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또는 갓진영. 팬들은 갓세븐 출신 박진영을, JYP 박진영과 구분하기 위해 그를 갓진영이라 부른다. 배우의 길을 열심히 걷는 박진영에게, 어느 순간 갓진영이라 구분 짓는 일은 사라질 듯 하다. 적어도 '크리스마스 캐럴'을 본 사람이라면, 오롯이 박진영이란 배우가 존재할 뿐이다. 박진영은 그의 눈에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걸, '크리스마스 캐럴'로 입증했다. 박진영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경남 진해에서 고등학교 때 가수가 되기 위해 상경했다. 그런데 '드림하이2'로 배우로 먼저 데뷔했고, 그 뒤 듀오인 JJ프로젝트로 가수 활동했다가 다시 갓세븐으로 데뷔했는데. 그러다가 이제 다시 배우의 길을 걷고 있고. 상경했던 시절 배우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나.
▶이런 말은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기에 비로서 조심스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드림하이2'로 데뷔할 때는 연기에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당시 19살이었는데, 뭐가 뭔지 잘 모를 때였다. 배우가 되기 위해 절실한 뜻을 갖고 준비하는 다른 분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남자가 사랑할 때'를 했을 때는 이 길이 나와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은동아'를 하면서 뭔가 연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서사가 있는 캐릭터를 그 감정대로 연기하면서 좀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일에 흥미를 느끼는구나라는 감정이 돋아났다. 그때부터 연기에 대한 생각을 더 하게 됐고, 사랑하게 됐다.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하면서도 가수의 길 또한 놓지 않고 있는데. 이번에도 드라마를 찍으면서도 새 앨범을 준비 중이고.
▶춤에 대한 미련이 여전히 크다. 가수와 연기,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안한다. 다만 이것도 제대로 못하는데 저것도 못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연기를 계속 하면서 휴가 받으면 조금씩 조금씩 앨범을 준비해왔다. 갓세븐 활동 할 때는 오롯이 노래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연기를 본격적으로 하면서는 스스로 경험이 쌓이고 해보자,라는 마음이 들 때까지 계속 매진했다.
-전 소속사였던 JYP엔터테인먼트에서 BH엔터테인먼트로 옮긴 뒤 드라마 '악마판사' '유미의 세포들' '화양연화', 영화 '야차' 등 정말 쉼 없이 달려왔는데. 정식으로 소개되진 않았지만 강형철 감독의 '하이파이브'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이고. 그러다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선택한 이유는. 기존 작품들과는 성격이 매우 다른데.
▶'야차'와 '화양연화' 때는 앨범도 준비할 때라 그야말로 몸을 갈아넣었다. 음. '크리스마스 캐럴'은 재밌다, 안 재밌다를 떠나서 처음 제안을 받고 원작이 있다고 해서 원작소설부터 읽었다. 다 읽고나서 "이걸 영화로 만든다고, 왜"라고 했다. 그만큼 이야기가 강렬하면서도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게 잘 상상이 안갔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읽었다.
자꾸 캐릭터들이 떠오르더라. 쌍둥이 형제인 일우와 월우가 간질간질하게 마음 속에 떠오르더라. 한다고도 안했는데 어떻게 연기 할 지 고민하는 걸 보니 이 작품은 해야 하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에 이렇게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가 다시 오기 쉽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뿐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군대 가기 전에 이런 캐릭터를 또 만날 수 있을까, 20대를 떠나 보내면서 결과는 둘째 치고 꼭 하고 (군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3일 고민하고 바로 오케이했다. 한편으로는 김성수 감독님에게 정말 감사하다. 그 전 작품들 속에서 내 이미지는 보들보들했을 텐데, 그런 내게 이런 캐릭터를 제안해주신 건 나로 하여금 시도를 하고 싶으셨다는 뜻이었을테니.
-가수와 배우의 길은 매우 다르다. 가수의 꿈만 꿨다가 어느 순간부터 배우의 길을 같이 생각하게 된 것인가.
