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와 영희, 그리고 바둑이. '교과서 3인방'이라 불리는 이 이름들은 그 때문인지 촌스럽다는 멍에를 쓰고 있다.
배우에게, 그것도 여배우에게 영희라는 이름은 촌스럽다는 낙인이 찍히기 쉽상이다.
하지만 서영희는 갖가지 아름다운 예명을 쓰는 배우들이 천지사방에 널려 있는데도 '영희'를 고집한다. 어릴적에는 동네 아이들의 놀림에 바꿔 볼까도 고민했고, 실제로 '서영'이라는 이름으로 바꿔보기도 했지만 결국 영희로 돌아왔다.
서영희는 "바뀐 이름으로 사람들이 날 부르면 뒤돌아볼 것 같지 않더라구요. 평생 살아온 이름을 쉽게 바꿀 수는 없던데요. 영희라는 이름이 이제는 너무 사랑스러워요"라며 활짝 웃었다. 여려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서영희는 아줌마처럼 너털 웃음을 터뜨린다.
영희라는 이름과 그녀의 너털웃음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저녁을 짖는 연기가 굴뚝으로 올라오는 시골 풍경과 좁은 골목길에서 하루종일 놀다가 '밥 먹자'는 부름에 달려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서영희는 불연듯 고향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 서영희이기에 그녀가 영화 '추격자'(감독 나홍진, 제작 영화사 비단길)에 아이 딸린 미혼모로 출장 마사지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여인을 연기한다면 얼핏 잘 연상되지 않는다. 그동안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무도리' 등 그녀가 연기했던 전작을 살펴보도 아리송하다.
더욱이 최근 종영한 드라마 '며느리전성시대'에서 뿔테안경 쓴 세상 물정 모르는 작가 복남이를 연기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랬던 서영희이기에 '추격자'에서 그 불쌍한 여인은 '딱' 소리가 난다. 힘든 몸을 이끌고 억지로 몸을 팔러갈 때, 살인마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 자신 밖에 모르는 악질 포주가 기를 쓰며 찾을 때, 관객이 옆집 누이처럼 안타까워하기에 서영희가 제격이다.
서영희는 '추격자'에서 속옷만 입은 채 비에 젖은 강아지 마냥 바들바들 떤다. 코를 땅에 묻은 채 소리로만 들리는 살인마의 작업 소리에 실제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잔뜩 겁에 질려 있지만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아둥바둥대는 그녀의 모습은 '궁녀'와는 또 다르다.
혹자는 남성 중심의 영화에서 또 여자만 피해자로 그려진다고 비판한다. 직업도 꼭 그렇다고 비꼬기도 한다. 그래도 서영희는 나만 아니면 된다고 웃는다. 영희라는 이름을 너무나 사랑스러워하는 그녀이기에 짖굳은 시선쯤은 비켜낼 줄 안다.
사실 서영희가 매춘녀를 연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학전에서 연극을 하던 시절 '저 별이 위험하다'라는 연극에서 이미 한 차례 창녀를 연기한 적이 있다. 그 때도 사창가를 몰래 찾아 기웃거렸다. 차마 만나서 이야기는 못했다. 연기 한답시고 상처를 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복남이'로 TV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는 요즘, 서영희는 또 다른 부담이 생겨났다.
아줌마들이 식당에 갈 때도, 목욕탕에도 갈 때도, "복남이 잘 있었냐"라고 물을 때 행복하면서도 부끄럽다. 그래도 꾹꾹히 동네 목욕탕은 열심히 갈 생각이다.
'추격자'를 시사회에서 처음 봤을 때 "이렇게 좋은 작품에 출연해 영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만 못한 게 아닐까"라고 후회하기도 했다. 김윤석 하정우라는 두 걸출한 배우 틈에 "나만 가려지는 게 아닐까" 살짝 고민도 했다.
그래도 서영희는 씩씩하다. 섹시하지도 않고, 통통하기만 해서 어떻게 배우 노릇 하려고 하냐는 핀잔에도 "토하게 생기지만 않으면 된다"고 씩씩한 그녀였다.
"비호감만 아니면 되죠"라는 그녀는 '추격자'에서 김윤석의 연기를 보고 한가지 숙제를 마음 속으로 결정했다. 맛갈 나는 사투리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부산 억양이 담겨 있는 김윤석의 말이 전해주는 생활감을 배우고 싶어서다. 남들이 영어를 공부할 때, 서영희는 사투리를 공부할 결심을 한 것이다.
무자년을 '며느리전성시대'와 '추격자'로 연 서영희는 이제 한 발자욱 더 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한 때는 왜 나는 이렇게 자주 어긋날까라고 생각도 했지만, 이제 그녀는 가야할 길이 분명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참고로 '추격자'에는 서영희와 관련한 숨은 그림 찾기가 등장한다. 하정우가 망치를 내려칠 때 서영희는 화면 밖에 있는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하정우의 선글래스에 비친다.
서영희는 그런 존재이다. 없는 듯 하지만 꼭 필요한...철수와 영희, 바둑이에서 영희가 빠지면 안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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