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척척박사] 2-35. 예술 스쾃과 예술 공간의 경영학

채준 기자  |  2024.05.23 10:10
/사진제공=pixabay /사진제공=pixabay


필자는 유년 시절을 경기도 외곽의 작은 읍내에서 보냈다.

2차선 신작로를 따라 민가와 상점, 학교와 시장이 성기게 들어서 있었다. 지금이야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빼곡하게 들어서는 바람에 어디가 어딘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지만, 그 시절에는 주변에 야트막한 동산과 멱을 감는 개울가가 있고 그 사이사이 비어 있는 공간이 심심치 않게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즐길거리가 마땅히 없던 우리 또래들은 그곳에 '몰래' 숨어 들어가는 놀이를 즐기곤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방치된 공간으로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기에 '몰래'랄 것도 없긴 했지만. 잠입한 공간에서 딱히 뭘 했다고 얘기하긴 어렵다. 그저 몰래 스며드는 그 자체가 스릴과 희열을 가져다주었고, 폐쇄된 공간에는 호기심이 버무려진 아늑하고 따스한 공기가 퍼졌다.

빈 공간을 무단으로 점유하는 행위 혹은 그 장소를 '스쾃(squatting)'이라 부른다는 걸 아주 나중에 알게 되었다. 물론 어른들의 스쾃은 어린아이들의 놀이보다는 점거 시간이 매우 길고 놀이처럼 가벼운 행위가 아니지만.


17세기 인클로저 운동이 한창이던 유럽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스쾃은 19세기 초반 본격화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양산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은 비바람과 추위를 막아 줄 주거공간이 부족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산업자본가와 귀족이 소유한 빈 건물에 스며들었다.

80년대 일기 시작한 산업구조의 재편으로 인해 도심의 공장이나 대규모 창고 등속이 외곽으로 이전했다. 그 결과 유럽의 도심 곳곳에는 많은 빈 공간들이 생겨났다. 이때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예술가들이 방치된 공간을 점거하면서 '스쾃'은 하나의 예술운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진제공=pixabay /사진제공=pixabay


대표적으로 파리의 '아르 크로쉬(Art Cloche)'는 2차 세계대전 때 폭탄 창고였다가 방치된 공간이었다. 유럽과 미국 등 20여 개 나라 출신의 예술가 60여 명은 부랑아들과 함께 이곳을 점거하고 예술을 엘리트들의 전유물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기치를 내걸었다. 이들은 이어서 시트로앵 사의 폐쇄된 정비소에 '가짜 미술관 아르 크로쉬'을 만들고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플랫폼을 자처했다.

'아르 크로쉬'의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유랑민(노마드)'으로 부르며 이곳들 말고도 여러 공간을 점거했는데, 90년대 초반이 되자 이를 모델 삼아 파리를 중심으로 수많은 '예술스쾃'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예술스쾃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로베르네 집(Chez Robert)'이다. '유쾌한 무법자들의 아틀리에'라는 부제의 책으로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이곳은 원래 고급 백화점이 즐비한 거리에 위치한 프랑스 은행 '크레디 리오네' 소유의 건물이었다. 1999년 겨울, 오랫 동안 아무도 찾지 않던 이곳에 가스파르, 브뤼노, 칼렉스라는 세 명의 예술가가 스며들어 무단으로 작업실을 만들었다. 곧이어 세계 각국에서 온 30여 명의 예술가들이 동참해 자율적 관리에 나섰다.


이후 '로베르네 집'은 갤러리이면서 콘서트장이자 퍼포먼스 등 각종 이벤트가 열리는 예술창작소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현재는 파리시가 공공시설로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예술가들은 매일 오후 자신의 작업실을 개방하여 일반인들과 소통하는 장소가 되었다.

스쾃 중에서 '라 제네랄(La Generale)'은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하다. 2015년에는 대전시와 민간 레지던시 국제교류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가 하면 2010년엔 막걸리 컨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했다. 시인 이상을 기리는 '파리로 간 이상'을 기획한 곳도 '라 제네랄'이었다. 이처럼 국제교류의 장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걸 보면 연유야 어찌 되었든 스쾃의 불법성은 많은 부분 희석된 듯하다.

몇 해 전부터 국내에서도 스쾃이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가령 충남 공주시에서는 '올드타운 스쾃'이라고 해서 방치된 숙박시설과 공장(궁월장여관과 직조공장)을 배경으로 북 토크, 영화 상영, 모노드라마 등 다양한 예술행사를 펼친다. 도시의 버려진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듣는 행위는 분명 스릴 있고 색다른 경험이다.

/사진제공=pixabay /사진제공=pixabay


스쾃을 바라보면서 주변의 문화공간 운영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 중에는 나름의 뜻을 가지고 전시공간이나 공연장을 운영하다가 문을 닫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여럿 있다. 주로 자금난 때문인데, 형편에 맞는 개런티로 예술가를 섭외하기 어렵다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공간 운영자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술가는 예술 행위를 펼칠 공간이 없는 게 아니고 기대하는 수준의 출연료를 지급할 공간이 없는 거다.

스쾃이 예술가의 기질이 발휘되는 공간점유행위라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예술 활동을 할 공간이 없어서 버려진 공간을 점유한다는 건 다소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8·90년대도 아닌 오늘날엔 더욱 그렇다. 결국 수요와 공급이 잘 들어맞지 않는 예술공간 시장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또 하나, 점유 행위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지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예술스쾃은 요즘 유행하는 관객 몇 명을 놓고 공연하는 이머시브 씨어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편리한 기존 공간을 뒤로 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그것도 입장료까지 지불하고 스쾃을 찾는 관객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김선영 홍익대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뉴스 단독

HOT ISSUE

스타 인터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