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네마테크가 오는 18일까지 ‘사무엘 풀러 회고전’을 연다. 가장 필름으로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은 바로 리 마빈, 마크 해밀 주연 <지옥의 영웅들>(1980. 사진)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역의 마크 해밀이 <스타워즈> 이후 출연한 그나마 ‘영화다운 영화’여서이기도 하지만(그는 정말 <스타워즈>말고는 기억나는 영화가 없다), 역시 무심한 표정의 마초 리 마빈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무신경한 마초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지옥의 영웅들>에서 분대장으로 나오는 리 마빈은 북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시칠리아섬, 벨기에, 독일, 체코에 이르기까지 온 몸으로 전쟁을 겪는데 그 과정의 연기가 기가 막히다. 병사들과 길게 말하는 것도 귀찮아하고, 딱히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 같지도 않다. 전쟁영화의 전형적인 안티 히어로라 할 수 있다.
리 마빈의 팬이라고 얘기해온 류승완 감독은 평소 배우를 ‘열연파’와 ‘귀차니즘 연기파’로 나눈다고 말한 적 있다.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같은 배우들이 전자라면 뭔가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무심하게 설렁설렁 연기하는 것 같은 기타노 다케시나 리 마빈은 후자다. 물론 그는 “귀차니즘 연기파들이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 역시 자신의 저서 <박찬욱의 오마주>에서 “내게 단 한 명의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리 마빈”이라며 “존 부어맨의 초현실주의 누아르 <포인트 블랭크>(1967)에서 그의 무표정 연기는 빛을 발한다”고 썼다. 한편, 리 마빈은 작년 성인잡지 <맥심>이 선정한 ‘영화 속 가장 위대한 냉혈한’ 앙케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올드보이>의 최민식이 10위). 그만큼 그는 세계 수많은 영화광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터프가이다.
1924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남태평양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TV와 연극무대에서 부지런히 배우로 활동하다 프리츠 랑 감독의 <빅 히트>(1953)에 악당 역으로 주목받게 된다. 이후 그는 서부영화와 전쟁영화를 부지런히 오가며 악역, 조역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와일드 원>(1953)에서는 말론 브란도를 괴롭히는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고, 존 포드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에서는 바로 악당 리버티 밸런스를 연기했으며, <4인의 프로페셔널>(1966)에서는 냉철한 리더로 나왔다. 주로 악역으로 인상을 남기던 그는 전쟁영화 <더티 더즌>(1967)에서 본격적으로 서늘하고 냉정한 표정의 대령으로 등장하며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 시기 그의 대표작은 역시 <지옥의 영웅들>이다. 히틀러 소년단 아이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는 장면, 살인을 못 하겠다는 부하 병사에게 “동물(독일군)은 죽이는 거지(kill) 살해하는(murder)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그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영화는 전쟁의 무상함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것은 리 마빈의 고단한 표정으로 모두 설명이 된다. 그는 분대장이면서도 왜 전쟁을 계속 해야 하는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하기에 앞서 그저 하루하루 죽지 않고 살아남아있길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무심한 표정이야말로 정말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척 노리스와 함께 한 <델타 포스>(1986) 역시 화끈한 액션영화였다. 늘 ‘대장’ 혹은 ‘지휘관’으로 출연했던 그는 일찌감치 (자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백발이 되어 그 헤어스타일 그대로 정말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염색하는 것조차 귀찮아했던 것일까. 하지만 수많은 출연 예정작들을 남겨두고 그는 이듬해 1987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더 멋진 대장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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