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신나게 찍었다구요? 그거 다 거짓말이에요."
정우성이 손사래를 친다. 170억원이 투입된 액션 대작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감독 김지운·제작 바른손 영화사그림, 이하 '놈놈놈') 얘기다. "고생스러웠지만 신나게 찍었다"는 김지운 감독이며 송강호 이병헌의 소감은 "다 지났으니까 할 수 있는 얘기"란다.
오는 17일 개봉을 앞둔 '놈놈놈'을 보면 그런 정우성의 얘기가 결코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다. 특히 현상금사냥꾼 도원 역을 맡은 정우성은 전문 스턴트맨인지 배우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달리는 기차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려 비탈을 한바퀴 구른 뒤 자세를 잡고 장총 한 발을 쏘는 과정이 한 커트에 담긴다. '억'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대역도 없었어요. 한마디로 미쳐서 찍은 거죠. 목숨을 걸고 찍었으니까. 뭐랄까, 고생을 '지랄맞게' 하면 기억의 잔향도 진하게 남잖아요. 그렇게 찍은 영화가 너무 신나고 통쾌하니까 보면서 자기도 신이 나는 거죠."
정우성은 촬영중 왼쪽 손목 뼈가 부러지는 부상도 입었다. 말에 오른 채 고삐를 놓고 총을 쏘는 장면을 찍다가 펄쩍 뛴 말 등에서 떨어졌다. 무법천지 귀시장에서 도원이 한 손으로 밧줄을 붙들고 다른 손으로는 장총을 쏘며 공중을 붕붕 날아다니는 장면은 부러진 손목에 깁스조차 하지 않은 채 완성한 것이다.
"아파도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잊어져요. 작품을 찍을 때 이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모든 걸 걸어야 할 때가 있어요. '놈놈놈'이 그랬던 것 같아요. 이 다음에 또 다른 게 있다고 주저하거나 망설이거나 타협해서는 여러분이 느끼는 긴박감을 스크린으로 전해드릴 수 없을 테니까요."
정우성이 유독 강렬하게 고생을 겪은 데는 대체가 불가능한 멋진 외모도 한 몫을 했다. 대역으로는 도저히 정우성의 도원이 뿜는 '포스'를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손목이 부러져 찍지 못한 '말에서 내리는 장면' 하나를 제외하고는 단 한 장면도 대역이 없다.
실제로 '놈놈놈'의 정우성은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될 만큼 멋지다. 깊숙하게 눌러쓴 카우보이 모자와 카라멜색 코트, 부츠로 멋을 내고 한 손에 장총을 든 그의 모습을 보면 '이 남자가 작정하고 멋을 부렸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외모로 날 평가하는 데 대한 부담, 그런 거 없어요. 서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게 얼마나 큰 찬사인가 싶어요. 그런 찬사를 듣기 위해 노력하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아요. 거기에 플러스를 더해서 보여주는 게 저의 몫이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지요."
더욱이 '좋은놈' 도원은 영화의 모티프가 된 서부영화 '석양의 무법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았던 역. 그를 현대적으로 그린다는 데 부담을 느꼈을 법도 하지만 정우성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모방할 생각도, 경쟁할 생각도 없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경쟁을 한다고 할 수도 없는 인물이죠. 시가를 문 채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트레이드마크는 제가 흉내낼 수도 없는 거예요. 그는 그고 나는 나죠. '놈놈놈' 때문에 옛 서부영화를 다시 찾아본 적도 없어요. 그저 나답게 하려고 했을 뿐."
그를 스타덤에 올린 청춘물 '비트'가 떠오를 만큼 고독한 캐릭터를 그려낸 정우성의 차기작이 한일합작드라마 '시티헌터'라는 점은 재미있다. 그가 맡은 주인공 사에바 료는 원작 만화에서 예쁜 여자를 밝히다 늘 100톤짜리 망치로 얻어맞는 얼빠진 킬러다. 몸매 좋고 예쁜 여자가 아니면 의뢰인도 안 받는다.
"제가 워낙 현장에서 얼빠진 농담을 많이 해요. 무인도 개그라고 있죠? 한마디 하면 사람들이 저에게서 확 멀어져요. 그래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서고 그래요(웃음).
원작자 프로듀서를 만났는데 요는 그 주인공이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여야 한대요. 그래서 원작자가 재키 챈(성룡)의 '시티헌터'를 싫어한다고. 사실 원래 남자들이 다 그렇죠 뭐, 예쁜 여자들 보면 눈도 따라 가고…."
'놈놈놈'을 돌이켜 보면 '시티헌터' 원작자 프로듀서의 평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비트'로 청춘의 고독을 이야기하던 정우성은 어느덧 30대 중반이지만 섹시한 매력은 더욱 진해졌다. 오죽하면 액션물 '놈놈놈'을 한껏 보고 나온 여성 관객들의 반응이 "정우성 멋지다"에 모아졌을까.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나이 서른이 되면 스스로 내가 남자라는 느낌이 들 거라고. 하지만 30대 초반이 되어도 그런 느낌이 안 들더라구요. 이제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내가 남자구나 하는 감이 와요. 남성으로서의 절정기를 느끼는 시작이구나."
그래서 정우성에게는 지금이 전보다 더 열심히 달려야 할 때고 쉴 수 없는 때다. 극중 송강호가 맡은 열차털이범 태구는 도원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다. 영화 속 도원은 끝내 자신의 꿈을 들려주지 못했지만 정우성은 "감독이 꿈이고 또한 좀 더 나은 배우의 모습으로 발전하는 것이 꿈"이라고 털어놨다. 그 길이 끝나 뒤를 돌아봤을 때에야 상상하던 길과 실제 걸어온 길이 어떻게 다른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그래서 정우성은 직접 차린 영화사 사무실에 출근도장을 찍어가며 작품을 준비하고 온 몸이 부서지도록 영화를 찍는다. 그가 멋진 외모의 배우로 출발해 지금은 할리우드 거장으로 자리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역을 맡았다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지금보다 더욱 멋지게 나이를 먹어갈 그의 모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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