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영은 김봉조, 진장림 등 5명이 경영 대표로 1964년 도쿄 올림픽에 나선이래 단 1 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아시아무대를 평정한 '스타'는 있었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아시아 물개' 조오련은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2관왕을 차지하고 2년 뒤 뮌헨 올림픽 자유형 400m와 1500m에 출전했지만 예선 통과에 실패했다.
조오련은 자유형 1500m에서 당시 금메달리스트였던 마이클 버튼(미국)이 골인한 후에도 한 바퀴를 더 돌고서야 레이스를 마칠 수 있었다.
'아시아 인어' 최윤희도 다르지 않았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를 휩쓸고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나섰지만 배영 100m 24위, 200m 21위에 오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안방에서 열린 88년 서울올림픽에서 한국 경영은 사상 최대인 15명의 대표 선수를 출전시켰지만 현 대표팀 코치인 박성원이 평영 100m에서 1분12초32의 한국 신기록으로 42명 가운데 18위를 차지한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이후 지상준이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배영 200m에서 29위, 96년 애틀랜타 같은 종목에서 예선 통과 후 9~16위가 겨루는 B-파이널 6위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이 대회 여자 배영 200m에서 이창하는 전체 13위의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지난 아테네 올림픽에서 한국 수영은 '조짐'을 보였다. 19살이던 서울대 1학년생 남유선은 개인혼영 400m에서 사상 최초로 결승에 진출에 7위에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4년 뒤, 박태환은 수영 사상 첫 메달을 금메달로 장식하는 기염을 토했다.
박태환은 10일 오전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3분41초86으로 우승했다. 3번 레인을 배정받은 박태환은 경기 초반 2번 레인의 그랜트 해켓(호주)에 다소 뒤처졌으나 100m 이후 선두로 치고 나와 점차 차이를 벌려나갔고 여유 있게 1위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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