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문. /사진=키움 히어로즈제공
송성문. /사진=키움 히어로즈 제공
메이저리그(ML) 스카우트의 반응도 비슷했다. 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A는 최근 스타뉴스에 "올해 김혜성을 보러 간 스카우트들이 꽤 있었다. 나도 고척돔으로 몇 번 갔는데 송성문도 눈에 띄었다. 공격, 수비, 주루 모두 특출나진 않아도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고 눈여겨봤다.
김혜성을 보러 갔다 곁눈질하게 될 정도로 올해 송성문의 성적은 눈부셨다. 정규시즌 142경기 타율 0.340(527타수 179안타) 19홈런 104타점 88득점 21도루, 출루율 0.409 장타율 0.418 OPS 0.927로 맹활약했다. 봉천초(용산구리틀)-홍은중-장충고 졸업 후 2015년 KBO 신인드래프트 2차 5라운드 49순위에 넥센(현 키움)에 입단한 지 10년 만이었다.
본인도 믿기 힘든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다. 최근 키움 자선 카페에서 만난 송성문은 "뿌듯했던 시즌이다. 솔직히 이런 적이 처음이라 시즌 내내 '언제 성적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러다 9월 넘어가면서부터 조금 안심이 됐다"고 미소 지었다.
과거에는 포스트시즌이나 9~10월 가을 냄새가 날쯤이면 펄펄 날아 '가을 성문'이라 불렸다. 하지만 올해는 기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제일 안 좋았던 구단 상대 전적이 SSG 랜더스전 타율 0.264일 정도로 팀을 가리지 않았고, 5월 이후 매월 3할 타율로 시즌 내내 고른 타격감을 유지했다.
여기엔 철저한 자기 관리가 큰 힘이 됐다. 송성문은 올 시즌부터 절친 김혜성(25)처럼 철저한 식단 관리와 웨이트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대만 스프링캠프에서는 터미네이터 같은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했는데 그 모습이 시즌 끝까지 이어졌다. 송성문은 "시즌 끝까지 내 루틴을 흔들리지 않고 가져간 것이 기복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다. 평소 '가을 성문'이라 불리며 기복이 심했던 나였기에 꾸준했던 올해 내 모습은 내게도 가장 뜻깊었다"고 말했다.
송성문(가운데). /사진=키움 히어로즈 제공
송성문(가운데). /사진=키움 히어로즈 제공
초구 상대 타율 0.340, 2B 2S에서 타율 0.342 등 예년보다 유독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성적이 좋았는데 오윤 키움 1군 타격코치의 끝없는 믿음이 있었다.
송성문은 "그동안 유리한 카운트에 소극적이었다. 유리한 카운트에 공을 건드려서 죽으면 분위기가 다운될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오윤 코치님은 내게 매년 '유리할 때 안 치면 언제 칠 거냐?'고 강하게 말씀하셨다"며 "코치님이 유리할 때는 그냥 편하게 치라고 하셨다. 홈런 스윙해도 되고 변화구에 헛스윙해도 되니 자신 있게 돌리라고 하셨다. 그 말을 믿고 돌리다가 좋은 결과가 나오니까 더 자신감이 생기고 성적으로도 나타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진작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반응도 심심치 않게 튀어나왔다. 송성문은 장충고 주장 출신에 이영민 타격상까지 받아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지난 10년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었다. 이에 송성문은 "그동안은 간절함이 조금 덜했던 것 같다. 더 일찍 깨달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내 잘못이고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으려 한다"고 답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를 오래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절박함이 마음을 다잡게 했다. 지난해 12월 결혼해 가장이 된 책임감도 그를 더 채찍질했다. 송성문은 "야구를 오래 하고 싶었다. 군대 다녀와서도 어린 편이었고 1군에도 계속 있고 하다 보니 열심히는 하지만, 올해만큼 야구에 미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시작하기 전에 문득 야구를 오래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벼랑 끝으로 몰린 느낌이었다"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송성문(가운데). /사진=키움 히어로즈 제공
송성문(왼쪽). /사진=김진경 대기자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나온 경험은 키움의 어린 선수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다. 송성문은 시즌 중 김혜성으로부터 주장 완장을 받았다. 2년 연속 최하위에도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선수 생활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에서도 캡틴이 됐다.
송성문은 "후배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더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내게도 그런 좋은 이야기를 해준 선배는 많았다. 그중에는 미국까지 간 선배들도 많았는데 난 그 정도 능력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나 스스로 한계를 정해두고 노력하다 보니 발전하지 못했다"고 지난 10년을 돌아봤다.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태극 마크까지 달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으려 한다. 송성문은 "올해 다들 내게 잘했다고 하지만, 국가대표팀에 가서 또 한 번 생각이 달라졌다. 다른 팀에도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많았고 내년에도 꾸준하게 좋은 모습을 보여서 저들처럼 계산이 서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대표팀을 다녀와서 하루 쉬고 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올해 인터뷰도 많이 하고 시상식도 다녀오니까 매년 이렇게 행복한 연말을 맞고 싶다는, 지난해와 또 다른 간절함이 생겼다. 그래서 쉬는 게 별로 즐겁지 않았다. 오히려 내년 시즌을 바라보며 훈련하는 게 책임감도 생기고 설렘이 있어서 요즘은 운동하는 게 더 즐겁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올해 성적이 운이 아니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성적이 목표다. 2년 연속 최하위를 해서 팬분들이 많이 힘드셨을 텐데 내년에는 막판까지 순위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키움 송성문이 지난 15일 서울 마곡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열린 '2024 키움 히어로즈 연말자선행사'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김동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