 해냈다. 앞에 놓인 큰 벽을, 큰 산을, 마침내 넘었다.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벽과 또 다른 산이 있겠지만 분명한 건 그녀는 해냈다는 점이다. 이 경험은 수지를 더 큰 배우의 길로 인도할 것 같다.

-'안나'는 원래 영화로 기획됐다가 드라마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화로 기획됐을 때는 다른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거론됐었다. 또 드라마로 기획이 바뀌었을 때도 tvN 편성 이야기가 나왔다가 불발됐고, 결국은 쿠팡플레이에서 투자해 만들어졌는데. 그랬다는 건 이 작품이 기획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는 뜻인데. 여배우 원톱 주연 드라마를 아직 투자자들이 잘 선택하지 않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다 알면서도 왜 꼭 '안나'여야 했나.


▶세부적인 부분은 잘 모르기도 했고, 걱정되는 부분은 분명 있었다. 그건 오롯이 나였다.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까, 내 욕심이 앞선 것일까, 하고는 싶은데 해도 될까, 이런 걱정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왜 나한테 왔을까란 생각도 했다. 아무래도 극 중 안나 캐릭터의 나이대가 실제 나와 조금 다르기도 하고.

그런데 심장이 막 뛰더라. 대본을 읽는데 인물의 심리를 내가 따라가고 있더라. 그건 연기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과는 좀 다른 부분이다. 어떻게 연기를 하고, 어떻게 대사를 표현하고 싶다기보다 안나를 받아들이려 하는 내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나가 돼 '안나' 촬영을 시작했나.

▶시작하기 전까지 100%가 되진 못했다. 그랬는데 촬영현장에서 그 공간에서, 그 옷을 입고, 그 기운을 느끼니 온전히 안나가 느껴지더라.

-매체 연기에서 보통 대사가 적고 감정을 발산하는 장면이 많지 않으면,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는 느낌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감정을 누르는 연기는, 그리고 그런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연기는 훨씬 어렵기도 하고. 특히 미남미녀 배우들은 감정을 누르는 연기를 관객에게 잘 전달하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아무래도 시선이 분산되기 쉬우니깐. 그래서 그 벽을 넘어야 하는데. 그런데 '안나'에서 수지는 그걸 해냈는데. 그 불안함이 그대로 전달되던데.


▶유미가 안나가 되면서 갖게 된 불안감, 안들키려는 불안감, 그런 불안을 계산도 했고 준비도 많이 했다. 눈동자에서 보여질 수 있도록, 호흡에서 느껴질 수 있도록 매 신마다 계산하며 준비했다. 감정을 꾹꾹 눌러야 하는 장면들이 많아서 더 계산했고, 그런 불안이 가사 도우미 분에게 폭발할 때 복합적으로 감정이 전달되길 바랐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겐 내지르지 못하면서 그렇게 소리 지르는데 대한 미안한 마음과 한편으로 내가 미쳐가고 있구나란 그런 무수한 감정들.

-현장에서 외롭지는 않았나.

▶정은채, 김준한, 박예영 등 동료들과 촬영 전에 술마시면서 장난으로 우리 너무 친해지지 말자고 했었다. 아무래도 극 중 감정을 유지하려면 그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극의 분위기와는 달리 현장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서로 각자 캐릭터의 감정과 연기에 대해 다른 때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더 많이 소통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맨 마지막 교통사고가 나고 비틀거리지만 똑바로 서서 걸어가는, 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는 잘 모르겠는, 그 장면과 표정이 정말 좋던데.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부터 이 신을 하고 싶어서 이 작품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아하는 장면이었다. 대본에는 서럽게 운다라고 돼 있었다. 울고 싶다기 보다는 정말 제대로 소리를 한 번 질러 보고 싶었다. 층간 소음 때문에 집에서는 연습도 할 수 없었고, 또 현장에서만 나오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군산에서 그 장면을 찍었는데, 정말 추웠다. 해가 지고 있었고, 완전히 지기 전 아직 하늘이 빨갛게 물들어있을 때 그 장면을 빨리 찍어야 했다. 난 그런 상황이 재밌다. 촉박하고 모든 사람이 이걸 꼭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모아질 때, 그런 상황이 주는 에너지가 있다. 그걸 해냈을 때 뿌듯한 순간이 있다. 그래서 감사했다.

-'건축학개론'으로 만났을 때, 그 때의 수지는 "저 열심히 살아요"라고 이야기했었다. 가수로서 하루를 쪼개 일정을 소화하고 새벽까지 안무연습을 하고 1시간도 제대로 못자고 영화 촬영을 하러 갔었을 때였다. 그렇게 열심히 사는 시간들은 계속 됐겠지만 세상은 때론 가혹하기도 하고 평가가 냉정하기도 했는데. 그런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냈나.

