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은 어디 있나?"..'하얼빈' 박훈, 연기 스펙트럼 어디까지 [★FULL인터뷰]

김나연 기자  |  2025.01.04 06:00
박훈 / 사진=CJ ENM 박훈 / 사진=CJ ENM
"안중근은 어디 있나?"

1909년, 독립군들을 쫓는 단 한 명의 추격자. 배우 박훈이 강인함과 비열함 사이,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며 또 한 번 도전에 나섰다.


최근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영화 '하얼빈'(감독 우민호)의 배우 박훈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 박훈이 일본을 향한 맹목적인 애국심으로 점철된 일본군 육군 소좌 모리 다쓰오 역을 맡았다.

박훈은 "'하얼빈' 대본을 보고, 작은 조각으로라도 참여하고 싶었다"면서도 "일본인 역할이라는 건 큰 부담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네이티브 입장에서 볼 때는 제가 (일본어를) 잘해봐야 얼마나 잘하겠나. 근데 적어도 한국 작품, 그리고 쉽지 않은 역할에 함께해 준 릴리 프랭키 배우가 보기에 불편함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같은 배우로서 존경을 다 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근데 연기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말을 배우는 게 아니라 그 말로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까다로웠다. 작업 방식을 복잡하게 가져갔는데 배우이자 일본어 선생님께 제 연기를 한국말로 설명해서 입력한 다음에 그 말을 다시 일본어로 출력했다. 그래서 저보다 그 선생님이 한국어 연기가 더 많이 늘었다. 제가 오디션 보라고 하고 있다"며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후회하지 않게 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또 많은 분들이 그 노력을 알아주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촬영하기 전까지 계속 연습했다. 집 앞에 계속 불러서 귀찮게 할 정도였다. 안 만나는 날은 음성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이게 맞냐고 물어보고, 최종 후시까지 신경 썼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여기서 마지막 수정을 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모든 노력을 다 동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연기하는데 갑작스럽게 애드리브를 할 수도 없고, 선택한 건 최소한의 움직임이었다. 연기하는 방식을 굉장히 다르게 가져갔다. 최소한의 움직임을 선택했고, 숨과 기운, 몸의 속도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하얼빈'에서 압도적인 비주얼로 등장하는 박훈은 "삭발을 데뷔할 때 해봤고,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내 눈으로 믿을 수 있는 다른 얼굴이 필요했다"면서 "짧게 삭발하고, 두피 문신하는 곳에 가서 이마 라인, 구레나룻 라인을 다 바꿨다. 지금도 남아있다. 상상만으로 잘하는 배우들은 잘하지만, 저는 아니기 때문에 다른 얼굴을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라트비아 가서 감독님께 보여드렸는데 너무 만족해하시더라. 영화를 보고, 정말 잘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만으로 (캐릭터가) 함축돼서 더 몰입되고, 미장센으로 훌륭했던 것 같다. 과몰입된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좋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훈 / 사진=CJ ENM 박훈 / 사진=CJ ENM
파격적인 도전 속 부담감도 있었지만, 박훈은 그 짐을 동료들과 나눴다. 앞서 박훈은 현빈이 '하얼빈' 촬영 마지막 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봤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위인을 다루는 이야기는 당연히 어렵고, 저도 실존 인물을 연기한 경험이 있지만 심하게 부담이 된다"며 "끝나면서 한 번에 무너져 내렸을 거다. 저도 (현빈의 눈물을) 보고 많은 걸 감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버텨준 것 같다"면서 "그동안 (현) 빈 씨가 한 연기를 많이 봐왔지만 안중근 역은 또 새로운 색깔이었다. 다음 챕터가 열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영화 '공조2: 인터내셔날'(이하 '공조2')까지 극 중 현빈과 대척점에 있는 역할로 존재감을 발휘한 박훈은 '하얼빈'에서도 안중근을 쫓는 모리 다쓰오 역을 맡았다. 그는 "그런 관계는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공조2' 할 때도 감독님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못 보셨고, 우민호 감독님도 앞선 두 작품을 못 보셨다고 하더라. 그래서 캐스팅에 선입견이 없으셨던 것 같은데 또 하면 보시는 분들에게도 방해가 될 것 같다. 익숙해지면 타성에 젖는다고 생각한다"면서 "촬영 전에 우리 (함께하는)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멋지게 해보자는 전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이렇듯 안중근을 쫓는 것에 삶은 바친 듯한 모리 다쓰오. 박훈은 모리 다쓰오가 보통 오락 영화의 빌런과 다른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 오락 영화에서는 빌런이 압도되는 악한 행동을 하면, 주인공이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빌런을 이겨낸다. 근데 모리 다쓰오는 초반에 잡혔다가 풀려나지 않나"라며 "안중근을 원초적으로 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안중근은 어디 있나'라는 잦은 대사를 통해 안중근의 정신과 혼은 어디서 나오는지, 어디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남기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원래 '안중근은 어디 있나'가 아니었던 대사도 그걸로 바꿔 달라고 했다. 모리 다쓰오라는 캐릭터에 일본의 행동을 함축적으로 담고 싶었다. 이토 히로부미 역의 릴리 프랭키가 영화를 보고 저를 만나자마자 '안중근은 어디 있나'로 말을 건네시더라. 그 대사가 잘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그 질문에 응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훈 / 사진=CJ ENM 박훈 / 사진=CJ ENM
특히 박훈은 우민호 감독과 '남산의 부장들'에서 첫 인연을 맺었지만 통편집됐고, '하얼빈'으로 재회하게 된 인연이 있다. 그는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미국 정보원 역할을 맡았었는데 현장에서 이병헌 선배님과 함께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또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면서 '영화는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라고 느꼈고, (내가) 편집된 결과물을 보고 내가 안 나온다고 서운해하는 게 아니라 영화가 근사하고 멋지다고 인정했다"면서 "저는 '남산의 부장들' 촬영이 오히려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후에 감독님과 사적으로 연락한 적도 없었는데 '서울의 봄'을 찍고 있을 당시 '우민호입니다'라고 전화가 왔다. '하얼빈'이라는 영화를 찍게 됐는데 대본을 보다가 제가 생각나서 연락했다고 하시더라. (통편집으로) 저한테 갑자기 미안해질 리는 없고, 대본을 보고, 제가 떠올랐다고 해서 감사할 따름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박훈은 '하얼빈'에 대해 시 같은 영화라고 말하며 "소설 같은 영화도, 웹툰 같은 영화도 있는데 '하얼빈'은 시 같은 영화다. 익숙하지 않지만, 보면 더 깊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럼 제 연기도 함축해서 보여줘야 하는데 모리 다쓰오의 삶을 어떻게 함축할 수 있는지 고민하던 찰나에 제국주의에 심취한 인물을 외형적으로 표현하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안중근이 조선의 혼이라면 이창섭(이동욱 분)은 조선의 투쟁이고, 공부인(전여빈 분)은 조선의 한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박훈은 올해 계획을 밝혔다. 그는 "찍어놓은 작품도 있고, 지금 찍고 있는 작품들도 있다. 저한테 주어진 걸 해야 하고, 또 그 과정에서 분명히 제가 해야 하는 것들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거다. 나라는 배우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 배우인지, '쟨 저럴 거야' 라는 예상을 어디까지 뒤집을 수 있는지가 제 앞에 놓인 숙제이기 때문에 해내야 할 거다. 그게 제 책임이다"라고 단단한 모습을 보였다.

한편 '하얼빈'은 지난해 12월 24일 개봉해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뉴스 단독

HOT ISSUE

스타 인터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