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승리? 야한영화, 외설혐의 벗을까

박종진 기자  |  2008.08.01 14:33
↑ '천국의 전쟁'의 한 장면

멕시코영화 '천국의 전쟁'이 마침내 국내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과의 '전쟁'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지난달 31일 영상물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부여하도록 규정한 법률조항이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렸다. '천국의 전쟁'의 수입사 ㈜월드시네마는 2005년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고 서울행정법원은 수입사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영상물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으면 제한 상영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고 비디오물 등 다른 영상물로 제작·판매·상영할 수도 없다. 광고와 선전도 해당 제한 상영관 안에서만(밖으로 보이지 않게)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는 영업 중인 제한상영관이 1곳도 없어 제한상영가 등급은 곧 '사형선고'를 의미했다.

재판부는 "상영과 선전, 광고를 극도로 제한하는 영비법 규정이 헌법 제37조 2항이 요구하는 정당한 사유도 없이 영화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어떤 영화가 제한상영가인지 도대체 짐작하기 쉽지 않다"며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 "등급분류 기준에 대한 언급도 없이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규정에 위임하는 것은 문제"라고 덧붙였다.

즉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중대한 사안에서 법률상 제대로 된 기준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국회는 영비법 29조 2항 5호(제한상영가 등급을 '상영 및 광고 선전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로 지칭)를 2009년 12월31일까지 개정해야 한다.

실제 영비법의 모호한 규정은 줄곧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 이 영화는 되고 저 영화는 안 되는 식의 형평성 문제도 반복됐다.

중년 운전기사와 소녀의 사랑을 그린 '천국의 전쟁'은 당시 제58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호평을 받았을 만큼 외국에서는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반면 국내에서는 구강섹스, 남성성기 클로즈업, 여성성기 내부묘사 등이 나온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 포르노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 '흔들리는 구름'의 한 장면.


같은 해 제5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예술공헌상을 받았던 대만 영화 '흔들리는 구름'도 성기애무, 여성의 자위장면 때문에 제한상영가 처분을 받았다. 이 영화는 2분36초 분량을 자진 삭제한 후 간신히 18세 관람가를 따냈다.

그러나 기준은 없었다. 비슷한 시기 노골적 섹스묘사, 근친상간, 성기노출 장면이 담긴 '권태', '몽상가들', '루시아' 등은 심의를 통과해 개봉됐다. '천국의 전쟁'이 제한상영가를 받은지 불과 2달이 채 안된 2006년 1월에는 여성성기가 노출된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이 15세 관람가를 받았다.

제한상영가를 받은 영화들 상당수가 '문제 장면'을 잘라내고 심의를 통과한 것에 비해 '천국의 전쟁' 수입사는 "포르노 취급 받지 않겠다"며 버텼다.

당시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감독은 "영화내 섹스 장면은 인생에 대한 관념과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눈요기가 아니기에 삭제된다면 영화적 의미는 변질될 것"이라는 편지를 영등위 측에 전하기도 했다.

'예술과 외설', '표현의 자유와 섹스'라는 케케묵은 논쟁에 이번 헌재의 판결은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문화 평론가들과 관계 전문가들은 "시대적 상황이 바뀌고 우리 문화 수준이 성숙한 만큼 영화 내 성적 표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새롭게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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