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레이서'는 어린이용 영화다. 어쩌면 당연하다. 워쇼스키 형제가 “어린 조카들이 재미있게 볼 만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일본의 어린이용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용 영화를 두고 줄거리를 나무라는 짓 따위는 부질없다. 정종철이나 오지헌에게 “연예인인 주제에 왜 그리 생겼냐?”고 따지는 꼴이다. 연예인이 꼭 미남, 미녀가 아니어도 상관없듯 영화 또한 나름대로 목적과 개성만 뚜렷하면 대중은 환영한다. '스피드 레이서'의 목적은 어린이들을 만족시키는 것이며, 개성은 스토리라인이 아니라 영상이다.
영상은 꽤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매트릭스'의 블릿 타임 기법을 더 발전시킨 ‘레이서 타임’ 기법, ‘퀵타임 버추얼 리얼리티’ 등등 각종 신기술이 사용됐다는데, 설명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먹기가 쉽지 않다). 이만하면 아무리 영상에 익숙한 요즘 어린이들이라 해도 신나게 즐길 만하겠다. 어린이 손을 잡고 극장에 따라간 어른들도 한심한 내용에 잠시 눈 감으면 흐뭇하게 볼 수도 있겠다.
존 굿맨, 수전 서랜든 등 연기파 배우의 진지한 연기도 ‘어른들도 볼 만한 어린이 영화’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 주인공 스피드 레이서 역의 에밀 허시도 절제된 연기를 선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허시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젊은 배우로 급부상하고 있다. 숀 펜 감독의 '인투 더 와일드'에서 보여준 연기는 놀랄 만했다. 반갑게도 '로스트'의 매튜 폭스도 출연한다. 영화 내내 가면을 쓰고 나오다 끝에서야 벗는 레이서 엑스 역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요즘 세상에 일본인이면 어떻고 중국인이면 어떠랴. 정지훈이 일본인을 연기하면 어떻고, 기무라 다쿠야가 한국인을 연기하면 또 어떠랴. 어떻게든 영화 속에서 일본 냄새를 지우려는 배급사의 노력이 안쓰러울 뿐이지, 일본 만화를 영화화하는 작품이 일본 냄새를 풍기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할리우드에까지 문화 상품을 수출하는 일본인의 저력이 부럽고, 샘나고, 끝내는 좀 배가 아프기는 하지만 말이다.
워쇼스키 형제의 저예산 스릴러 '바운드'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더했다. 대규모 대중영화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가지면서도, 흥행 성공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으며 작가로서의 재능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린이용 영화를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혹시 그 벽마저 허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 것은 그 때문이다. '스피드 레이서'는 그렇게까지 대단하지는 않다. 조카나 아들에게 망설이지 않고 추천할 만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김유준 에스콰이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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