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녀들을 순하다 했는가.'
삼순, 금순, 맹순…. '순'자 돌림 여주인공 드라마의 흥행신화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 캐릭터 또한 이름과 달리 전혀 순하지 않은 점도 눈길을 끈다.
시청률 30%를 넘나들며 주부 팬들을 사로잡은 MBC '굳세어라 금순아'의 '금순'이가 처음 포문을 연 '순'자 돌림 여주인공의 흥행돌풍은 꿈의 시청률 50%를 돌파한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 삼순이로 이어졌다. 새댁과 아가씨만 '순'인가. 아줌마도 나섰다. 24일 첫방송한 KBS2 '장밋빛 인생'의 주부 '맹순이'가 그 바통을 이어받을 기세다.
이름하여 순할 순(順). 삼순이는 촌스러운 제 이름이 싫어 '삼순이의 전설'까지 만들어가며 이름바꾸기에 골몰했다. 하지만 '순'자 돌림 여자 이름은 '자'자 돌림과 함께 한때 시대를 풍미한 히트작이었다. 그리고 '여자란 모름지기 순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지론이 그 인기의 바탕이 됐다.
허나 제 이름의 속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 안방극장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순'자 돌림 여주인공들은 억척스럽고 당돌하고 뻔뻔하게 세상을 살고 있다. 주어진 이름의 족쇄마저 간단하게 뒤집은 열혈 여성들의 성공기에 시청자들은 배꼽을 쥐기도 하고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촌스런 구식 이름이 통쾌한 전복의 재미를 더해주는 셈이다.
올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방한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를 돌이켜보자. 방앗간 집 셋째 딸 삼순은 '모름지기 여자란 날씬하고 나긋나긋해야 한다'는 통념에 온몸으로(?) 저항한 인물이다.
촌스럽고도 정감있는 이름을 단 그녀가 대변한 것은 바로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의 보통 여성이다. 솔직담백한 그녀는 '삼순이는 딱 내 얘기'라는 반응을 이끌며 20~30대 여성을 열광케 했다. 더군다나 그녀는 풍만함과 자신만만함을 내세워 세련되고 날씬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히 최고의 킹카를 차지하기까지 했다.
종영을 앞둔 '굳세어라 금순아'의 금순이가 이에 질까. 지금은 한층 아리따워진 모습으로 사랑받고 있는 금순이의 과거를 추적해보면 '모름지기 여자란 조신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가르침을 간단히 무시한 경력을 확인할 수 있다. 예의바르고 겸손한 그녀는 알고보면 '부른 배'를 앞세워 시댁 입성에 성공한 강심장.
금순이의 혼전 임신은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그녀는 기꺼이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자세로 비난을 비껴갔다. 물론 드라마 초반, '아줌마 파마'와 복고풍 의상으로 이름만큼이나 촌스런 패션으로 무장하고 살신성인 코믹 연기를 펼친 공로도 무시할 순 없다.
지난 24일 첫방송된 '장밋빛 인생'의 맹순이는 이름부터 억척스런 짠순이 알뜰주부다. 부업까지 마다않으며 한푼 두푼 저축한 돈으로 집도 사고 애들 교육도 시키는 그녀는 오늘을 사는 40대 주부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그려보이고 있다.
여성·남성에 이은 '제 3의 성'이란 비아냥을 감수하면서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는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성원 때문이었을까. '장밋빛 인생'은 방송 첫날에 이어 25회 2회방송분에서도 18%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몰이를 예고했다.
한편 '결코 순하지 않은' 순자돌림 여주인공들은 스크린으로까지 활동 무대를 확대할 예정이다. 오는 9월8일 개봉을 앞둔 무협멜로 '형사 Duelist'의 '남순'(하지원)과 10월말 개봉하는 '사랑해 말순씨'의 '말순'(문소리)이가 그들이다.
'형사 Duelist'의 남순은 남존여비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조선시대, 대담하고 괄괄한 성격에 뛰어난 검술·무술을 겸비한 여걸이다. '사랑해 말순씨'의 말순은 1980년대를 사는, 배운 것 없고 억척스러운 화장품 방문 판매원으로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중이다.
당당한 '순'자 돌림 여주인공들은 연일 상종가를 치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더이상 순하기를 포기한, 순하기를 거부한 그녀들은 얼마나 기특하고 사랑스러운지. 이들의 이름 속 '순할 순'을 '억척스러울 순', '당돌한 순'으로 바꿔야 하는 건 아닐까. 터무니없는 공상도 흐뭇하다.
<사진 설명 = 드라마와 영화 속 '순'자 돌림 억척녀로 활약하고 있는 금순 삼순 맹순이 말순 남순(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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