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들의 저녁식사'가 포문을 연 지 5년이 흘렀지만 2003년 '싱글즈'가 세상에 첫선을 보였을 때도 아직 세상은 여성의 성(性)을 이야기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엄정화 장진영 두 여자가 그린 스물 아홉살 처녀들의 이야기는 그 나이 또래 언니들의 간지러운 곳을 벅벅 긁어줬고, 그래서 화제를 모았다.
'싱글즈' 이후로 5년, 권칠인 감독은 못다한 이야기를 전하겠다며 '뜨거운 것이 좋아'(제작 시네마서비스)를 들고 돌아왔다.
2일 새해 첫 시사회를 가진 '뜨거운 것이 좋아'는 강모림의 '만화 10,20 그리고 30'을 바탕으로 사랑과 우정 사이에 혼란을 겪는 여고생과 일도 사랑도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은 20대 후반,갑작스럽게 찾아온 폐경기에 당황하는 40대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권칠인 감독은 "'싱글즈'보다 더 넓으면서도 더 사사로운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뜨거운 것이 좋아'는 잘 빠진 일본소설처럼 여인들의 소소한 일상들을 몰래카메라로 엿보듯 세밀했다.
아무리 고쳐쓰고 또 고쳐써도 영화로 만들어질 기약이 없는 시나리오를 붙잡고 있는 20대 후반의 니코틴 중독자 아미. 꽁초를 주워피고 바람 핀 남자친구에 절망해 술자리에서 울고 웃다가 하룻밤 실수를 저지르는 여인이다. 마음 먹은 대로 풀리지 않은 일상에 회계사에 미국 시민권자인 백마 탄 왕자님이 등장한다.
"만두가 왜 만두인지 아냐, 그럴만두 하지"라는 썰렁한 유머를 날리는 게 유감이지만 결혼해 미국으로 함께 가자는 프러포즈를 하니 예라 모르겠다라는 심정도 든다. 그런 와중에 옛 남자친구와 또 한 번 실수도 저지른다.
아미의 언니이자 돈 많고 능력 좋은 41살 영미는 연극 무대를 인테리어하다 연하의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쿨'하게 이어지는 듯 하던 관계는 영미에게 폐경기가 시작되면서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3년째 사귄 남자친구와 아직도 뽀뽀 한 번 못한 여고생 강애는 절친한 친구에게 연애 강습을 받다 그만 설레는 감정을 느끼고 만다.
아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10대와 40대를 오가며 이어지는 세 여자의 이야기는 쉬지 않고 허벅지를 두둘길 정도로 유쾌하고 또 시원하다. '싱글즈'로부터 5년, 이미 소비의 주체가 된 여성들의 이야기는 많고도 많아 새로울 것은 없으며 그래서 도식적인 결말로 이어지지만 낄낄 거리며 보기에 충분하다.
권칠인 감독은 '뜨거운 것이 좋아'에 새로움을 더하기 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비빔밥처럼 맛나게 담아 냈다.
이미숙 김민희 안소희, 세 여자배우 중 김민희의 연기는 특히 발군이다. 연기자보다는 모델로서 이미지가 더 강했던 그녀는 '재발견'이라는 진부한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아미와 혼연일체가 됐다. 술에 취해 울고 웃고 주정하는 김민희의 '주정 3종 세트'는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김민희를 다시 보게 될 계기가 될 것이다.
베테랑 이미숙이야 더 말할 나위 없으며, 원더걸스로 문근영 이후 새롭게 국민여동생으로 떠오르고 있는 안소희의 연기자 변신도 눈여겨 볼 만하다. 하지만 언제나 찌푸리고 있는 안소희의 얼굴을 지켜보면 차라리 그녀에게 입술을 빼앗기는 동급생역의 조은지가 더 눈에 밟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몇 번의 베드신이 등장하지만 '뜨거운 것이 좋아'는 제목처럼 뜨겁지는 않다. 오히려 '여자들의 이야기, 웃기지 아니한가'가 더 적절하다. 17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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