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시네클릭]'행복', 흔적없이 사라진 순간

강유정 영화평론가  |  2007.10.01 09:05

행복도 능력이다.

살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분명 지금 그 곳이, 그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려 보이는데, 계속해서 그 곳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있다.

더 심각한 경우는 그 사실을 본인이 잘 알고 있을 때이다. 내가 있는 이 곳, 내가 만나고 있는 그 사람이 날 행복하게 해 줄 '그 사람'임을 알면서도, 그러면서도 멀어진다.

제 복을 차낸다는 말이 있듯이, 그런 사람들은 행복이 생애에 끼어드는 것을 피해간다. 일부러 그러기라도 하는 듯이 행복을 향유하지 못하고 행복에서 멀어져만 간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행복'에 등장하는 그 남자, 영수처럼 말이다.

허진호는 작가주의 멜로영화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예민한 독자들은 이미 감잡았겠지만 작가주의와 멜로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멜로드라마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관습적인 영화 장르이기 때문이다.

관습적이라는 것은 나름의 서사적 장치를 이미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두 남녀가 만난다. 좌충우돌하다가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 때쯤 장애물이 나타난다. 장애물로 인해 지고지순한 두 사람의 사랑은 간섭받는다. 간섭은 영원할 뻔했던 사랑의 신화를 깨뜨리고 만다. '너는 내 운명'의 에이즈처럼, '약속'의 범법행위처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사형처럼. 그렇게 사건과 사고와 질병은 사랑의 영원성을 훼방놓는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영원했을 사랑이 바로 '그것' 때문에 와해된다.

결국 멜로드라마란 “그것만 아니었더라면”으로 시작되는 가정법 위에 서 있다.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만 없었더라면 완전한 만남이 이루어졌을 텐데, 하는 바람 말이다.

이 공식은 사랑의 영원성을 망치는 근간이 외부에 있다는 환상을 준다. 그리고 사랑은 본질적으로 영원한 것이라는 위안까지 선사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조건이 바뀐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허진호는 이 공식을 묘하게 뒤틀고 전복한다. 변하는 것은 조건이 아니라 바로 마음이라고 말이다.

'봄날은 간다'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질문으로 상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허진호는 변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아프게 보여준다. '행복'도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흔히 행복은 아주 먼 곳으로부터 우연히 얻게 되는 외재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란 도저히 갈 수 없는 환상이자 유토피아로 여겨지는 셈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생애의 정점이라 부를 만한, 행복의 지점을 건넌다. 문제는 그 행복의 절정이 너무나 평범하게 생긴 탓에 알아보기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 평범함을 알아보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하루의 삶을 전 생애를 건 듯 살아가는 여자 은희는 매 순간을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이 그녀의 삶을 행복으로 인도한다.

사랑은 결국 동병상련에서 시작해 동병혐오로 끝난다. 그 사람을 발견하는 순간 연인이 되려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공통점을 찾으려 안간힘을 쓴다. 밥먹는 것, 숨쉬는 방법, 걸음걸이, 혈액형 등 사소한 지표들 속에서 동병을 찾아 헤맨다. 사소한 공통점에 기뻐하고 그것을 천생의 운명이라 확대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 공통점에 염증이 난다.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공통점이 지긋지긋한 반복이 되어 싫증을 불러일으킨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던 바로 그 점이 지겨워지는 모순, 행복 역시 마찬가지다. 행복이라 여겼던 그 부분들이 어느 순간 지긋지긋한 일상으로 돌변하고 그 때 슬며시 행복은 증발된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기화된 행복의 순간들, 허진호의 영화 '행복'은 그 순간을 잡아 낸 작품임에 분명하다. 영수와 은희의 “행복”한 한 때는 결국 우리가 영원히 놓쳐버린 “행복”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강유정/영화평론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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