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털리 부인, 애마나 엠마누엘과는 조금 격이 다른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김형석   |  2008.05.26 10:05

채털리 ‘부인’이라는 호칭 때문에 엠마누엘 부인이나 애마 부인, 나아가 젖소 부인과 ‘동급’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채털리 부인은 조금 격이 다르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 캐릭터를 창조한 사람은 영국의 작가 D.H. 로렌스. 시대를 앞서간 작가였던 그는 1928년에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내놓았다.

‘성’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자유를 이야기한 이 소설은 적나라한 묘사와 발칙한 내용으로 인해 한때 ‘외설’로 낙인 찍혔던 작품. 1955년부터 2006년까지 영화와 TV를 통해 여섯 차례 가량 영상으로 옮겨졌으며, 가장 최근엔 2006년에 프랑스에서 영화화되어 한국엔 '레이디 채털리'라는 제목으로 개봉되기도 했다.

아마 우리에게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채털리 부인은 1981년에 나온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실비아 크리스텔일 것이다(한국엔 한때 ‘차타레’ 부인으로 유통되었다). '엠마누엘'(74)로 그녀를 세계적인 에로 스타덤에 올려놓은 쥐스트 자켄 감독은 스물아홉 살의, 한참 무르익어 연륜이 묻어나는 크리스텔에게 채털리 부인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캐릭터라고 생각했고, 크리스텔도 자켄의 기대에 부흥했다.

로렌스가 창조한 채털리 부인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영국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콘스탄스는 역시 귀족 집안인 채털리 가문의 여자가 된다. 그녀의 남편인 클리포드 채털리는 1차대전에 참전중. 하지만 부상을 입고 하반신 마비가 되어 귀환한다. 이때 ‘미세스 채털리’의 나이 스물넷. 허벅지를 찔러가며 긴 밤을 보내기엔 너무나 젊은 나이였고, 그녀는 성욕과 함께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도 접어야 한다.

이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남자는 채털리 가문이 소유한 산에서 일하는 일꾼인 멜로스. 채털리 부인은 그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며, 결국 그와 함께 캐나다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녀는 ‘채털리’라는 귀족의 성을 버린다.

원작 소설과 영화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마이클리스라는 캐릭터. 산지기 멜라스와의 관계 전에 채털리 부인이 관계를 맺는 남자로서, 인텔리 부르주아에 대한 그녀의 혐오감을 급상승시키는 계기가 되는 인물이다. 영화에선 대부분 마이클리스라는 캐릭터를 삭제하고, 채털리 부인과 하층민 남자의 관계에 집중한다.

채털리 부인이라는 캐릭터의 가장 큰 매력은 아무래도 ‘계급을 뛰어넘은 파격적 사랑’일 것이다. 이것은 단지 욕망의 문제가 아니다. 성불구가 된 남편은 콘스탄스에게 섹스 파트너를 두어도 괜찮다는 파격적 제안을 하는데, 그녀가 선택한 파트너는 자신과 같은 귀족 사회의 일원이 아니라 자신이 부리는 하층민 남자다.

물론 영화에서, 특히 크리스텔의 영화에서 묘사된 채털리 부인과 산지기 멜로스의 관계는 매우 에로틱하다. 콘스탄스는 목욕하는 멜로스를 엿보고, 욕정을 불태우며 마스터베이션을 한다. 하지만 이런 섹슈얼한 묘사 때문에 채털리 부인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해방적인 기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육체의 욕구에 충실했고, 사랑이라고 믿는 그 무엇을 위해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여자다. 그녀가 원했던 건 섹스를 통해 얻는 순간적인 쾌감이 아니라,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동시에 자유로워질 수 있는 ‘총체적 엑스터시’였던 셈이다.

2006년에 나온 '레이디 채털리'는 여성 감독의 시선을 통해 전개되는 영화로, 좀 더 여성의 내면과 심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김형석 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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