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사전적 의미로는 '담화'(談話)와 우리말의 '뒤'(後)가 합쳐져 생긴 말이라고 한다.
단순히 풀자면 이야기를 나누긴 하는데 대화 주제 대상의 앞에서가 아닌, 뒤에서 몰래 나눈다는 말로 필시 그 이유가 있음직하다. 대놓고 칭찬하면 서로 민망할까봐? 혹은 대놓고 욕하면 불이익을 당하거나 상처받을까봐? 둘 중 하나일 테지만, 아무래도 후자 쪽이 뒷담화가 이뤄지는 이유로 훨씬 설득력 있어 보인다.
어떤 모임, 어떤 자리에도 빠지지 않는 두 가지가 있다면 바로 음식과 뒷담화가 아닐까 싶다.
특히나 방송가는 다른 집단에 비해 뒷얘기를 나눌 공통의 대상이 너무나 많기에 뒷담화가 빠질 리 만무하다. 방송국 복도를 지나다 우연히 관계자를 만나도 벽다방(자판기 커피)에서 커피 한잔이라도 나누며 얘기를 하고, 모임의 약속은 대부분 무슨 종류의 음식이 있는 어느 장소에서 만날지부터 정하니 음식과 뒷담화는 모임의 필수인 듯 보인다.
이러한 무리들의 만남에서 음식이나 술과 함께 이뤄지는 것이 대화인데, 그 처음은 각자의 근황과 공통의 관심사로 시작되지만, 그 끝은 부지불식간에 그 자리에 없는 남의 뒷담화들로 치닫고 있을 때를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쩌다 입담 센 사람의 뒷담화에 잘못 걸리면, 그 대상은 그가 입에 씹고 있던 음식처럼 잘근잘근 분해되기도 하니, 밥 먹듯 이뤄지는 뒷담화가 음식 씹는 것에 비유되기도 하는 건 아닐까 상상해본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외국인들에 비해,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함께 뒷담화를 꽤 즐기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좋게 말하면 정(情)이 많은 민족성의 발로(發露)고 주변사람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라 함께 나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이것을 대화의 무리에서 자신만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는 누군가 뒷담화를 시작하면 그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웬만해선 스톱을 걸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 조금 다르다 싶어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도로 방관하기 쉽고, "나는 그 사람을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남의 얘긴 이제 그만하지 그래? 네가 직접 본 게 아니니 사람 없는데서 우리 함부로 그런 말 하지 말자"고 웃으며 찬물을 끼얹을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순식간에 융통성 없고 인생의 낙을 모르는 모범생으로 욕을 먹거나, 아니면 한창 뒷담화를 하던 사람이 민망한 상황이 돼, 모임의 분위기가 어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아군이라 맘 놓고 비밀 작전을 짜다가, 갑자기 한명의 스파이를 발견해 작전이 샐까 두려워지는 그 묘한 분위기를 과연 누가 애써 만들려 하겠는가.
어떤 자리에서건 남의 은밀한 사생활이나 뒷담화를 꺼내기는 민망해하고 눈치를 보는 게 정상이다. 혹시나 나중에 그 자리의 모든 뒷담화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 올까봐 또는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 때문에라도,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시작되는 것이 뒷담화인데 이것의 시초는 대부분 "근데, 그 얘기 들었어?"로 시작되곤 한다. 물어본 적도 없는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해오는 건 "자 지금부터 누군가의 뒷담화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다들 괜찮지?" 하고 은근한 동의를 구하는 표현으로 들리기도 한다.
필자는 뒷담화의 시초가 되는 이러한 질문에 일부러 무뚝뚝한 리액션을 보이는 편이다.
대부분, 누군가의 입에서 이런 말이 시작됐을 때 "뭐,뭐,뭐 뭔데뭔데 말해봐?" 한 두 명의 호들갑이 따르는 게 정상인데, 이러한 리액션은 불난 뒷담화에 기름을 들이붓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리액션이 나와주면 화자는 함께 한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동의가 이뤄졌다고 안심하고, 마치 한 배를 탄 동지가 된 냥 신나게 뒷담화를 향해 달리기 시작할
것이 분명하리라.
인기그룹 신화의 멤버이자 M이란 이름으로 솔로 가수로의 변신에도 성공한 가수 이민우. 그는 내가 본 그 또래 연예인들 중에 가장 뒷담화 앞에 용감했던 걸로 기억한다.
