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이문세와 명품 발라드 만든 주인공

작곡가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 '옛사랑' 발표

김원겸 기자  |  2006.09.29 14:59

따사로운 봄날 ‘사랑이 지나가면’은 가슴 찡한 추억이 됐고, 찬바람 불던 가을날 ‘시를 위한 시’에는 목이 멨다. ‘광화문연가’는 낙엽 진 덕수궁 길을 근사하게 했고, ‘소녀’는 어린 날 알싸했던 첫사랑을 떠올리게 했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 ‘가을이 오면’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붉은 노을’ ‘옛사랑’. 시(詩) 같은 노랫말과 아름답게 너울거리는 멜로디는 가수 이문세의 목소리를 통해 불려져 우리 대중음악사에 ‘명작’으로 남아 있다. 이수영 성시경 조성모 sg워너비 서영은 신화 김범수 장혜진 나얼 등 후배 음악인들은 이 ‘명작’을 끊임없이 다시 부르며 헌정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1985년 이문세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시작으로 ‘기억이란 사랑보다’가 수록된 이문세 13집(2001년 발표)까지 함께 작업하며 100여곡의 주옥같은 노래를 만든 작곡가 이영훈이 활동 20주년을 맞아 자신이 쓴 노래들을 정리해보고자 ‘The Story Of Musicians’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100여곡의 노래 중 30곡을 골라 최근 13곡을 담은 ‘옛사랑’이란 이름으로 앨범을 냈다. 내년 2월에는 나머지 곡들을 담아 ‘옛사랑2’로 발표한다. ‘옛사랑’에는 임재범 정훈희 이승철 윤도현 버블시스터즈 클래지콰이 sg워너비 신혜성 등 인기가수들이 참여했다. 다음 앨범에는 전인권 YB 등도 참여한다.

작곡가 이영훈은 작가주의다. 멜로디는 감성을 일깨우는 한 폭의 수채화여야 했고, 노랫말은 한 편의 시(詩)여야 했다. 80년대 초중반, 국내 가요가 팝에 한참을 밀려나 있었던 이유가 수준 높은 가사가 없어서라는 생각에 좋은 가사를 쓰기 위해 상당량의 책을 읽었다. 발라드는 가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80%라는 지론으로.

“내가 다작을 못해요. 노래 한 곡 만드는데 시간이 워낙 많이 걸려서 1년이 되도 겨우 열 곡 남짓 밖에 못 만들어요.”

미술과 음악, 예술에 재능이 남달랐던 이영훈은 미대에 진학했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군입대를 했다. 제대 후 음악작업을 하다 이문세를 만났고, 그를 통해 자신의 노래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 ‘소녀’가 수록된 자신의 첫 작품 이문세 3집은 100만장이 팔려나가며 당시 팝이 압도하고 있던 음반시장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가을이 오면’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이야기’ 등이 수록된 4집은 250만장이 팔렸고, ‘시를 위한 시’ ‘광화문 연가’ 등 5집에서 절정을 이뤘다.


이문세라는 가수하고만 작업했던 이유가 궁금했다.

“처음에는 우연히 하게 됐는데 이후에는 늘 하던 사람과 하는 게 편하더라구요. 소량의 작품을 써왔는데, 이왕에 연습이 잘 돼 있는 가수가 좋았죠.”

그러나 한 가수하고만 하다보니 단점도 있었다. 이영훈은 발라드 외에도 블루스 스윙 재즈 등의 곡을 만들었지만 대중은 모두 다 발라드로 받아들였다.

“발라드가 아닌 곡들의 특이성을 제대로 살려보고 싶어 작곡가로서 20주년이 되는 해에 내 작품들을 정리해봤어요.”

‘옛사랑’ 1집은 임재범이 부른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을 타이틀곡으로 이승철이 부른 ‘영원한 사랑’, ‘가을이 오면’ (박선주) ‘시를 위한 시’(신혜성) ‘소녀’(sg워너비) ‘사랑이 지나가면’(정훈희) 등이 수록됐고, ‘그녀의 웃음소리뿐’은 윤도현과 전인권, 박완규, JK김동욱의 합창으로 수록했다.

1980년대 중반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 작업실을 뒀던 이영훈은 밤새 작곡을 하고 이른 새벽 산책을 나서던 가을날을 그린 곡이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며, ‘광화문 연가’ ‘옛사랑’ 등 대부분의 수록곡은 광화문과 정동, 멀리 경복궁까지 산책을 하며 얻었던 감수성을 노래로 표현한 노래들이다. 그 길을 따라 사랑도 있었고 이별도 있었고 추억도 있었다.

이영훈은 일부에서 단순한 리메이크 앨범으로 보는 것에 손을 내젓는다.

“하도 리메이크 붐이 불다보니까 혼동하는 것 같다”는 이영훈은 “요즘 나오는 리메이크는 아티스트가 아닌 제작자들이 만든 것”이라며 “가수들의 특성 취미 취향을 장르적으로 못가고 상업적으로 만든다. 내 앨범은 작곡가가 자기 곡을 다시 정제되게 발표한 것이지 리메이크는 아니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영훈은 컴퓨터로 만드는 미디 사운드는 연주자의 느낌이 없다며 앨범 수록곡 모두 100% 어쿠스틱 사운드로 살려냈다.

“이제 후배 가수에게 곡을 주고 훌륭한 후배 작곡가를 많이 보살펴주고 싶다”는 이영훈은 창작하는 사람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가난한 시인은 예전에는 존경을 받았는데, 요즘 가난한 작곡가나 작사가는 실력이 없다는 평가 속에 내몰리고 명예를 주지 않더라구요.”

이영훈은 2001년 이문세 13집을 끝으로 가족과 함께 호주로 떠났다. 5년간 머물 요량으로 떠나 대자연 속에서 감수성을 충전했다. 뮤지컬 제작에 뜻을 두고 대본도 곡도 썼다. 그 사이 아들은 성장해 아버지를 따라 미술학도의 꿈을 키우고 있다.

‘난타’ 제작자 송승환과 의기투합해 뮤지컬 ‘광화문 연가’(영어제목 ‘The Angel Of Seoul’)를 제작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협의중이다. <사진=홍기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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