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된 LG 오지환(가운데)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스1
오지환은 역대 최초로 단일시즌 한국시리즈 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2차전에서 KT 위즈 에이스 윌리엄 쿠에바스를 상대로 추격의 솔로포를 친 뒤 3차전에서는 5-7로 뒤진 9회초 상대 마무리투수 김재윤에게 극적인 역전 결승 3점포를 폭발했다. 4차전에서도 7회 주권을 상대로 또 한 번 3점 홈런을 쏘아올렸다. 8타점 가운데 7타점을 홈런으로 얻어내는 대활약이었다. 그는 기자단 투표에서 총 93표 중 80표를 얻어 팀 동료 박동원(7표)과 박해민(4표), 유영찬, 문보경(이상 1표)을 제치고 한국시리즈 MVP 트로피와 상금 1000만원을 품에 안았다.
한국시리즈 MVP는 한 시즌 프로야구의 제일 마지막 경기 때 탄생한다. 그해 프로야구의 대미를 장식하는 주인공이다. 과연 어떤 선수들이 그 영광을 누렸을까.
다큐멘터리 영화 '1984, 최동원' 스틸. /사진=뉴시스
한국시리즈 MVP는 당연히 해당 시리즈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영광이다. 그러나 좋은 활약을 펼쳤다고 꼭 그 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84년 한국시리즈가 대표적인 예다. '최동원 시리즈'로 불리는 너무나도 유명한 한국시리즈다. 최동원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앞으로도 나올 수 없을, 단일 한국시리즈 4승을 혼자서 모두 챙겼다. 롯데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홀로 책임진 셈이다. 최동원이 MVP를 받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그해 한국시리즈 MVP는 7차전에서 3-4로 뒤진 8회 3점 홈런을 날려 6-4 역전승을 가져온 유두열의 차지였다.
최동원은 그해 삼성 라이온즈와 한국시리즈에서 1, 3, 5, 7차전에 선발 등판해 모두 완투했다. 2승 3패로 뒤진 6차전에도 선발투수 임호균에 이어 5회 등판해 남은 5이닝을 모두 던지며 구원승을 따내 3승 3패로 승부의 균형을 맞췄다. 네 차례 완투와 세 차례 완투승(1차전은 완봉승)에 한 번의 구원승을 더했다. 5차전에서만 완투패를 안았다. 단일시즌 한국시리즈 최다 투구 이닝(40), 최다 탈삼진(35개) 등 프로야구 역사에서 아직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을 남겼다. 5경기 평균 자책점은 1.80이었다.
반면 유두열은 역전 우승을 가져온 결정적인 한방을 터뜨렸지만, 시리즈 전체 성적은 1할대 타율에 그쳤다. 21타수 3안타(타율 0.143)에 1홈런 3타점을 올렸다.
최동원은 한국시리즈 MVP를 놓쳤지만, 정규시즌 MVP를 거머쥐었다. 그는 1984년 정규시즌에서 팀의 전체 100경기의 절반을 넘긴 51경기에 등판해 14차례 완투를 하며 282⅔ 이닝을 던져 27승(13패) 6세이브에 탈삼진 223개를 수확했다. 평균자책점은 2.40이었다. 다승 1위, 탈삼진 1위, 평균자책점 4위, 승률 4위(0.675)에 올랐다. 27승은 역대 한 시즌 다승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1위는 1983년 삼미 장명부의 30승). 정규시즌 MVP를 차지하기에 너무나도 충분한 성적이었다.
최동원이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MVP를 모두 차지할 수 있는 성적을 거뒀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당시 투표 방식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다.
1984년 정규시즌 MVP와 한국시리즈 MVP, 신인상 등의 기자단 투표는 한국시리즈 최종전이 열리는 날에 한꺼번에 실시됐다. 그해 한국시리즈 최종 7차전은 한글날인 10월 9일 열렸다. 결과는 한국시리즈 시상식 직후 곧바로 발표됐다.
