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희는 편견의 늪에 허리까지 푹 잠겨있던 배우였다. N세대 스타로 각광받으며 등장한 그녀는 세련된 옷차림과 자기 주장, 톡톡 튀는 언행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그만큼 질타를 받았다.
당당한 자기 주장은 고집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였으며, 그 때문에 주위와 불화를 겪는다는 말들이 무성했다. 모델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인지 발성조차 안된다는 선입견도 강했다. 톱스타 이정재와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긴 공백은 김민희를 배우가 아닌 옷잘입는 연예인으로 자리매김시켰다.
그랬던 그녀가 배우로 돌아왔다. 이제는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는 누이처럼 긴 시간을 에둘러 이제야 스크린에 안착했다.
김민희는 오는 17일 개봉하는 '뜨거운 것이 좋아'에 사랑도 일도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 통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아미 역을 맡았다. 시사회 후 반응은 뜨거웠다. 누구는 김민희의 재발견이라고 깜짝 놀라했으며, 누구는 여자는 그래서 사랑을 해봐야 한다고 떠들었다.
관객의 심판을 받기 전에 불붙은 이 같은 찬사에 김민희는 행복해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일과 사랑이 모두 마음 먹은데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당차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아요. 끼가 별루 없어서 방송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는 게 힘들었어요."
김민희가 끼가 부족하다?
"모델로 데뷔했을 때는 일을 굉장히 편하게 했어요. 그러다 '학교2'로 연기라는 걸 시작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카메라가 스틸 카메라와는 달라서 공포를 느끼기도 했어요. 그러니 다음 일정을 쫓아다니는 게 불안했어요. 연기하는 게 무섭고 힘들었죠."
자신을 둘러싼 선입견과 편견을 김민희라고 모르지는 않는다. 다만 터무니없이 부풀어진 게 아쉬울 뿐이다.
"선입견이 전부 다 오해는 아니에요. 고집이 세서 하기 싫은 것은 싫은 거였거든요. 하지만 못들어본 정말 아닌 말들이 생겨나더라구요. 부풀어지고 과장된..."
김민희의 연기에 대한 칭찬은 역으로 그만큼 김민희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연기한 모습에서 옆집 누나, 친구 언니를 느껴서 그런 같다고 모범답안을 말하던 그녀는 "왜 당신의 연기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것 같냐"는 질문에 "CF에서 보여진 이미지에 그동안 많이 보여드리지 못했던 게 컸던 것 같다"고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김민희는 과거를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해왔던 것들 때문에 현재가 있는 것이니깐요. 후회는 없어요. 다만 내가 잡을 수 있는 기회들을 다 놓친게 아닌가 싶기도 했죠.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배우로서 김민희의 전환점은 드라마 '굿바이 솔로'이다. 김민희는 '굿바이 솔로' 전에 공백기가 있었으며, '굿바이 솔로' 뒤에 공백기가 있었다. 앞뒤 공백기를 통해 김민희는 배우, 연기, 인생에 대해 좀 더 고민했다.
"다시 하고 싶은데 뜻대로는 안되고, 해놓은 게 있어서 사람들이 선뜻 시켜주지도 않고. 그래서 '굿바이 솔로'에 그렇게 매달리기도 했어요."
'굿바이 솔로' 제작보고회에서 김민희가 눈물을 쏟은 것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그리고 '굿바이 솔로'에서 김민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도 공백기가 또 찾아왔다.
"정말 이제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열심히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분위기가 좋은데 일을 하지 않냐고 묻기도 했구요. '아,예'라고 하면서도 친한 사람들에게는 솔직하게 말했죠. 일이 안들어와..."
이 일이 안맞는가도 생각했다. 그래서 파리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찾아갔다. 김민희는 "여기라면 내가 뭐든지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서울에서 뭘 다시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있었으니깐"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바로 그 때 '뜨거운 것이 좋아' 출연 제의를 받았다. 시나리오를 읽어본 김민희는 한 달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카메라 앞에 섰다.
"너무 기뻤어요. 떨렸고. 그리고 카메라에서 내가 생각한 아미를 연기했어요. 담배 뻑뻑 피우며 시나리오를 쓰는 첫 장면이었죠. 사실 그 때까지 권칠인 감독님이 날 완전히 믿지는 않았거든요. 계속 여러 주문을 하시며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첫 신이 끝나자 감독님과 다른 스태프들이 모두 믿어주더라구요. 정말 배우로 인정받은 느낌이랄까. 너무 행복했어요."
김민희가 술을 먹고 필름이 끊겨본 적이 없는 걸 염려스러워하던 권칠인 감독은 결국 김민희가 워크샵에서 필름이 끊겨 실려가자 비로서 만족한 웃음을 짖기도 했다.
김민희가 '뜨거운 것이 좋아'에 그렇게 빠지고 또 열심히 한 데는 연기에 대한 목마름도 물론이었지만 사랑과 일에 흔들거리던 자신과 아미가 닮았기 때문이다.
"일은 이야기했구, 사랑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누구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푹 빠져서 사랑하다 헤어지면 당연히 아프죠. 하지만 그 아픔으로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사랑은 잘 모르겠어요. 언젠가 다시 찾아올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안좋은 추억도 좋게 기억되고."
긴 공백기 끝에 돌아온 김민희를 이제는 좀 더 자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뜨거운 것이 좋아' 이후 벌써 차기작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루게릭 병에 걸린 25살 여자이다.
"지금은 그냥 달리는 기간인 것 같아요. 달리고 계속 달리면 언젠가는 무엇인가가 보일 것 같아요."
카메라 앞에 다시 서기까지 불안하고 힘들었던 그녀가 점점 더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올해 관객들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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