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서바이벌 정치드라마의 새 지평①

김현록 기자  |  2008.06.16 08:16


MBC 월화사극 '이산'은 '사극의 대가' 이병훈 감독이 최고 권력자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작품이다. '상도', '허준', '대장금' 등에서 정치 권력과 상관없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개인에게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던 그가 왕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산'은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반대파의 모함 속에 아버지를 친할아버지의 손에 잃은 뒤 결국 왕에 올라 생을 마감하기까지를 그린 일대기다. 그 시작은 왕세자였던 아버지의 죽음이요 그 끝은 천신만고 끝에 왕의 자리에 오른 정조 자신의 죽음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차기 권력자로 지명된 그가 끊이지 않는 생명의 위협 속에 왕이 되었다가 결국 죽음으로 권력을 놓기까지가 77부 드라마 속에 그려졌다.

'허준'의 내의원, '대장금'의 수랏간에 이어 그림을 총괄하는 도화서를 드라마에 새롭게 되살린 '이산'은 맛깔나는 유머와 현대적 대사, 한 회에 한 에피소드가 마감되는 이병훈 PD의 현대적 사극의 틀을 따른다. 그러나 카메라의 초점이 '이산'에 맞춰질수록 살아남는 것이 곧 승리하는 것인 조선 왕조의 서바이벌 게임을 충실하게 펼쳐진다.

사도세자가 죽은 뒤 영조가 죽고, 기회를 맞아 이산을 몰아내려던 화완옹주와 정후겸이 죽음을 맞는다. 이산의 조력자 홍국영이 권력을 노려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보낸 여동생이 죽고, 격분해 왕후를 독살하려던 홍국영이 죽는다. 연인 송연은 병에 걸려 죽고, 마지막까지 정조를 암살하려던 노론 벽파가 무더기 죽음을 맞는다.

조선왕조의 권력투쟁 사극에는 언제나 사약과 처형이 난무한다. 출신과 태생이 곧 정통성이기에 죽음 외엔 반대파를 처리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구조는 여느 정치 사극이나 마찬가지지만 죽음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이산'을 통해 이병훈 PD는 권력이 곧 생명임을 보다 분명하게 그려낸다. 비장함 바깥의 유쾌한 분위기는 그 생명의 중요함을 더욱 강조한다.

정조는 늘 생명의 위협을 받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왕이 되어간다. 그를 죽이는 데 실패한 이들은 거꾸로 연이어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그 서바이벌 드라마는 시청자를 쥐었다 놓았다 하며 드라마가 종영을 앞둔 이날까지 시청자들을 붙드는 핵심 이유가 됐다. 그리고 그 정조가 이제 죽음으로 시청자들을 풀어주려 한다. 그 죽음은 또 어떤 여운을 남길까. 굿바이 '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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