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새 시즌을 맞는 이정후. /사진=OSEN
신인상은 한 시즌 동안 최고 활약을 펼친 신인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한국프로야구 KBO리그의 표창 규정을 보면, '해당 연도의 KBO 정규시즌에서 신인선수로 출장하여 기능·정신 양면에서 가장 우수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선수에게 시상'하는 상이다. 수상자를 '신인왕'이라고 흔히 부른다.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신인'일 때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지는 상이다. 그래서 '한 번뿐'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나 이는 맞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하나의 리그'라는 전제조건이 붙어야만 맞는다. KBO리그에서 신인상을 받은 선수도 다른 리그로 옮겨서 뛸 경우, 신인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
KBO리그를 평정한 뒤 2023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MLB)로 진출해 2024년 새 시즌을 미국에서 맞는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대표적인 예다.
이정후는 2017년 신인상을 받은 데 이어 2022년 최우수선수(MVP)상까지 차지하며 KBO리그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다. 그런데 미국 무대에 진출한 올해 MLB에서 소속팀 샌프란시스코가 속한 내셔널리그(NL)의 신인왕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MLB에서는 신인이기 때문이다.
LA 다저스 선발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오른쪽)가 3월 2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2024 미국 메이저리그(MLB) 월드투어 공식개막전 서울시리즈 2차전에서 1회초 실점 후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정후와 야마모토 외에도 MLB 개막전 월드투어 서울시리즈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주전 중견수로 출장했던 잭슨 메릴과 일본인 투수 이마나가 쇼타(시카고 컵스), 잭슨 추리오(밀워키 브루어스 외야수), 카일 해리슨(샌프란시스코 투수), 마이클 부시(시카고 컵스 내야수), 제임스 우드(워싱턴 내셔널스 외야수), 메이신 윈(샌프란시스코 내야수) 등도 득표한 신인왕 후보였다.
한화 류현진. /사진=김진경 기자
그는 2013년 8월까지 13승 5패 평균자책점 3.02를 기록해 NL 신인상 경쟁에서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시즌 최종 성적은 14승 8패 평균자책점 3.00이었다. MLB 첫 해에 빼어난 성적을 거뒀지만, 신인왕의 영예는 마이애미 말린스의 투수 호세 페르난데스(12승 6패 평균자책점 2.19)에게 돌아갔다. 류현진은 페르난데스, 팀 동료 야시엘 푸이그(타율 0.319, 19홈런 42타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투수 셸비 밀러(15승 9패 평균자책점 3.06)에 이어 신인상 득표 4위였다.
LA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가 2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샌디에이고와 2024 메이저리그 개막전 8회초 1사 1, 2루에서 적시타를 치고 있다. /사진=뉴스1
일본인 선수 가운데서는 1995년 NL 신인왕에 오른 노모 히데오(당시 LA 다저스)를 시작으로, 2000년 아메리칸리그(AL) 신인상을 받은 마무리투수 사사키 가즈히로, 2001년 AL 신인상과 MVP를 동시 석권한 스즈키 이치로(이상 시애틀 매리너스)에 이어 2018년 오타니 쇼헤이(당시 LA 에인절스)가 AL 신인왕에 올랐다. 모두 일본프로야구(NPB)에서 대활약을 펼친 뒤 MLB로 진출한 '중고 신인'들이었다.
노모 히데오는 1990년 긴테쓰 버펄로스에서 뛰며 퍼시픽리그 신인상을 받아,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모두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정후가 올해 수상한다면 노모 히데오의 길을 이어 받아 걷게 된다.
MLB 신인왕 후보 자격은 지난 시즌 8월까지 25인 로스터 45일 미만 등록, 타자는 130타수, 투수는 50이닝 이하의 경우에 부여된다. MLB 최초의 신인상 수상자는 1947년 재키 로빈슨(당시 리그 구분없이 공통 수상)이다. MLB 신인상의 명칭이 '재키 로빈슨 올해의 신인'(Jackie Robinson Rookie of the Year)인 이유다.
두산 포수 양의지. /사진=두산 베어스
KIA 최형우. /사진=KIA 타이거즈
KBO리그는 MLB와는 다르다. 세계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가 오더라도 절대 신인상을 받을 수 없다. KBO 신인상을 받을 수 있는 후보의 기준은 당해 입단한 선수 및 당해 연도를 제외한 최근 5년 이내 입단한 선수 중 누적 기록이 투수는 30이닝, 타자는 60타석을 넘지 않는 모든 선수다. 단, 해외 프로야구 기구에 소속되었던 선수는 제외한다.
