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홍상수와 베를린行,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인터뷰)

김태은 기자  |  2008.02.22 11:48
ⓒ임성균 기자


배우를 연극용이다, TV용이다, 혹은 영화용이다, 그렇게 구분할 수 있을까. 김영호(41)는 TV 연속극에서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연기자였다. 그런데 그가 '예술영화'로 유명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해 국제 무대에 섰다.

지난 10일부터 15일까지 신작 '밤과 낮'을 초청 상영한 제58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참석했던 김영호에게서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돌아온 감동과 흥분이 그대로 묻어났다.

배우는 씌여지기 나름이고, 연기력을 갖춘 배우라면 더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시청자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그는 지금, '배우'라는 묵직한 무게로 다가온다. 김영호를 두고 "연기를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잘하는 배우인 줄은 몰랐다"는 극찬도 나왔다.

28일 국내 관객에게도 선보이는 '밤과 낮'은 대마초를 피우고 파리로 도피한 화가 성남(김영호 분)이 옛 여자친구, 새로운 여자친구(박은혜 분)를 만난 뒤 한국에 있는 아내(황수정 분)에게 돌아오는 여정을 그렸다. 지난해 8월8일부터 9월20일까지 파리 로케이션을 한 후 서울로 돌아와 다시 보름간 강행군했다.

김영호는 "아마 145분 동안 단 한 장면을 빼고 한 배우가 전부 출연하는 영화는 드물 것"이라며 "그 한 장면도 꿈 속의 아내가 목욕탕을 가는 장면인데, 나중에 삽입된 것"이라며 무척 뿌듯해했다.

ⓒ임성균 기자


-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감독님이 이런 영화를 구상 중인데 이에 맞는 배우를 찾고 있다고 하니, 한 영화전문기자가 나를 추천해 소개로 만났다. 첫 만남에 원하는 배우였다면서 무척 좋아하시더라.

- 그와 함께 한 작업은 어땠나.

▶롱테이크를 좋아하는데, 내가 본래 연극을 했기 때문에 한 편의 연극처럼 감정선을 계속 이어가는 연기가 잘 맞았다. 또 자연스러운 연기를 원하셨는데 연기하지 않듯이 하는 연기를 펼치는 것도 잘 맞았다.

정말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이었는데 같이 일하면서 너무 좋아졌다. 너무 친해졌고 그의 열렬한 팬이 됐다. 홍상수라는 사람을 통해 배우로서 내 존재를 재확인했다. 정말 고맙다. 이는 홍상수의 작업이고 나는 그저 성남이로 살았다.

- 홍 감독은 그날 그날 배우에게 대본을 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냥 얘기를 많이 나눴다. 나에게 어떤 여자를 좋아하냐고 물어서 '현실적인 여자는 싫다'고 하니 그것이 다음날 촬영에서 그대로 대사에 반영됐다. 내가 무심히 했던 행동을 찾아내서 영화에 반영하더라.

- 해외 영화제 참가는 처음인데 소감은.

▶국제영화제는 주로 처음 가는 배우들이 많지 않나. 나 같은 경우는 국내 영화제도 두어 번 밖에 참석 안해봤다. 배우로서 무척 영광이다. 특히 내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작품으로 그런 자리에 서게 돼 더더욱 그랬다.

- 남우주연상 수상이 예견되기도 했는데.

▶그런 생각을 못하고 갔는데, 현지 언론의 평가가 너무 환상적이라 약간 욕심이 생겼다. TV매체 15군데 정도, 기자회견에 온 100명 이상의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들의 평가가 "다큐멘터리 같다. 유럽에서 가장 어렵게 여기는 연기가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인데 2시간 반 동안 튀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너무 잘 끌고 갔다", "흡사 저렇게 살아온 것 같다" 등의 호평이 이어져 기대감이 생기기도 하더라.

- 영화를 시사하니 어떻던가.

▶걱정을 많이 했다. 145분 내내 내 얼굴이 줄줄이 나오는데 어떨까 싶어서. 아마 이렇게 영화에 시종 나온 배우는 드물거다. 영화를 보면서 주위 환경을 처음 봤다. 촬영하기 바빠 주위를 둘러볼 새가 없었다. 밤에도 성남의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혼자 있었다.

성남이의 일기가 밤과 낮을 왔다갔다 하면서 펼쳐지는데, 적당히 나쁘면서, 적당히 선하게, 그런 양면성이 적절하게 공존하는 가운데 어중간한 노선에서 살고 있더라.

ⓒ임성균 기자


- 극중 성남이의 행동이 이해되나.

▶그에 대해서는 할 대답이 없다. 내가 그냥 성남이었기 때문이다. 성남의 몸을 입고 그냥 했다. 성남이 역에서 빠져나오는 데 상당히 오래 걸렸고, 아직도 다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한국에서 촬영을 할 때는 집으로 돌아오면 내 생활이 있고 한데, 파리에서는 계속 혼자 있었기에 더욱 그랬던 듯 싶다.

그래도 성남이가 아니라면 찍기 어려운 장면들이 있었다. 아내에게 전화로 "자위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실제 나라면 절대 못할 것 같다. 너무 어색하고 어쩔 줄 몰라 미묘한 표정을 짓게 됐는데, 영화를 보니 제대로 찍혔더라.

박은혜의 발가락을 빠는 장면도 처음에는 안하면 안되냐고 했다. 혼자 내가 성남이라고 마음을 다지고 촬영을 했다. 진심으로 하지 않으면 뒤통수만 나와도 티가 날 것 같아서 그야말로 최면을 걸고 했다.

- 특별히 힘들었거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파리에 간 지 이틀 뒤에 공항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프랑스인과 대화를 나누는 첫 신을 찍었는데, 담배를 연이어 30개피나 폈다. 컷을 안하니 계속 담배를 피며 연기했고, 머리가 멍하더라. 결국 화장실에 가서 다 토하고 이후 연속 4시간을 쓰러져 잤다.

영화 속 순서가 생활과 똑같다. 그날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고 해서 내레이션도 그날 다 소화했다.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다.

도중에 제작사가 바뀌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감독님이 "너만 있으면 이 영화 찍을 수 있다. 너만 흔들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해 무척 감동받았다.

ⓒ임성균 기자


- 영화에 대한 해석의 여지도 많다.

▶이번 촬영을 하면서 그냥 감독님을 믿고 준대로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의심하지 않았다. "왜?"라는 질문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했고, 성남인 것처럼 살아가겠다고 했더니 "우리 신나게 놀아보죠, 잘 해봅시다"라고 대답하시더라. 영화 찍을 때 보면 정말 눈빛이 살아있다. 그와의 작업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 영화 속에서 팔씨름을 잘하던데 진짜 실력은?

▶나도 내가 팔씨름을 그렇게 잘하는 줄 처음 알았다. 영화 스태프들하고도 팔씨름을 해서 다 이겼다. 나보다 훨씬 젊은 친구들이라 지고 나니 무척 창피해하더라.(웃음)

- 장르를 가리지 않고 출연해온 것 같다. 차기작은 결정했나.

▶나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 했다. 장군이 자기를 알아주는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하지 않나. 한 2년 동안 출연하려고 한 영화 4편이 다 무산돼서 영화 출연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당분간은 영화에 치중하려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영화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연기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앞으로 작품 선택에 좀 신중해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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