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진탕→기억상실'에도 끝까지 달렸다... 이지훈 눈물겨운 투혼, 근대5종 단체 金을 빚었다 [항저우 현장]

항저우=안호근 기자  |  2023.09.25 06:53
이지훈이 24일 근대5종 남자 개인전에서 역주를 하고 있다. /사진=OSEN 이지훈이 24일 근대5종 남자 개인전에서 역주를 하고 있다. /사진=OSEN
2위로 들어오는 이지훈(오른쪽)을 전웅태가 두 팔을 벌려 반겨주고 있다. /사진=OSEN 2위로 들어오는 이지훈(오른쪽)을 전웅태가 두 팔을 벌려 반겨주고 있다. /사진=OSEN
"(이)지훈이가 '제가 지금 1등이에요?'라고 묻더라고요."

근대5종 개인전을 마친 맏형 정진화(34·LH)의 발언은 충격이었다. 개인전 2위를 차지하며 단체전 금메달을 이끈 이지훈(28·LH)이 뇌진탕 증세를 딛고도 끝까지 뛰어 은메달을 따냈다는 것이었다.


이지훈은 25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근대5종 남자 개인전에서 펜싱, 수영, 승마, 레이저 런(육상+사격)까지 합쳐 1492점을 획득, 동갑내기 전웅태(광주광역시청·1508점)에 역전을 허용하며 은메달을 차지했다.

경기 후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전웅태에게 쏠렸다. 심지어 이지훈은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을 지나가지도 않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마장마술 연습 과정에서 낙마하는 이지훈(오른쪽). /사진=뉴시스 마장마술 연습 과정에서 낙마하는 이지훈(오른쪽). /사진=뉴시스
이지훈(왼쪽)이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OSEN 이지훈(왼쪽)이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OSEN
그러나 인터뷰를 마친 정진화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너무도 놀라운 나머지 충격적일 정도였다. 펜싱에서 268점을 얻고 수영에서도 302점으로 얻으며 1위를 달리던 이지훈이 승마 연습 과정에서 말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는 것이었다.

통증을 호소한 이지훈은 제 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정진화는 "지훈이가 연습 도중에 낙마했다. 뇌진탕 증세를 보였고 제 정신이 아닌 채로 끝까지 뛰었다"며 "중간에 '제가 지금 1등이냐', '지금 출발하면 되냐'는 등의 질문을 하더라"라고 말했다.


뇌진탕 증세로 인해 단기 기억상실 증상을 보였다. 그럼에도 본능에 의지해 레이스를 이어갔고 끝내 은메달까지 딴 게 믿을 수 없었다.

이지훈은 승마에서도 페널티 없이 장애물을 넘어 전체 1위 성적으로 통과했다. 그러나 뇌진탕 후유증 때문인지 수영에서 7위에 그쳤다. 여전히 1위 자리를 지키며 바짝 추격한 전웅태보다 32초나 먼저 레이저런을 시작했지만 11분 18초 45라는 전체 11위 성적으로 결국 전웅태에게 역전을 허용하며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지훈(왼쪽)이 경기 도중 머리를 붙잡고 통증을 나타내고 있다. /사진=OSEN 이지훈(왼쪽)이 경기 도중 머리를 붙잡고 통증을 나타내고 있다. /사진=OSEN
이지훈이 부상에도 불구하고 마장마술 경기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OSEN 이지훈이 부상에도 불구하고 마장마술 경기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OSEN



현장을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와 역도 영웅인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따뜻하게 이지훈을 격려했다. 한 국무총리는 이지훈에게 엄지를 들어올리며 격려하며 노고를 치하했다.

이지훈의 눈물겨운 투혼은 근대5종 단체전 금메달로 이어졌다. 국가별 상위 3명의 합산 기록으로 성적을 매기는 단체전에서 한국은 우승을 차지한 전웅태와 2위 이지훈, 4위 정진화가 나란히 상위권에 자리하며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한 전웅태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는 "지훈이가 1등을 하든 제가 1등을 하든 솔직히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며 "대한민국에서 개인이 (금)메달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지훈이 뒤를 최대한 바짝 따라붙으려고 했다. 지훈이가 몸 상태가 지금 굉장히 안 좋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서 순위가 바뀌면서 좀 미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지훈은 전웅태를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전웅태는 "지훈이가 '그래도 네가 1등해서 고맙다'고 얘기해줬다"며 "서로 의지를 하고 유대 관계가 잘 형성된 것 같다.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기쁘기도 한데 또 많이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지훈(가운데)이 경기장을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격려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지훈(가운데)이 경기장을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격려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지훈(왼쪽)이 전웅태와 함께 시상대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걸고 미소짓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지훈(왼쪽)이 전웅태와 함께 시상대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걸고 미소짓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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