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성. /사진=뉴시스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MLB) 무대를 두드린 김혜성은 지난 4일 LA 다저스와 3+2년 최대 2200만 달러(324억원)에 계약을 맺었다.
역대 9차례 포스팅 가운데 히어로즈 선수만 5명이었다. 이 중 강정호와 김하성은 성공 시대를 열었고 이정후는 야수 포스팅으론 아시아 최고 계약 금액을 이끌어냈다. 김혜성도 벌써 커다란 기대를 받고 있다. 정말 팀 이름에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첫째로는 선수를 보는 안목을 빼놓을 수 없다. 히어로즈의 전신 격이라고 볼 수 있는 2006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2차 1라운드로 입단한 강정호를 시작으로 2014년 2차 3라운드로 지명한 김하성, 2017년 1차 지명 이정후, 2차 1라운드 김혜성까지 모두 상위 순번에 지명을 한 선수들이었다. 대체로 상위 순번에 야수보다는 투수를 선택하기 마련이지만 이 팀은 달랐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박으로 이어졌다.
박병호의 케이스도 빼놓을 수 없다. '2군 본즈'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퓨처스리그에선 엄청난 장타력을 과시하는 선수였지만 LG에서 보낸 4시즌 동안 좀처럼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했고 결국 2011시즌 트레이드로 넥센(키움 전신)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김시진 감독은 위축돼 있던 박병호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였고 박병호는 그해 13홈런으로 도약하더니 이듬해 31개의 아치를 그리며 곧바로 홈런왕에 올랐고 이후 4년 연속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한 뒤 MLB 진출에 성공했다.
2021년 MLB에 진출해 이번 겨울 FA 자격을 얻은 김하성. /AFPBBNews=뉴스1
그러나 강정호는 내야수로서 장타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고 서서히 몸집을 키워내 2014년 타율 0.356 40홈런 117타점 103득점, 출루율 0.459, 장타율 0.739, OPS(출루율+장타율) 1.198이라는 괴물 같은 성적을 써냈다. 포스팅을 통해 피츠버그 파이리츠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였다.
김하성도 비슷한 케이스다. 강정호의 사례에서 힌트를 얻었고 장타력에 초점을 맞추고 차근히 준비했고 2020년 타율 0.306 30홈런 109타점 111득점, 출루율 0.397, 장타율 0.523, OPS 0.920이라는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만들어냈다. 둘 모두 빅리그 진출 직전 홈런 수치를 크게 끌어올리며 빅리그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김혜성은 두 선배와는 다소 결이 달랐다. 빅리그도 인정하는 빠른 발을 갖췄고 유격수와 2루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으며 정교한 컨택트 능력이 강점이지만 장타력이 부족했다. 이 부분에 초점을 뒀고 지난 시즌 11홈런으로 커리어 최고 장타력을 뽐냈지만 현지의 평가는 '여전히 아쉽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김혜성에 대해선 긍정적 전망이 나온다. 미국 야구 통계 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은 최근 자체 통계 프로그램 스티머를 통해 2025년 MLB 정규시즌 예상 성적을 내놨는데 김혜성이 97경기에 나서 타율 0.279(338타수 94안타) 5홈런 36타점 42득점 14도루, 출루율 0.324 장타율 0.374 OPS(출루율+장타율) 0.698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혜성이 지난 4일 다저스와 계약을 맺은 뒤 다저스 SNS에 올라온 김혜성의 합성 사진. /사진=LA 다저스 공식 SNS 갈무리
이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봤던 고형욱(54) 키움 단장은 그 비결로 선순환을 꼽았다. 고 단장은 스타뉴스와 통화에서 "선배들이 해왔던 루틴을 후배들이 잘 이어 받아서 하다보니 연차가 쌓이면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고 그런 선수단의 분위기가 잘 형성이 돼 있는 것 같다"며 "강정호 선수가 MLB에 진출을 시작으로 선수들 사이에서 점점 동기부여가 되기 시작했고 그런 목표로 훈련을 하다 보니 목표치에 점점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히어로즈 출신'으로서 책임감 같은 것도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으로 이어진다. "하성이가 정후를 챙기고, 정후가 밑에 후배들을 챙기듯이 그런 분위기도 잘 형성도 있다"며 "정후나 하성이나 국내에 와서 신인 교육을 해마다 진행하는데 직접 와서 MLB는 어떤지, 선수 생활은 어떤지에 대해 교육을 시켜줬다. 물론 좋은 지도자도 필요하지만 좋은 선배들이 본보기가 되는 그런 이상적인 환경이 잘 구축이 돼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다음 주자도 키움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팬그래프닷컴은 국제 유망주 순위를 매기고 있는데 안우진(26)이 2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도영(22)이 19위로 더 높은 순위에 있지만 이제 3년차 시즌을 보낸 터라 미국 진출을 위해선 아직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
올 9월 병역 의무를 마치고 복귀할 안우진은 2029년, 대표팀 발탁 등으로 시기를 단축한다면 1년 앞서 빅리그 진출을 도모할 수 있다. 지금까지 히어로즈 출신으로 투수 빅리거는 배출한 적이 없기에 이 선순환이 안우진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도 관심을 키운다.
샌프란시스코와 계약을 맺은 이정후(왼쪽)가 지난해 2월 미국 애리조나 키움 캠프를 방문해 송성문으로부터 선수단이 준비한 최신형 게임기를 선물받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