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브 오언, 불의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마초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주성철   |  2009.03.02 09:45


요즘 세계영화계에서 가장 남자답게 생긴 배우 하나를 골라 보라면 선뜻 최근작 <인터내셔널>(사진)의 주인공 클라이브 오언의 얼굴이 떠오른다. 훤칠한 키에다 부리부리한 눈과 강인해 보이는 얼굴선, 그리고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적당히 면도하지 않은 굵은 수염은 굉장히 마초스럽다. 미간의 주름살을 잔뜩 찌푸려 결코 농담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 같은 표정 또한 무척 딱딱해 보인다.

이처럼 누군가 그런 부탁을 해온다면, 영원한 ‘글래디에이터’이자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터프 가이 러셀 크로나 새로운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와 비교해도 선뜻 그를 택하겠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새로운 본드 자리를 두고 마지막까지 경합했던 배우라는 사실이다.

클라이브 오언의 절도 넘치는 화법과 연기 스타일은 역시 ‘영국배우’의 그것이다. 왠지 ‘남자 영국배우’라고 하면 마초적인 걸 포함해 굉장히 견고하고 품격 있어 보인다. 그는 앤서니 홉킨스, 케네스 브래너, 로저 무어, 숀 빈 등을 배출한 영국왕립극예술학교(RADA) 출신이다.

셰익스피어 연극 제작자인 허버트 비어봄이 설립한 오랜 전통의 RADA는 영국에서 배우 지망생들에게 가장 입학이 힘든 학교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그는 동급생들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실력으로 RADA를 이끌었으며 TV시리즈 등을 통해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별 관계없는 얘기지만 그는 토레스와 제라드가 이끄는 프리미어리그 클럽 ‘리버풀’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이후 할리우드로 진출해 <고스포드 파크>(2001), <본 아이덴티티>(2002) 등을 통해 서서히 입지를 다져가기 시작했다. 이때가 벌써 마흔 살의 나이였으니 꽤 늦은 신고식이었던 셈이다. <인터내셔널>이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의 영향을 짙게 받은 작품이라면, <본 아이덴티티>에서 무표정하게 제이슨 본(맷 데이먼)을 쫓던 ‘질긴’ 킬러가 바로 클라이브 오언이었다는 사실은 무척 감회가 새롭다.

이때부터 클라이브 오언의 카리스마는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강한 영국식 액센트에 더해지는 그의 압도적인 눈빛은 사실상 마초적이라기보다 굉장히 연약해 보인다. <클로저>(2004)에서 사랑에 집착한 나머지 눈을 부라리며 거의 여자를 팰 것처럼 달려드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보듬어주고 싶은 모성본능을 불러일으킨다. 상대를 제압하지 않고는 성이 차지 않을 것 같던 그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아더 왕’으로 출연한 <킹 아더>(2004)에서도 정치적 야심이 없었던 그는 자유의 몸으로 그냥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침략에 맞서 브리튼(지금의 영국)의 백성을 구해야 할 것인지 고민한다. 그처럼 클라이브 오언은 결국엔 고뇌하고 망설이는 연약한 마초의 그것을 보여줬다.

서기 2027년, 더 이상 인류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암울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 <칠드런 오브 맨>(2006)에서 기적적으로 임신한 소녀를 보호해주는 남자, 그리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얼떨결에 한 임산부를 도와주게 되는 <거침없이 쏴라! 슛 뎀 업>(2007)에서처럼 그는 늘 매정하고 냉정한 척 하면서도 늘 남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모습으로 사랑받았다.

자고로 마초란 불의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 역할들을 설득력있게 만드는 것은 순전히 클라이브 오언의 몫이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남자 마초 배우들 중 가장 연기력이 뛰어난 마초라고나 할까.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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