당시 기자실은 전쟁터와도 같았다. 우승의 향방이 최종 7차전 후반부인 8회에 뒤집히면서 기사 송고에 정신 없는 상황에서 MVP와 신인왕 기자단 투표까지 진행해야 했다. 투표 결과는 최동원이 정규시즌 MVP, 유두열이 한국시리즈 MVP를 나눠가지는 것으로 나왔다. 신인왕은 윤석환(OB)이 차지했다.
'나눠먹기'식의 투표 때문이었다. 이런 배려 투표는 KBO리그 초창기에 암묵적으로 흐르는 기류였다.
선동열의 연도별 한국시리즈 성적. /자료=KBO 기록대백과
선동열의 통산 한국시리즈 성적은 14경기 등판(선발 5경기)에 6승(4구원승) 1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1.74다. 1986년 3경기(19이닝) 1세이브 평균자책점 1.42, 1989년 3경기(16이닝) 1승 1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1.69, 1993년 4경기(17⅓이닝) 2승 1세이브, 평균자잭점 1.04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지만, 각각 김정수, 박철우, 이종범에게 한국시리즈 MVP를 양보해야 했다.
요즘 기자단 투표는 먼저 정규시즌 MVP와 신인상을 포스트시즌에 들어가기 직전에 실시해 별도 시상식 날에 그 결과를 발표하고, 한국시리즈 MVP는 현장에서 투표를 한 뒤 곧바로 공개하고 있다.
2017년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한 KIA 양현종. /사진=뉴스1
2017년 정규시즌 MVP를 차지한 양현종(오른쪽)과 신인왕에 오른 이정후. /사진=뉴스1
정규시즌 MVP와 한국시리즈 MVP의 투표 분리에도 한 해에 두 상을 모두 석권하는 선수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정규시즌 장기레이스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선수라도 한국시리즈에서 팀 우승과 함께 빼어난 활약까지 펼치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올해까지 42년의 KBO리그 역사에서 한 시즌에 두 개의 MVP를 독식한 선수는 단 한 명뿐이다. 2017년 KIA 타이거즈의 통합 우승을 이끈 양현종이다. 모든 조건을 충족할 만한 활약을 정규시즌에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도 펼쳐 두 상을 모두 차지할 수 있었다.
양현종은 그해 정규시즌에서 31경기에 나서 193⅓이닝을 던져 20승 6패 평균자책점 3.44, 158탈삼진을 기록하며 MVP를 품은 데 이어, 두산 베어스와 한국시리즈에서도 2경기에서 10이닝을 던져 1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0의 완벽한 투구를 하며 MVP를 차지해 불문율처럼 지켜지던 두 상의 분리 수상을 마침내 깼다. 2차전에서 완봉승을 거둔 데 이어 5차전에서 우승을 확정하는 세이브를 올려 4승 1패의 우승을 매조졌다.
삼성 오승환. /사진=뉴시스
신인 선수가 한국시리즈 MVP를 받은 사례는 세 차례였다. 1986년 김정수(해태)와 1993년 이종범(해태), 2005년 오승환(삼성)이 그 주인공이다.
이 가운데 오승환만이 그해 신인상까지 두 개의 상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그는 2005년 정규시즌에서 10승(1패)-16세이브-11홀드를 챙겨 세 부문에서 모두 두 자릿수를 넘기는 KBO리그 첫 '트리플 더블'을 달성했고, 두산과 한국시리즈에서는 3경기에서 7이닝을 던져 1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0, 11탈삼진의 무실점 완벽투를 뽐내며 4연승 무패의 우승에 힘을 실었다.
김정수는 1986년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 4경기에 나서 혼자 3승(1, 3, 5차전 승리투수)을 쌓았다. 14⅔이닝 동안 4자책점을 내주고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하며 4승 2패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한국시리즈 최다승(7승)을 기록하고 8개의 우승반지를 갖고 있는 등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가을 까치'라는 별명을 얻었다. 1986년 정규시즌에서는 41경기에서 9승 6패 5세이브, 평균자책점 2.65, 92탈삼진의 준수한 성적을 거뒀지만, 신인왕 투표에서는 18승(6패 평균자책점 1.80, 102탈삼진)을 올린 MBC 김건우를 넘을 수 없었다.
