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우가 돌아왔다. MBC 수목드라마 '돌아온 일지매'(극본 김광식 도영명·연출 황인뢰 김수영)를 통해서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천방지축 윤호가 과연 비운의 영웅 일지매에 어울릴 수 있을까.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정일우는 한층 날렵해진 턱선과 웃음기를 거둔 '남자'의 얼굴을 하고 시청자 앞에 섰다. 시청자들은 수목드라마 시청률 1위의 영예를 안기며 그를 환영했다.
그러나 아직 정일우는 기뻐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중이다. 그가 높은 시청률 보다 더 갈망하는 건 바로 연기자 정일우의 변화와 발전이다. 그는 "연기가 아직 멀었다", "'하이킥' 땐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고 스스로에게 짜디 짠 평가를 내렸다. 스스로에게 야박하다는 건 그만큼 기대와 욕심이 크다는 뜻일 터. 역시 그랬다. 정일우는 "연기는 조금만 기대해 달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노력하고 더 나아지겠다는 의지만큼은 결코 숨기지 않았다.
-한 눈에도 날렵해진 모습이다. 젖살도 빠지고.
▶남자다워졌다고 한다. 솔직히 기분이 좋다.
-방송 초반 '책녀 논란'이 일었다. 책녀가 주인공도 아닌데.
▶책녀에게 밀렸다. 저도 느낀다.(웃음) 해설을 맡는 책녀의 존재는 처음부터 알았다. 시간 경과라던지 인물을 소개하는 새로운 방식이 좋았다. 길게 풀어야 하는 것을 말로 콤팩트하게 전달하는 게 신선했다.
-첫 주연인데다 몸 고생도 많았는데, 시청률이 만족스러운지?
▶첫 방송 시청률이 그렇게 잘 나올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사실 마음을 비운 상태였다. 잘 되면 좋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무척 기뻤다.
첫 주연에 대한 부담이야 당연히 있었다. 그런데 7∼8개월 촬영만 하다 보니 그 부담이 없어졌다. 마음이 편해진 건지, 비운 건지 스스로도 모르겠다. 일단은 편하게 생각하려 한다. 정말 황인뢰 감독님만 믿고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다.
-연출자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다.
▶'거침없이 하이킥' 때 김병욱 감독님이 그러셨다. 혹시 황인뢰 감독님이랑 작품을 할 기회가 있으면 꼭 하라고. 그만큼 잘 하는 분이고, 연기 생활을 하면서 만나기가 결코 쉽지 않다고. 그래서 더 고민하지 않고 '돌아온 일지매'를 하게 됐다.
-촬영 내내 부상이 끊이지 않았다는데.
▶지금은 괜찮다. 많이 다치긴 했다. 여자 한복 입고 뒤돌려차기를 하다가 미끄러져서 발목 인대가 늘어났고, 며칠 전에는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 하지만 솔직히 '거침없이 하이킥' 때가 더 힘들었다. 무엇보다 매일 밤을 새니까. 그 땐 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잠도 하루 3시간만 자고. 지금은 부담이 조금 다르다. 액션신을 찍어야 하고, 한 신 한 신에 더 집중해야 한다.
▶슬픔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걸 목격한다. 자살을 생각할 만큼 아픔이 컸는데 조금씩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영웅이 된다.
-실제 정일우에게도 그런 면이 있나? 곱게만 자란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저 역시 곱게만 자란 건 아니다. 고생도 했고, 생각이 많아서 슬럼프에 빠지면 오래 가는 면도 있다. 황인뢰 감독님께서는 그런 제게 바닥까지 한번 내려갔다가 올라오면 달라지는 것이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그것 때문에 더 촬영이 힘들곤 했다.
-최근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최근에 가장 힘들었을 때는 '하이킥'이 끝난 뒤였다. 조급하기도 했고, 뭘 해야 할지도 몰라 심적으로 방황을 했다. 나는 해 놓은 게 없는데 어디든 반겨주는 것 같고, 돈도 쉽게 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러다보면 망가지기 쉬울 거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바쁘게 일을 만들었다. 사람들도 만나고, 학교도 다니고, 공부도 하고. 혼자 있어봐야 생각만 많아진다. 앞으로도 쉴 때는 그렇게 할 생각이다. 작품 하면서 배우는 것도 있지만, 작품을 하지 않을 때 배우는 게 후에 빛이 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미리미리 준비하려 한다.
-낙천적인 '하이킥'의 윤호와 어두운 면이 강한 일지매는 캐릭터 자체가 많이 다르다. 녹아들기가 어렵지는 않나.
▶'거침없이 하이킥' 시절 윤호는 바로 저였다. 어렸을 적 많이 놀았고, 즉흥적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제 모습을 보이면 됐다. 일지매 역시 그런 저의 다른 모습이다. 제가 변한 것이 아니다. '하이킥'에서 이런 점이, '일지매'에서 저의 다른 점이 드러났을 뿐이다. 연기를 하다보면 그 사람의 이런저런 면이 드러나지 않나. 스스로 캐릭터에 맞춰 조금 변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순재 선생님의 말씀을 늘 생각한다. 한 작품 끝나고 다른 작품을 하려면 마음을 비우고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다시 그리듯 해야 연기가 느는 것이고, 그게 또 연기자라고 하셨다. 똑같은 걸 울궈 먹으면 발전이 없다는 말씀을 떠올리며 많은 노력을 했다.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하더라도, 시청률을 떠나서 '성장했구나 변화했구나', ''하이킥'이랑 달라졌구나' 이런 이야기만 들어도 저는 만족이다.
-지금까지는 어떤가?
▶초반 장면을 보면 저걸 언제 찍었나 싶다. 분명 회를 거듭할 수록 달라질 테지만, 아직 멀었다. 다만 최선을 다 했고, 올인을 했다. 외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준 작품인 것 같다.
-스스로 연기에 대한 평가가 무척 야박하다.
▶당연하지 않나. 도저히 스스로 '아 나는 연기 너무 잘해' 이럴 수가 없다. 앞선 '하이킥'에서는 제가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연기를 못했다. 고칠 점이 보여야 발전할 수 있지 않겠나. '돌아온 일지매'는 정말 그림이 끝내준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제 연기는 조금만 기대해 달라. 멋진 영상은 많이 기대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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