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인 감독과 배우 김태리/사진=tvN
최근 정지인 감독은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극본 최효비, 연출 정지인) 종영을 맞아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17일 종영한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후를 배경으로,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타고난 소리 천재' 윤정년(김태리 분)을 둘러싼 경쟁과 연대, 그리고 찬란한 성장기를 담은 작품.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이 작품은 최종회에서 16.5%(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먼저 정지인 감독은 '정년이'를 떠나보내며 "배우와 스태프들과 오랜 시간 노력한 결과물이 이런 큰 사랑을 받게 돼서 무척 기쁘다. '정년이'를 사랑하고 응원해 주신 시청자에게 정말 감사하다"며 "시청자 반응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국극에 대한 반응들이다. '집에서 이런 걸 돈 주고 봐도 되냐'는 댓글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고맙다"고 전했다.
정지인 감독은 '정년이' 연출에 있어 주안점을 둔 부분도 밝혔다. 정지인 감독은 "현대의 많은 시청자에게는 생소한 장르인 여성 국극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지 가장 고민이 많았다. 국극은 당시 관객들이 현실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던 최고의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는 점을 생각하며, 우리 시청자들도 그에 못지않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무대의 커튼이 열리는 순간, 마치 놀이공원에 처음 입장하는 듯한 기대감과 흥분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소재가 다소 낯선 만큼, 이야기와 캐릭터들은 최대한 보편성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또한 원작의 생생한 캐릭터들이 어떤 배우들을 만나야 더 큰 생동감을 가지고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하며 캐스팅에 많은 공을 들였다. 다행히 김태리를 비롯해 재능과 열정이 넘치는 배우들이 합류해 준 덕에 쉽지 않은 작품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정지인 PD(왼쪽 네번재), 배우 라미란, 김윤혜, 김태리, 신예은, 정은채가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에서 진행된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후를 배경으로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타고난 소리 천재 정년이를 둘러싼 경쟁과 연대, 그리고 찬란한 성장기를 그린 작품이다. 오는 12일 첫 방송. 2024.10.10 /사진=김창현
작품 종영 후 원작 팬들은 각색된 드라마 내용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정지인 감독은 "가장 상징적이자 중요한 존재감을 가진 부용이 사라진 이상, 비난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작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다. 하지만 대중적인 방향을 위해서는 원작을 보지 않은 분들도 이해할 수 있게 각색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각색이 쉽지는 않았다. 최대한 살릴 것을 살리되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며 "원작의 중요한 메시지를 쉽게 담아내지 못한 것은 나 역시 아쉬움이 남지만, 많은 시청자를 훌륭한 원작으로 이끄는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정지인 감독은 가장 공들여 촬영한 장면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총력을 기울인 건 국극 장면들이었다"며 "보통 2~4회의 촬영을 진행하면 나머지 날들은 배우들은 연습을 하고 나머지 스태프들은 틈틈이 국극 장면을 구현하기 위한 회의나 준비를 해야 했다. 국극 촬영은 카메라 리허설과 드레스 리허설을 본 촬영에 앞서 하루씩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배우들의 무대 동선 확인, 카메라와 장비 동선, 조명 세팅, 의상과 분장 헤어 세팅 등을 보면서 본 촬영에서 수정 보완할 것들을 미리 확인했다. 본 촬영은 무대 위주의 촬영과 관객을 포함한 촬영, 그리고 CG용 관객 소스 촬영을 각각 나눠 진행했다. 보통 한 작품당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의 기간이 평균적으로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극을 제외한 촬영 중 가장 공들인 건 아무래도 10회 엔딩, 용례가 부르는 추월만정을 정년이 처음으로 듣는 장면이다. 대본 상황에 적합한 장소를 촬영 시기가 임박해 겨우 구했고, 일출과 밀물과 썰물 시간대를 몇 달 전부터 계산해서 두 번에 걸쳐 촬영했다. 한 신을 이렇게 오래 준비해 찍은 건 연출하면서 처음 있는 경험이다. 며칠에 걸쳐 찍으며 훌륭한 감정선을 연기한 두 배우 덕에 화룡점정을 찍으며 완성할 수 있던 장면이었다"고 전했다.
정지인 감독/사진=tvN
정지인 감독은 "김태리가 쏟은 열정과 노력은 우리 작품을 떠받치는 큰 원동력이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순간이 올 때 (윤) 정년이를 생각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신예은의 촬영 중 반전의 순간들도 많은 힘이 됐다. 종종 허영서와 신예은을 오가며 장난칠 때마다 다시 (허) 영서로 돌아오라고 말로는 그랬지만 속으로는 주머니 속에 넣어 집에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라미란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현신이었다. 단원들과 있을 때는 여고생같이 해맑게 있다가 촬영만 들어가면 어느새 (강) 소복으로 초집중하는 모습에 수차례 반했다. 정은채와 김윤혜는 매란의 왕자와 공주로서 오래오래 기억할 거다. 나 역시 온달과 평강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때가 참 슬펐다. 둘의 마지막 무대가 드디어 끝났고, 이제는 보지 못할 조합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날 정도로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또한 정지인 감독은 "다시는 만나기 힘든 배우들의 조합이라 생각한다. 이분들과 그 외의 모든 분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큰 영광이었다"고 전했다.
정지인 감독, 배우 정은채/사진=tvN
그러면서 "배우와도 이런 종류의 얘기를 많이 나눴다. 어떤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건 배우들 역시 갖고 있는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대중 드라마를 연출하는 입장에서 이를 관찰하고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건 내 몫이다. 지나친 불호의 입장이 많았다면 이는 결국 좀 더 섬세하게 연출하지 못한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정지인 감독은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남을 '정년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소리 한 가락, 한 소절을 우연히라도 듣게 되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인데, '아 정년이에서 나왔구나' 정도의 반응만 나와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