이종범은 1993년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의 끝을 장식하며 해태에 7번째 우승컵을 안기고 자신은 한국시리즈 MVP를 품었다. 타율 0.310(29타수 9안타) 4타점 7도루의 성적표였다. 특히 7차전에서 1회말 안타 뒤 도루를 성공해 상대 선발투수 박충식을 흔든 뒤 선취 득점을 올렸고, 3회말에는 내야안타 뒤 또 2루를 훔쳐 시리즈 7번째 도루에 성공했다. 7도루는 1984년 삼성 장효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역대 한국시리즈 최다 타이 기록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4회말 2사 1, 2루에서 좌익선상 적시타를 날려 2-0으로 점수 차를 벌렸다. 삼성 마지막 타자 이만수의 유격수 땅볼을 처리하며 우승을 확정한 수비도 그의 몫이었다. 곧바로 투수 선동열과 포수 정회열 배터리가 환호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이종범은 그러나 신왕왕 경쟁에서는 양준혁(삼성)에게 밀려 수상에 닿지 못했다. 정규시즌에서 타율 0.280, 16홈런 53타점 85득점 73도루로 득점 1위, 도루 2위, 홈런 4위에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양준혁(타율 0.341, 23홈런, 90타점, 82득점)을 넘지 못했다. 양준혁은 그해 타율 1위, 장타율 1위(0.598), 출루율 1위(0.436), 홈런 2위, 타점 2위, 득점 2위 등 무시무시한 활약을 펼쳤다.
이종범은 4년 뒤인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도 3개의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MVP를 차지해 LG 김용수(1990, 1994년)에 이어 두 번째로 두 차례 수상의 영광을 맛봤다. 그 뒤 현대 정민태(1998, 2003년), 오승환(2005, 2011년), 양의지(2016, 2020년)가 두 번의 한국시리즈 MVP 수상의 영예를 이어갔다. 양의지는 두산과 NC에서 팀을 바뀌 수상한 첫 사례를 남겼다. 세 차례 이상 수상자는 없다.
SSG 한유섬은 SK 유니폼을 입던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개명하기 전의 한동민 이름으로 MVP를 차지했다. /사진=OSEN
역대 한국시리즈 MVP 가운데 수치상 최저의 성적표인 '1할대 타율'로도 수상의 영광을 안은 선수로는 1984년 유두열 이후 2018년 SK 와이번스(현 SSG) 한동민(한유섬으로 개명)이 그 계보를 잇는다. 그는 2018년 두산과 한국시리즈에서 타율 0.190(21타수 4안타)에 2홈런 4타점을 추가하는 데 그쳤지만 결정적인 홈런포로 피날레의 주인공이 됐다. 6차전에서 결승 홈런을 터뜨리며 4승 2패의 우승을 확정했다.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며 MVP의 영광을 품은 사례로는 유두열과 한동민 외에도 1982년 원년 OB 김유동을 비롯해 2002년 우승을 확정한 6차전 끝내기 홈런을 폭발한 삼성 마해영과 2009년 7차전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 KIA 나지완, 2022년 5차전 역전 끝내기 홈런을 터뜨린 SSG 김강민 등이 있다. 올해 오지환도 비슷한 사례다. 강한 인상을 남긴 홈런포가 투표권을 가진 기자단의 표심을 움직였다.