▶누구나 다 열심히 살지만, 직업의 특성상 일을 하면 평가들이 늘 뒤따랐다. 곧이 곧대로 그 평가들이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서 안 나오던 시기가 있었다. 딛고 살아가려 해도 말이 잘 안나오는 순간들이 있었고. 버티고 버티고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살아갔다.

그래서 '안나'를 선택했다. 어떤 평가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잘하면 되지, 뭐. 칭찬 한 번 받아보자"라고 마음 먹었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인 것 같은데, '안나'를 한 수지에겐 칭찬을 해 줄 수 있었나.

▶그 말처럼 스스로에게 엄격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좀 더 나를 강하게 만들어준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안나'를 하면서 나에게 칭찬을 좀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조금씩 너무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굴지 말자고, "궁디 팡팡" 해주자고 마음 먹었다.

-촬영은 '안나'보다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가 먼저였는데. '원더랜드'는 다양한 커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수지-박보검 라인이 가장 중심 서사인데. 현장에서 전해졌던 이야기로는 수지의 에너지가, 연기가 참 좋았다고 하던데.

▶'원더랜드' 현장에서 얻은 에너지가 정말 많았다. 그 촬영장에서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난 착한사람병 같은 게 있다. 사람들을 다 챙기려 한다. 그러다보니 정작 내꺼를 못 챙기는 경우가 많았다. 작품을 할 때는,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선, 현장에서 좀 더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안나'를 할 때는 최고로 이기적인 캐릭터이기에 최고로 현장에서 나한테 집중하려 했다.

예전에는 내가 좋은 사람이길 바랐다. 늘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그렇게 사람들을 대했다. 보상심리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좋게 하면 나한테 그 좋게 한 것들이 돌아오지 않을까란. 그렇게 기대하게 되고 그렇게 기대를 잃어가기도 했다. '안나'를 하면서 그런 것들에서 좀 자유로워졌다. 나한테 더 집중해야 할 때가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안나'를 보면서 다들 뜨끔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다들 크고작은 거짓말을 하고 살지 않나.

-'안나'로 많은 칭찬을 받았는데.

▶처음 겪어보는 낯선 느낌이었다. 유미로 보인다, 안나로 보인다, 그런 말들이 너무 감사했다. 한동안 안나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그 말투와 행동이 배어나올 때도 있었고.

가수 활동할 때는 너무 바쁘고 정신 없었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래서 뭐가뭔지 잘 모를 때도 많았고. 내가 이 큰 무대에 서는구나, 꿈이 이뤄졌다는 걸 지나고서야 안 적도 있었다. 배우는 다른 걸 내려놓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녹아들어가는 것 같다. 한 때는 이게 내 일이구나라고 생각하면 일처럼 느껴져서 즐기지 못했다. 요즘은 일이구나라고 확신하게 됐다. 확신하게 되니 편해지더라.

-직업인 수지의 삶은 어떤가.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한다. 자연스럽게 루틴이 생긴다.일하는 나와 일 하지 않는 내가 구분이 되면서 편해졌다. 재밌다. 그동안은 뭐가, 왜, 이리 계속 힘들어야 했을까, 이제는 일하다가 생긴 스트레스도 훌훌 털어내고 퇴근하려 한다.

-'안나'도 수지의 어떤 부분을 닮았지만 새롭게 들어가는 넷플릭스 '이두나!'도 수지와 닮은 부분이 있는데. '이두나!'에선 큰 인기를 누렸던 아이돌 멤버였다가 갑자기 은퇴하고 대학가 쉐어하우스에 사는 인물을 연기하는데.

▶난 나와 다르면 그 캐릭터와 잘 공감을 못한다. 공감이 돼야 확 흥미가 생긴다. '안나'는 그래서 공감이 정말 많이 됐다. 나 뿐 아니라 사람들은 모두 불안하지 않나. 압박감을 느끼고. '이두나!'는 나의 어떤 부분과 닮았다. 온전하게 느끼지 못하고 그냥 서 있는 느낌. 그 때의 나.

-'안나'에는 "지옥은 공간이 아니라 상황"이라는 대사가 있었다. 공감하나.

▶완전히 공감한다. 가끔은 왜 인간끼리도 이렇게 소통이 안될까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요즘은 일이 좀 재밌다. 순간순간이 재밌고 감사하다.

-MBTI는?

▶ISTP. 검사할 때마다 8번 바뀌었는데 이게 가장 마지막 버전이다.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MBTI가 바뀌는 것 같기도 하다.

-올해 가장 감사한 것은.

▶촬영을 기분 좋게 마치고, 그러니깐 퇴근한 후에 우리 스태프와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때. 난 참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 때, 정말 감사하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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