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허경민(오른쪽)이 23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KT 팬 페스티벌에 참석해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KT 위즈 제공
허경민은 23일 오후 수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KT 팬 페스티벌 행사에 참석해 이적 후 처음으로 KT 팬들에게 공식석상에서 인사했다. 허경민은 이날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이 자리에서 솔직히 다 말씀드리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제가 정말 좋은 결과를 내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 말씀드릴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허경민은 KBO 리그를 대표하는 내야수다. 두산의 핫코너를 지키면서 왕조 건설에 큰 힘을 보탰다. 송정동초-충장중-광주제일고를 졸업한 허경민은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전체 7순위로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다. 이어 2012시즌 1군 무대에 데뷔해 92경기를 소화한 허경민은 단숨에 주전 3루수로 도약했다.
허경민은 누구보다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화려한 거포도 아니었고, 발이 기가 막히게 빠른 준족도 아니었지만, 최고의 수비력을 바탕으로 두산의 내야를 굳건하게 지켰다. 2010년대 아마추어 내야수들이 가장 닮고 싶은 롤모델로 늘 허경민을 꼽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맹활약을 바탕으로 허경민은 FA 잭폿을 터트렸다. 바로 2021시즌을 앞둔 2020년 12월. 당시 허경민은 두산과 4년간 계약금 25억원, 연봉 40억원 등 총액 65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선수 옵션이 추가됐다. 4년 계약이 끝난 뒤 3년 20억원의 선수 옵션 조항이 포함된 계약이었다. 4+3년 85억원의 계약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허경민은 첫 번째 FA 계약에 성공한 뒤에도 꾸준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과거 일부 선수들은 거액의 FA 계약을 챙긴 뒤 부상 등을 이유로 드러눕기도 했다. 그렇지만 허경민은 계속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 올 시즌에도 허경민은 3할 타율을 기록했다. 올 시즌 그는 115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9(477타수 129안타) 2루타 29개, 7홈런, 61타점 69득점, 5도루(1실패) 36볼넷 25탈삼진 18몸에 맞는 볼 장타율 0.427, 출루율 0.384, OPS(출루율+장타율) 0.811의 성적을 올렸다. 득점권 타율은 0.296. 대타 타율은 0.500이었다.
2024시즌이 끝난 뒤 허경민은 생애 두 번째 FA 자격을 획득했다.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FA 권리 행사. 자유롭게 타 구단과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상황에서 허경민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펼친 팀은 KT 위즈였다. 허경민은 이날 인터뷰에서 "너무 조심스럽긴 한데, (KT 위즈로부터) 정말 저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사실 (KT에서) 연락을 가장 먼저 주셨다. 또 계속해서 연락을 해주셨다. 처음에는 '왜 그러시지' 했는데, 정말 저를 원한다고 느꼈다. '우승을 하고 싶은데, 정말 제가 필요하다'는 말씀에 선택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두산 베어스 시절 허경민의 모습.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두산 시절 허경민.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두산 베어스 시절 허경민의 모습.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3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 그래도 KT 구단은 허경민을 높이 평가했고, 영입을 이뤄냈다. 나도현 KT 단장은 FA 계약 발표 당시 "베테랑 내야수로 풍부한 경험을 가진 허경민은 뛰어난 콘택트 능력과 정상급 수비력을 바탕으로 내야진에 안정감을 더해줄 수 있는 선수"라며 "평소 철저한 자기 관리와 성실함이 많은 후배에게 귀감이 되길 기대한다"고 영입 배경을 설명했다.
반면 허경민을 놓친 두산도 전혀 잘못이 없다. 두산은 최근 김재호가 은퇴를 선언했다. 허경민의 보상 선수로는 22세의 우완 투수 김영현을 지명했다. 당장 내년 시즌 즉시 전력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보다 세대교체를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사령탑인 이승엽 두산 감독은 이번 마무리 캠프 도중 "내년 구상을 하면서 이 선수 중 '충분히 1군 무대에서 뛸 선수들이 있구나' 하는 확신도 생겼다. 여기 있는 젊은 선수들을 처음에 만났을 때 '베테랑을 이겨라'고 했다. 그래야만 1군 무대에서 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어린 선수들이 1군 무대에서 활약을 펼친다면 두산은 더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내내 허경민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본인이 직접 '조심스럽다'는 말을 여러 번 할 정도였다. 그만큼 신중했다. 그래도 허경민은 두산 팬들을 잊지 않고 있었고, 사과 인사까지 전했다. 물론 자신이 했던 말을 부득이하게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을 터다. 이날 허경민은 "너무 조심스럽지만, 두산 베어스 팬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일단 드리고 싶다. 저한테 화나신 분들도 많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시간이 저한테는 인생에 있어서 정말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계약하고 나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많은 눈물도 흘렸다. 그동안 두산 팬 분들에 대해 감사함과 죄송함이 섞여 있는 눈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응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허경민이 23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KT 위즈 팬 페스티벌 현장을 찾아 취재진과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사진=김우종 기자
허경민이 8일 KT 입단 계약을 맺고 KT위즈파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KT 위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