가끔 그의 콘서트에 초대받아 가면 30세도 안된 그가, 나이 많은 공연 스태프들에게 하는 마음씀이나 수족같이 소중히 여기는 댄서들부터 시작해서 공연때마다 함께 하는 연주 멤버들, 찾아와 준 동료들, 회사 관계자들, 그리고 부모님까지 하나의 소홀함 없이 모두 챙기는 모습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 모습들이 참 대견하고 예쁘게 보여 아직까지 인연을 맺고 지내왔는지도 모르지만.
그의 진짜 숨은 장점 하나를 말하자면 남의 뒷담화에 쉽게 동참하지도, 또 본인이 즐겨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다 생일 파티가 있거나 친한 무리들이 함께하는 간단한 자리가 마련되면, 누가 특별히 의도하지 않았어도 자연스레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연예인이나 방송가 사람들의 사적인 얘기나 평가들이 오가게 마련이다. 다들 얘기 내용이 재밌기도 하고 본인들 얘기도 아니기에 그냥 재밌게 듣고 말지만, 내가 알고 지켜본 이민우는 대부분 이 상황에서 두 가지 선택을 한다.
만약 그것이 자신이 잘 모르는 사람의 뒷담화면 말하는 상대가 민망해하지 않게 은근 슬쩍 화제를 돌리고, 자신이 친하거나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이의 뒷담화면 더 진행되기 전에 단호하지만 자연스럽게 스톱 시키는 용기를 보이곤 한다.
"그 사람 나랑 친하니까 뒷담화 하지 마!" 확 들이대고 나중에 후회한 적이 있는 무식한 필자가 꼭 배우고 싶은 그의 묘한 능력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간혹 아주 많이 짜증내고 화내며 뒷담화를 저지할 때도 있는데, 그 때는 바로 뒷담화의 대상이 신화의 멤버 중 하나일 때이다.
얼마 전 모 방송에서 보여진 핸드폰 문자처럼, 평소에 그들은 멤버 서로에게 "에릭 꺼져, 혜성이 너랑 안 놀아, 앤디 바보" 등 막말의 평가를 즐기지만 자신들끼리가 아닌 제 3자의 입에서 멤버들의 뒷담화가 조금이라도 행해지면 얼굴색까지 변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갈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가수 이민우는 곱게 자라 어쩌다 운이 좋아 쉽게 인기 가수가 된 연예인이 아니다.
그리 풍족하지 않았던 중고교 시절부터 가수 외의 다른 목표는 가져본 적도 없을 만큼의 큰 열정을 가졌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이에 비해 꽤 많은 고생을 했음에도 그것을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음 목표로 가는데 도움을 주는 추억으로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긍정적이고 밝은 친구다.
그래서인지 또래 친구들에 비해 그 행동이나 마음 씀이 사뭇 다름을 느낀 적이 많은데 철이 빨리 들어서인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나 주변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행동들이 참으로 어른스럽고 여유로움이 묻어나곤 한다. 그는 필시 남을 향해 한 손가락질 중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신을 향해 있음을 잘 알고 행동하는 현명함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얼마 전 친한 기자 한분이 갑자기 전화가 와서는 필자가 오래 전부터 친하게 알고 지낸 매니저의 실명을 들먹이며 "그 사람들 미친거 아니냐 혹시 아냐"며 화를 내며 물어왔다.
내용인 즉, 방금 그 매니저들이 소속 가수들 기사 때문에 자신에게 전화로 욕을 하며 함부로 대해서 열받아 죽겠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것이었다. 순간 너무나 고민되고 난감하였다.
일단 욕을 했다고 하니 친한 기자편을 들어 위로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필자는 용기 내어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제가 아는 안OO, 박OO는 그런 행동을 할 사람들이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 친한 기자의 섭섭함과 원망섞인 목소리를 각오한 필자에게 이어지는 전화 목소리, "최작가님, 저 안OO데요. 잘 지내시죠? 큭큭 죄송합니다" 그제서야 몇 명의 큰 웃음소리가 들리면서 다들 신났다.
그것은 자신들끼리 평소에도 잘 알고 지내던 그 기자와 2명의 매니저가 함께 있던 자리에서 내게 시도된 '몰래카메라' 아니, '몰래 전화'였던 것이다. 필자는 잠시 약 올랐지만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만약 내가 분위기에 이끌려 뒷담화에 맞장구라도 쳤더라면, 생각만 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를 일 아닌가.
'뒤'라는 말에는 두 가지 상반된 의미가 있다. 보이지 않는 배후나 좋지 않게 남은 감정이란 뜻과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힘이란 뜻.
전자보다는 후자의 뒷담화가 널리 퍼진 세상이 좋지 않겠나. 용기의 반대말은 비겁이 아니라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용기를 낸 후, 내게 일어날 반응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뒷담화 앞에 가끔 용기 내 보자. 그 보다 더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방송작가 최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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