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팬더', 굼뜬 팬더의 질펀한 액션-유머 한판

[너 영화? 나 김유준이야!]

김유준   |  2008.06.11 07:45

냉엄한 관객들도 애니메이션에는 ‘한 수’ 접어주는 경향이 있다. 실사 극영화라면 줄거리를 따지고 연기를 탓하다가도 ‘만화영화’와 맞닥뜨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관대해지곤 한다. 나 또한 그렇다. '알라딘'을 보며 줄거리가 구태의연하네 어쩌네 하는 짓은 차마 못하겠다. '토이 스토리'를 논하며 유치하다는 따위의 케케묵은 비평은, 적어도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애니메이션은 느낄 대상일 뿐 분석할 대상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만화영화에는 두 가지 종류만 있다. 아주 신나거나 덜 신나거나. 그곳에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픈 향수 비슷한 것이 서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림이 더 화려해지고 더 진짜처럼 발달했지만, 장난감이 말을 하고 팬더가 쿵푸를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책장을 주르륵 넘기면 곧잘 살아 있는 듯 움직였던 어린 시절의 내 ‘작품’들이 떠오른다.

주인공은 태반이 로봇이었지만 때로 야구선수였다가 때로 벌거벗은 사내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완성한 내 최초의 성인용 ‘움직그림’이 10원짜리 동전 한 닢에 친구들에게 팔려나간 뒤로,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 제대로 된 만화영화를 만들어보리라는 다짐이 언제나 자리했다. 강렬하거나 옅어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쿵푸 팬더'는 내가 만들고 싶어 했던 그런 애니메이션이다. 먼저 아이디어가 아주 재미있다. '사형도수'로 성룡이 스타가 된 뒤로 동물의 움직임을 본뜬 무술은 무협 팬들뿐 아니라 어지간한 사람들에게도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무술을 진짜 동물들에게 적용한 컨셉트는 숫제 콜럼버스의 달걀 같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생각을 그 동안 왜 아무도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거기에 팬더라니! 주인공이 늠름한 호랑이거나 날렵한 학이었다면 이토록 흥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굼뜨고 미련해 뵈는 팬더가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을 때 비로소 호랑이와 뱀과 학과 사마귀, 그리고 원숭이의 캐릭터가 제대로 산다.

줄거리 전개도 대단히 빨라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곳곳에서 빛을 뿌리는 그 유머라니! 할리우드의 저력이 새삼 놀랍다. 성룡과 루시 리우가 목소리 연기에 합세한 것도 흥미를 북돋운다. '쿵푸 팬더'는 아주 신나는 애니메이션이다. 애써 평가절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한 가지만 기억하자. '쿵푸 팬더' 제작비의 100분의 1로 만들어낸 국산 애니메이션도 곧 극장가에 출현한다는 사실이다.

'인디애니박스-셀마의 단백질 커피'라는 가히 애니메이션다운 제목인데, 20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세 편('사랑은 단백질' '원티드' '무림일검의 사생활')을 모아놓은 작품이다. '사랑은 단백질'은 자기 아들 ‘닭돌이’를 튀길 수밖에 없었던 ‘내다리 치킨’ 닭사장과 이를 마주한 세 친구의 각기 다른 처지를 그리는, 신랄하면서도 재치 있는 작품. '원티드'는 현실을 풍자한 블랙코미디이며, '무림일검의 사생활'은 환생한 뒤에도 살수들에게 쫓기는 무림 고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렸다.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면 보지 않아도 상관없겠다. 한국 애니메이션을 살려야 한다는 식의 의무감으로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려운 처지의 만화영화 산업을 도왔다는 만족감은 영화를 본 뒤 자연스럽게 뒤따라야 한다.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애초부터 그 생각만으로 억지로 ‘봐낸다면’ 오히려 영화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이런 독립 애니메이션도 있다는 사실은, 적어도 알아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소리 소문 없이 며칠 걸렸다 간판을 내려 관객들에게 평가 받을 기회 자체가 봉쇄된다면, 어렵게 작품을 만들어낸 제작자들로서는 너무 억울하다. 덧붙이자면, 어렵게 걸음을 옮겨 값을 치르고 봐도 그리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 값어치는 충분히 하는 작품들이다.
<김유준 에스콰이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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