▶'사랑하는 은동아'가 시발점이었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감정신을 하고 난 뒤 그 맛이 오래 가더라. 배우는 가수와 다른 작업방식이란 게 좋았다. 결과물이 좋아서 (배우가) 좋았다면 이렇게 못 했을 것 같다. 작가님과 감독님이 굉장히 고민해서 만든 장면을, 내가 내 나름대로 어떻게 연기할지 신을 만들고 그걸 다시 컴펌을 받고 그 뒤 연기를 하는 작업방식이 너무 좋다. 그래서 즐겁게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화양연화'를 하면서 더 감정 연기를 진하게 해보니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구나라고 확신을 가졌다. 사실 '화양연화'는 워낙 양조위를 좋아하는데 이 작품을 하면 내 필모그래피에 양조위와 똑 같은 이름의 작품이 들어가는구나란 생각으로 시작했다.(웃음)
'크리스마스 캐럴' 박진영 스틸
▶두 사람이 쌍둥이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너무 달랐다. 그걸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전혀 다른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캐릭터들을 구축했다. 한 명은 너무 화만 가득 차 있고, 한 명은 계속 웃고. 그런 인물을 내가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래서 일우는 분노조절장애라고 생각했다. 월우는 발달장애를 따라하기 보다는 어떤 생각을 갖고 생활하는지, 같은 상황에 놓여도 생각의 시스템과 경로가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일우가 화라는 경로를 갖고 있다면, 월우는 살아남기 위해 견디는 경로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우와 월우에 각기 들어가기 위한 포인트가 있다면.
▶히스 레저를 좋아하는데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인물의 목소리를 찾으면 인물의 호흡이 저절로 따라온다고 말한 게 있다.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둘의 목소리를 찾으려 했다. 월우는 본인의 생각이 허공에 떠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그래서 생각을 보기 위해 허공을 보고 그렇게 하니 행동이나 손짓 등이 자연스럽게 따라가더라. 일우는 화가 나면 입을 오물오물 거린다. 실제 내 친구의 버릇이다. 그래서 촬영 들어가기 전에 그 포인트들을 10분 전부터 준비했다. 스위치를 누르면 일우가 나오고 월우가 나오도록. 일우 촬영이면 10분 전부터 화를 내면서 입을 오물오물 거리고, 월우 촬영이면 10분 전부터 허공에 있는 생각을 찾았다.
-영화에는 편집됐지만 월우가 자기 방에서 끔찍한 일을 당하는 장면은 실제 촬영도 더 구체적으로 했는데. 또 마지막 십자가 장면은 CG로 덧붙이긴 했지만 실제 십자가를 보면서 찍었나.
▶바로 찍어야 하는 상황이라 당시는 정신이 없었는데 몸에 잔상은 남은 것 같다. 그 장면을 촬영한 뒤 눈물이 많아졌다. 십자가 장면은, 정말 세상에는 십자가가 많더라. 실제로 멀리 있는 십자가를 보면서 연기했다.
-연기하기가 정말 힘든 장면이었을텐데. 또한 월우가 왜 그런 결말을 맞게 됐는지 배우 스스로가 고민하지 않으면 안됐을 장면이기도 했을테고.
▶찍을 때 감정은 복합적이었다. 그 상황에 있는 월우의 감정을 다 받아들이면서 연기하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연기하기에는 그 인물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고. 그래서 그 장면을 찍을 때는 일부러 현장에서 가벼우려 했다. 장난도 치고. 그러다가 슛 들어가면 몰입했다.
왜 월우가 그런 결말을 맞게 됐을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육체적으로는 아이들에게 맞아서 가슴뼈에 금이 갔다가 그 뒤 그런 상황을 맞으면서 호흡을 점점 못하게 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숨을 가쁘게 쉬는 걸 표현했다. 심리적으로는 월우가 웃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 너무 힘들어, 가야 할 것 같아. 그렇게 고민했다.
-동생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형이 소년원에 들어간다는 설정이라면, 사람들은 흔히 17대 1쯤은 가뿐한 '테이큰' 류의 액션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일우가 하는 액션은 날 것 그대로인데. 특히 하이라이트인 목욕탕 액션은.
▶감독님의 생각에 맞도록 내가 나름대로 고민한 액션은, 10대가 잘 싸우면 얼마나 잘 싸우겠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기가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욕탕 장면에서 일우는 다른 아이들이 볼 때는 귀신 같아 보이길 바랐다. 복수하려 찾아온 귀신. 이 순간 만큼은 내가 바로 귀신이 되자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얻어 맞을 때도 눈을 부릅 떴다.
-같이 연기한 김영민은 어땠나.