2023년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된 LG 오지환. /사진=뉴스1
◆ 역대 한국시리즈 MVP
▲ 1982년 OB 김유동(외야수) = 타율 0.400(25타수 10안타) 3홈런 11타점▲ 1983년 해태 김봉연(내야수) = 타율 0.375(24타수 9안타) 1홈런 8타점
▲ 1984년 롯데 유두열(외야수) = 타율 0.143(21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
-- 1985년 해당 없음 = 삼성 통합 우승으로 한국시리즈 미개최
▲ 1986년 해태 김정수(투수) = 4경기 3승 14⅔이닝 평균자책점 2.45
▲ 1987년 해태 김준환(외야수) = 타율 0.500(12타수 6안타) 2홈런 4볼넷
▲ 1988년 해태 문희수(투수) = 3경기 2승 1세이브 19⅔ 이닝 평균자책점 0.46
▲ 1989년 해태 박철우(내야수) = 타율 0.444(18타수 8안타) 1타점 4득점
▲ 1990년 LG 김용수(투수) = 2경기 2승 14이닝 평균자책점 1.29
▲ 1991년 해태 장채근(포수) = 타율 0.467(15타수 7안타) 8타점
▲ 1992년 롯데 박동희(투수) = 3경기 2승 1세이브 14⅔이닝 평균자책점 3.07
▲ 1993년 해태 이종범(내야수) = 타율 0.310(29타수 9안타) 4타점 7도루
▲ 1994년 LG 김용수(투수) = 3경기 1승 2세이브 8⅓이닝 평균자책점 0
▲ 1995년 OB 김민호(내야수) = 타율 0.387(31타수 12안타) 6도루
▲ 1996년 해태 이강철(투수) = 5경기 2승 1세이브 16이닝 평균자책점 0.56
▲ 1997년 해태 이종범(내야수) = 타율 0.294(17타수 5안타) 3홈런 4타점
▲ 1998년 현대 정민태(투수) = 3경기 2승 17⅔이닝 평균자책점 0.51
▲ 1999년 한화 구대성(투수) = 5경기 1승 1패 3세이브 9⅔이닝 평균자책점 0.93
▲ 2000년 현대 퀸란(내야수) = 타율 0.346(26타수 9안타) 3홈런 10타점
▲ 2001년 두산 우즈(내야수) = 타율 0.391(23타수 9안타) 4홈런 8타점
▲ 2002년 삼성 마해영(지명타자) = 타율 0.458(24타수 11안타) 3홈런 10타점
▲ 2003년 현대 정민태(투수) = 3경기 3승 21⅓이닝 평균자책점 1.69
▲ 2004년 현대 조용준(투수) = 7경기 3세이브 12⅓이닝 평균자책점 0
▲ 2005년 삼성 오승환((투수) = 3경기 1승 1세이브 7이닝 평균자책점 0, 11탈삼진
▲ 2006년 삼성 박진만(내야수) = 타율 0.273(25타수 7안타) 2타점 4득점
▲ 2007년 SK 김재현(지명타자) = 타율 0.348(23타수 8안타) 2홈런 4타점 5득점
▲ 2008년 SK 최정(내야수) = 타율 0.263(19타수 5안타) 1홈런 4타점
▲ 2009년 KIA 나지완(외야수) = 타율 0.250(20타수 5안타) 2홈런 4타점
▲ 2010년 SK 박정권(내야수) = 타율 0.357(14타수 5안타) 1홈런 6타점
▲ 2011년 삼성 오승환(투수) = 4경기 3세이브 5⅔이닝 평균자책점 0, 8탈삼진
▲ 2012년 삼성 이승엽(내야수) = 타율 0.348(23타수 8안타) 1홈런 7타점 4득점
▲ 2013년 삼성 박한이(외야수) = 타율 0.292(24타수 7안타) 1홈런 6타점 6득점
▲ 2014년 삼성 나바로(내야수) = 타율 0.333(24타수 8안타) 4홈런 10타점 8득점
▲ 2015년 두산 정수빈(외야수) = 타율 0.571(14타수 8안타) 1홈런 5타점 6득점
▲ 2016년 두산 양의지(포수) = 타율 0.438(16타수 7안타) 1홈런 4타점 4득점
▲ 2017년 KIA 양현종(투수) = 2경기 1승 1세이브 10이닝 평균자책점 0
▲ 2018년 SK 한동민(외야수) = 타율 0.190(21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
▲ 2019년 두산 오재일(내야수) = 타율 0.333(18타수 6안타) 1홈런 6타점 4득점
▲ 2020년 NC 양의지(포수) = 타율 0.318(22타수 7안타) 1홈런 3타점
▲ 2021년 KT 박경수(내야수) = 타율 0.250(8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 2득점
▲ 2022년 SSG 김강민(외야수) = 타율 0.375(8타수 3안타) 2홈런 5타점
▲ 2023년 LG 오지환(내야수) = 타율 0.316(19타수 6안타) 3홈런 8타점 6득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