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홍상수식' 인물들이 프랑스 파리로 무대를 옮겼다. 주인공은 구름을 그리는 국선화가인 김성남(김영호 분)과 미술학도 이유정(박은혜 분)이다.
제5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홍상수 감독의 신작 '밤과 낮'이 12일 현지공개에 1시간 앞서 국내 언론에 시사됐다.
베를린 현지에서 인터뷰를 가진 홍상수는 "'밤과 낮'은 한국사회를 향한 특정한 메시지를 지닌 작품은 아니다. 메시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라 오독의 여지를 감안하고 말한다면, '밤과 낮'은 미술계에 대한 통쾌한 풍자로 읽힐 수 있다.
3류 소설가, 프로덕션 PD, 연극배우, 대학강사, 예비 영화감독 등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는 차지하지 못한 '어설픈' 식자층 혹은 예술가들의 의식 세계에 신랄한 칼날을 들이댔던 홍상수는 이번에는 에고이스트에 불과한 한 화가의 미숙함을 폭로한다.
현지 발행된 할리우드리포터 데일리는 대마초를 피우고 파리로 도피한 성남이 옛 여자친구,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난 뒤 한국에 있는 부인에게 돌아오는 여정을 호머의 서사시에 비유했지만, 오히려 현대판 '오딧세이'인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의 영향이다.
8월8일부터 10월12일까지 파리에 머물게 되는 성남의 의식의 흐름은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은 별로 보여주지 못한다. 옛날에 태어났으면 장수감이라는 인사를 들을 만큼 '힘'만 세다. 북한 유학생(이선균 분)과의 팔씨름에서 이긴 것만으로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유치함, 북한 사람과 만났으니 자수해야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덜떨어짐이 실소를 낳을 뿐이다.
외양과는 달리 섬세한 결을 지닌 구름을 주로 그리지만 별다른 의미는 없다. 다만 "사람들은 내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가 나름 '국선화가'인 그의 유일한 예술가로서의 고민이다. 40대에 다다랐지만 파리에 체류할 돈을 어머니에게 조달해야할 정도로 경제적인 독립도 요원하다. 그 구름은 뜬구름 잡듯 세상을 살아가는 성남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예술에 도시라는 파리에 와도 소위 예술에 종사한다는 그의 헛헛한 일상은 별다름이 없다. 그러고보면 그는 그림보다는 여자에게 더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아보인다. 10년전 자신의 아이를 6번이나 중절수술한 옛연인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다.
"사랑해, 너무 너무 사랑한다"를 남발하지만 상대가 유정이든, 아내 성인(황수정 분)이든 생머리를 질끈 묶기만 했다면 별 상관은 없어보인다. 그의 꿈속에서는 지혜라는 여자가 또 등장하니까. 되려 낡고 오래된 서민 아파트에 살며 도자기를 깨뜨린 아내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는 꿈속의 성남이 그의 본질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런가하면 유정은 허영기 가득한 예술가지망생의 표상이다. 그는 왜 파리에 머무르고 있는 걸까. '위대한 화가의 꿈' 운운하지만 재능이 없는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거짓말로 삶을 영위한다. 결국 이 영화는 예술의 허위에 대한 조롱으로 읽힌다.
홍상수가 결코 대중적인 감독은 아니지만, 러닝타임 145분은 일반관객에게는 좀 길다. 무슨 일인가가 생길 듯, 생길 듯 하다마는 진보와 반동의 반복에 지루해지다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남루하고 사소한 일상이 마치 자신의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일 들 때 몸서리가 쳐질 것이다.
홍상수의 남자들은 1차원적인 성욕 때문에 어린아이처럼 여자에게 사랑을 투정하고, 홍상수의 여자들은 질투심에 험담하고 내숭을 떠는 속물들이다. 홍상수식 영화 문법에 충분히 익숙해진 이들이나 홍상수식 인물들이 파리에서 벌이는 일이 궁금한 이들에게 권한다. 국내개봉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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