오타니는 단서 조항에 해당하는 선수라서 신인왕 후보에 오를 수 없다. KBO리그에서 뛰는 외국인선수들도 이에 해당한다. MLB에서 데뷔해 한국 무대로 돌아온 추신수 등 '해외파'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KBO리그에도 중고 신인은 존재한다. 신인상 후보 기준에서 입단 5년 동안 1군 무대에서 거의 뛰지 않은 선수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군 복무를 마치고 와서 비로소 주전 선수로 중용되면서 큰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2022년 정철원(두산 투수, 2018년 입단), 2016년 신재영(넥센 투수,2012년 입단), 2012년 서건창(넥센 내야수, 2008년 입단), 2010년 양의지(두산 포수, 2006년 입단), 2008년 최형우(삼성 외야수, 2002년 입단) 등이 대표적인 '중고 신인' 수상자들이다.
KBO 최초의 신인왕은 1983년 박종훈(OB 베어스 외야수)이다. 프로야구 원년 1982년에는 당연하게도 수상자가 없다. 이순철 SBS 해설위원이 1985년 제3대 신인왕 출신이다.
2023~2024시즌 프로당구 PBA 골든큐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한지은(왼쪽)과 사이그너(오른쪽). /사진=PBA 투어
종목의 특성에 따라서는 '환갑의 신인왕'이 탄생하기도 한다. 한국프로당구 PBA에서 2023-2024시즌에 실제로 등장한 사례다.
PBA 투어는 지난 19일 열린 '2023-2024시즌 프로당구 PBA 골든큐 시상식'에서 '슈퍼맨' 조재호(44)와 '당구여제' 김가영(41)에게 MVP의 영예를 안기며 한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이번 시즌 개막전(경주 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강렬한 PBA 데뷔전을 치른 세미 사이그너(60·튀르키예)가 한지은(23)과 함께 남녀부 신인상을 받았다. 사이그너는 세계적인 스리쿠션 선수로 이름을 떨쳤지만, PBA에는 이번에 첫 시즌을 맞아 '환갑의 신인왕'이라는 특별한 경력을 쌓았다. 산술적으로는 미국 프로골프(PGA)나 여자프로골프(LPGA) 등 다른 종목에서도 등장할 수 있는 일이다.
5.
한국배구연맹(KOVO)은 지난 22일 제20기 4차 이사회를 열고, 다음 2024-2025시즌부터 남녀부 신인선수상 대상 범위를 '3년차'로 확대했다. 그동안에는 입단 첫 시즌을 맞은 선수에게만 신인상 후보 자격을 부여했다. V리그 입단 첫 시즌부터 코트에 자주 나서는 선수가 많지 않은 현실을 반영했다.
한국프로농구 KBL은 2020-2021시즌부터 신인상 자격을 해당 시즌 등록 신인 선수에서 2년차 선수까지로 확대했다. 신인 시즌 경기 수의 2분의 1 미만을 소화한 선수에 해당한다. 아시아쿼터 선수에게도 신인상 자격을 주며, 해외리그에서 한 시즌이라도 2분의 1 이상 출전했다면 제외된다. 2022-2023시즌 신인상을 처음으로 외국 국적(필리핀)의 론제이 아바리엔토스(울산 모비스)가 수상했다.
2022~2023시즌 KBL 시상식 수상자들. /사진=KBL
여자프로농구 WKBL도 KBL과 같이 2년차 선수까지 신인상 자격을 준다. 다만, 정규리그 경기 수의 3분의 2(20경기)가 기준이다. 20경기 이상 뛰어야 신인상 자격을 얻고, 입단 첫 시즌에 20경기 미만으로 뛴 선수는 2년차 때도 자격을 유지한다. 2023~2024시즌에는 용인 삼성생명의 혼혈선수 키아나 스미스가 2년차 선수로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다. 부산 BNK의 2년차 박성진과 신인 김정은, 부천 하나원큐의 2년차 고서연 등도 후보다.
창원 LG 유기상(오른쪽). /사진=KBL
용인 삼성생명 키아나 스미스가 3월 5일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호텔코리아에서 열린 우리은행 우리WON 2023-2024 여자프로농구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