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가 지난 4일(한국시간) 김혜성 영입 발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사진=LA 다저스 공식 SNS 갈무리
김혜성은 지난 4일(한국시간) 지난해 월드시리즈(WS) 우승팀 LA 다저스와 3년 보장 1250만 달러(약 184억 원) 계약에 합의했다. 2028년과 2029년 옵션이 있어 최대 2200만 달러(약 324억 원)까지 늘어나는 메이저리그 계약이었다.
극적인 계약이었다. 미국 에이전시 CAA 스포츠 관계자에 따르면 김혜성은 다저스, LA 에인절스, 시애틀 매리너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신시내티 레즈, 시카고 컵스 총 6팀으로부터 구체적인 제의를 받았다. 계약 규모는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김혜성에게 가장 적극적이었고 총액 기준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다저스가 최종 승자가 됐다.
하지만 계약 이후 많은 우려가 뒤따랐다. 탄탄한 뎁스를 가진 다저스에서 빅리그에 데뷔하고 주전으로 올라서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기 때문. 미국 야구 통계 사이트 팬그래프의 뎁스 차트에 따르면 당장만 해도 3루수 맥스 먼시-유격수 무키 베츠-2루수 개빈 럭스-1루수 프레디 프리먼 등 언제든 두 자릿수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들이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다.
그들의 백업도 만만치 않다. 이번 겨울 다저스와 연장 계약에 성공한 토미 에드먼(30)은 골드글러브 2루수 출신에 주전 중견수로 낙점될 정도로 수비가 뛰어나다. 타격 재능도 나쁘진 않아서 지난 6년간 두 자릿수 홈런 시즌만 4차례다. 미겔 로하스(36)는 통산 OPS(출루율+장타율) 0.672로 저조한 타격에도 11년간 빅리그에서 버틴 베테랑이다. 심심치 않게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 3인에 들었고 2루수와 유격수를 오고 가며 지난해 다저스의 우승에도 기여했다.
다저스에서 잔뼈 굵은 크리스 테일러(35)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테일러는 2016년 다저스 합류 후 투수-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돌아다니는 슈퍼 유틸리티로서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이들 중 가장 수비가 떨어지는 럭스 역시 다저스 최고 유망주 출신으로 지난해 하반기 타율 0.304, 7홈런 OPS(출루율+장타율) 0.899로 2025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키움 시절 김혜성이 머리 위로 넘어가는 공을 잡아내고 있다.
이렇게 탄탄한 뎁스에도 김혜성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그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 매체 디 애슬레틱은 "다저스는 김혜성이 슈퍼 유틸리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수비에 일가견이 있고 중앙 내야 두 개 포지션에서 경험이 있다. 다저스는 이번 겨울 다시 한번 베츠가 개막전 유격수가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김혜성의 존재가 그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 잠재력의 근거는 뛰어난 운동능력과 워크에식(직업윤리 및 태도)이었다. 과거 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A는 스타뉴스에 김혜성의 워크에식을 눈여겨보며 "이정후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김혜성에게 더 관심이 간다"고 높게 평가한 바 있다.
또 다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B 역시 김혜성은 메이크업(인성 및 성실성) 자체가 좋은 선수여서 믿을 만하다. 운동 신경도 워낙 좋아 어떻게 발전할지 모른다"며 "과거 김하성도 한국에서는 메이저리그 평균의 수비를 하지 못할 거라 봤다. 하지만 지금은 그 평가를 뒤집고 플러스 급 수비를 한다. 그래서 운동 신경과 워크 에식이 정말 중요하고 김혜성의 그 부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극찬했다.
김혜성 이적 후에는 "다저스에서 김혜성의 운동 신경을 높이 산 것 같다. 발전 가능성을 따질 때 운동신경은 엄청나게 중요하고, 이 부분만큼은 김혜성이 김하성 못지않다. 수비나 송구 부분에서도 개선될 수 있다. 오히려 지금보다 미국에서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긍정적인 부분을 짚었다.
선배 김하성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2021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향했던 김하성 역시 처음에는 백업 유틸리티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미국에서 수비 방식을 뜯어고치고 타격에서도 성장세를 보이면서 골드글러브 유격수로 거듭났다. 만약 김혜성도 김하성처럼 성장한다면 다저스 내야 판도도 뒤흔들 수 있다.
다저스 내야는 아직 확정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 6일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스프링캠프 전 메이저리그 각 팀이 답해야 할 문제"라면서 다저스에는 "과연 베츠가 유격수로 뛸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MLB.com은 "베츠는 유격수로 뛸 때 확실히 어색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러워 보이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만 35세를 넘긴 로하스와 테일러도 하락세가 뚜렷해 언제 방출돼도 이상하진 않다. 가장 젊은 럭스는 김혜성 영입으로 트레이드설까지 나오는 상황. 김혜성의 성장이 예측 불가한 다저스 내야에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빈 럭스. /AFPBBNews=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