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관우, 日 '태풍의 핵' 뚫은 '천상의 목소리'

요코하마(일본)=김태은 기자,   |  2007.07.16 09:05


걱정은 기우였다.

가수 조관우는 첫 일본 공연 전날, 수면 유도제까지 먹고도 채 한 시간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고 했다. 일본 열도를 강타한 4호 태풍 마니 때문이었다.

TV를 켜면 온통 흉흉한 소식 뿐이었다. 사람이 죽고 집이 떠내려갔다고 했다.

조관우의 일본 공식 데뷔가 될 '조관우 섬머 페스티벌 2007' 콘서트는 15일 내년 개항 150주년을 맞는 일본의 항구도시 요코하마에서 매년 개최되는 개항 기념 미나토제의 피날레인 세계불꽃놀이축제와 연계돼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마니로 인해 이 축제와 관련된 모든 행사가 취소됐고, 요코하마항으로 오는 대중교통편도 모두 끊겼다. 비행기도 결항돼 아들의 일본 데뷔를 지켜보고자 했던 무형문화재 조통달 명창도 오지 못했다. 이날 새벽 3시까지 공연 진행 여부가 결정되지 못했다.

결국 몇 명의 관객이 올 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연을 강행하기로 하고, 이를 전화와 인터넷으로 공지했다.

태풍의 핵이 지나는 이 지역은 오히려 간간히 비만 내릴 뿐 고요했다. 조관우는 내내 초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바다가 고스란히 내려다보이는 요코하마 오산바시 국제여객터미널의 오산바시홀에서 오후 4시 시작될 공연에 드디어 관객들이 태풍을 뚫고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신칸센도 멈추고 도쿄에서 오던 전철도 가다 서다를 반복해 30여분 거리인 요코하마까지 3시간이나 소요됐다고 했다.

예정보다 40여분 늦은 시간에 시작된 공연에는 어느새 1000여명의 관객이 객석을 채웠다. 애초 매진된 1650석중 불꽃놀이와 연계해 패키지로 팔려 취소된 좌석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예매객이 공연을 찾은 셈이었다.

게다가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열성팬 30여명도 현장을 찾아 즉석 입장했다. 조관우가 현지에 공식 소개되지 않았음에도 공연장을 찾을 이들은 뜻밖에 대부분 일본인들이었다.

공연 전 인터뷰에서 "예상한 관객수보다 적더라도 태풍을 피해서 오신 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조관우는 실크 재질의 보라색 셔츠와 검은 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하이톤의 미성으로 카스트라토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파리넬리' OST에 실렸던 '울게하소서'로 막을 열었다.

이어 '비원', '사랑했으므로', '길'을 연이어 부른 후 경쾌한 비트의 'Let Me Go'를 선보이자 숨죽이던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공연장 첫줄을 채운 '조관우 팬클럽' 소속 회원 19명은 열성적으로 응원하며 한국어로 "사랑해요", "멋있어요"라는 말을 외쳤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듯 조관우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전문 음악 공연장이 아니어서 음향이 울리는 단점이 있었으나 그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일본팬들에게 이는 장애가 되지 못했다. 팬클럽 회원들은 조관우의 영문이름이 씌어진 야광 보드와 야광봉 등을 준비해 열렬히 조관우를 응원했다. 이에 화답하듯 조관우는 스크립터를 빌어 일본어로 공연을 진행했고, 간간히 열성팬들의 꽃다발 세례도 이어졌다.
↑기타하라 히데키씨 제공


일본에서 한류열풍의 정점을 이룬 드라마 '겨울연가'의 타이틀곡, 일본 인기그룹 안전지대의 히트곡 'FRIENDS'를 비롯해 'Let's groove', 'Staying alive', 'Tragedy' 등의 팝, 트로트 '청춘을 돌려다오' 등 다양한 레퍼토리가 조관우 특유의 스타일로 재탄생했다.

특히 '코리안 스타일 엔카'라고 소개된 '청춘을 돌려다오'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객석에서 요란한 박수소리가 이어졌고, 조관우가 잠시 가사를 잊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후반부는 조관우의 히트곡으로 메워졌다. '얼굴'에 이어 '겨울이야기', '님은 먼곳에'가 그의 목을 통해 흘러나오자 큰 박수와 함께 함성이 공연장을 채웠다.

조관우의 눈에도 어느덧 눈물이 맺혀 반짝거렸다. 어느덧 예정됐던 두시간이 흘러 조관우가 '라스트 송'이라는 단어를 내뱉자 그의 대표곡 '꽃밭에서'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졌다.

'Smile Again'을 끝으로 조관우가 퇴장하자 자연스레 "앙코르"가 터져나왔고, 조관우는 눈을 감고서 '늪'을 열창했다. 연이어 일본어로 가사를 번역한 '꽃밭에서'를 초연하자 객석에서는 큰 함성이 터져나왔다.

조관우는 "교포 여러분, 걱정을 많이 했다. 들떠 있다가 왜 하필 콘서트할 때 폭풍이 왔을까, 웬 날벼락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찾아주시고 자리를 메워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조관우 팬클럽 회원 오가타 마사코(61, 여)씨는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의 OST를 부른 가수 제로가 콘서트에서 불렀던 '꽃밭에서'가 누구의 곡인지 궁금해하다 조관우를 알게됐다"며 "정말로 노래를 잘하셔서 감동이 컸다. 이렇게 소프라노 목소리를 내는 남성 가수는 일본에 없다"고 찬사를 보냈다.

삿포로에서 요코하마까지 조관우를 찾아온 팬클럽 회장 사사키 마사도모(37)씨는 "현재 인터넷 팬클럽에 30여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여성 40대가 주요 멤버"라고 소개하며 "지난 4월 서울에서 있었던 공연에 5명이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고 자랑했다.

조관우의 일본 상륙은 작은 규모였지만 태풍의 공포를 제칠 만큼 위력적이었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4집 CD 200장도 순식간에 동이났다.

공연 직후 열린 사인회에도 어린이부터 70대 노부인까지 100여명의 골수팬들이 차례로 줄을 서 조관우와 악수를 나누고 준비해온 CD, 포스터, 사진 등에 사인을 받았다.

이날 관객 중 등이 굽은 채 오랜 시간 줄을 서 기다리던 에베 에이(76, 여)씨는 "비가 많이 와서 걱정했는데 잘 돼서 다행이다"며 계속해서 "(일본에 오기를) 기다렸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조관우는 "어떻게 시작하고 끝냈는지 모르겠다. 일본에 숨어있는 팬들로부터 감동과 함께 충격을 받았다"며 "기쁨으로 따지면 1집을 통해 조관우라는 이름이 알려졌을 때 기쁨과 비교할 수 있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관우는 앞으로 현지 음반 발매와 크리스마스 공연 등을 통해 일본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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