▶정말 묵묵히 현장을 지켜주시면서 너무 진실되게 연기해주셨다. 힘든 현장이었는데도 내색 한 번 안하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셨다. 정말 진실되게 연기하니 그 연기를 받아서 하면 됐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같이 연기한 김동휘, 손건희 등과는 어땠나.
▶같이 한 6명의 친구들이 두 번째 팀 같다. 갓세븐에 이어.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영상통화를 한다. 처음에는 나도 급급하고 여유가 없었는데, 이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연기를 하다가 친해지면 이미 촬영이 끝났을 것 같았다. 그래서 6명이 같이 술을 한 잔 하다가 정말 친해졌다. 내가 이 영화를 하면서 이 캐릭터를 설렁 제대로 소화 못하더라도 이 친구들은 남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성향도 비슷비슷하고 연기 열정도 다 뜨겁다. 친구를 얻은 것 뿐 아니라 동료로서 믿고 연기할 수 있는 배우들이다.
박진영/사진제공=엔케이컨텐츠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 대한 선입견은 나 스스로도 예전에는 있었다. 그건 나에 대한 선입견이다. 연기를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고, 연기자를 목표로 했던 것도 아니었으니깐. 그러다가 반대로 생각했다. 내가 못하는 건 당연하니 그럴 생각을 할 시간에 잘하도록 노력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러다보면 사람들에게 어느 순간 졸업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배워야 하는 사람이다. 이번 영화에선 연기 선생님과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연기해야지를 논한 게 아니라 내가 이 캐릭터를 이런 식으로 구축했으면 하는데 어떠시냐고 물어보면 그 포인트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주고 나눴다.
-내년 3월 입대를 앞두고 드라마 '마녀'를 찍고 있으면서 앨범 준비를 하고 있고 팬미팅 준비도 하고 있는데. 군대 가기 전에 다 해보고 싶은 마음인가.
▶열정도 열정이지만 내 욕심 때문인 것 같다. 군대 가기 전에 뭐든 해보고 싶다. 20대의 나를, 내 얼굴을 기록해놓고 싶다. 이번 앨범에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과 팬들이 원하는 음악을 고루 담았다. 그래서 더블 타이틀이다. 2년 동안 준비한 곡들을 선별했다.
-군대에 갔다가 잊혀질까 두려운 것은 아니고.
▶난 JJ프로젝트로 데뷔했다가 잘 안되고 난 뒤 다시 갓세븐으로 데뷔할 때까지 1년 반 동안 공백기간이 있었다. 어릴 적에는 한 방에 잘됐으면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런데 나한테 행운인 건, 삶이 계단식이란 점이다. 꾸준히 조금씩 계단을 올라가는 것 같다. 그래서 잊혀진다거나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팬들은 JYP의 수장 박진영과 구분하기 위해 갓세븐의 박진영을 줄여서 갓진영이라 부르는데. 이름 또는 예명에 대한 부담이나 결핍은 없었나.
▶난 박진영 프로듀서와 아주 친한 건 아니지만 그의 노래와 춤을 워낙 좋아하고 아티스트로 존경한다. 그래서 JYP에서 데뷔하려 상경했다. 사실 이름에 대한 결핍이 없었던 건 아니다. 팬들이 갓진영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난 갓이 아닌데' 라고 했다가 갓세븐의 박진영이라고 해서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예명에 대한 고민을 진짜 많이 했다. 그러다가 아, 몰라, 그냥 내 이름으로 할래라고 마음 먹었다. 배우 박진영으로 내가 우뚝 설 날이 오게 되면 하는 바람과 목표, 욕심은 있다.
-올 한해 감사한 게 있다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친구들도 그렇고 '유미의 세포' 배우와 감독님도 그렇다. 매 작품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정말 감사하다. 또 바비, 일우와 월우, '하이파이브' 등에서 내가 뿌듯하게 만난 캐릭터들. 지금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끌어다 써서 해낸 느낌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문자 한 통. 나한테 직접 보내신 건 아니다. 경상도 분이라 표현을 잘 안하시는데, 부산에서 같이 춤췄던 나랑 친한 누나에게 문자를 보내셨더라. '크리스마스 캐럴'을 보니 진영이가 왜 배우를 하려고 했는지 알겠더라는 문자셨다. 그 누나가 그 문자를 내게 보내줬다. 울컥 했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