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디젤, 악당보다 더 까칠한 대머리 마초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주성철   |  2009.04.01 09:17

해외에서의 인기와 별개로 유난히 국내에서 인기가 없는 배우들이 있다. 아무래도 정서의 차이인지 스티브 마틴과 아담 샌들러를 비롯, 최근의 벤 스틸러와 주드 애파토우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코미디언의 계보가 있고 액션영화로 보자면 최근 <분노의 질주: 더 오리지널>(사진)로 돌아온 빈 디젤이 있다.

그들은 할리우드에서 톰 크루즈나 브래드 피트 정도는 아니라도 존 트라볼타급의 개런티나 인기는 거뜬한 사람들이다. 뭐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시원한 대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빈 디젤 역시 <분노의 질주>(2001) 시리즈의 주인공이자, <트리플X>(2002)로 당당히 블록버스터급 규모의 영화를 책임지기도 했던 배우다. 미국 현지에서 받는 평가나 인기에 비하면 여전히 국내에서는 ‘신인’ 취급을 받는 대머리 마초다.

엥 정말? 혹은 어떤 역할? 이라고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빈 디젤의 영화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다. 심지어 그때도 대머리였다. 그래서 그가 연기한 ‘카파조’는 마치 2차대전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 훌리건이나 스킨헤드족 같았다. 어딘가 뜬구름 잡는 것처럼 붕 뜬 것 같은 그의 연기는(절대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꽉 짜인 휴머니즘 드라마 안에서 어딘가 어색해 보이긴 했다.

그래도 역시 거구의 강인한 인상 때문이었는지 애니메이션 <아이언 자이언트>(1999)는 제법 주목을 받았다. 아니 직접 출연한 것은 아니기에 주목받았다기보다 ‘괜찮은 배우’라는 확실한 인상을 줬다. 인간 꼬마와 교감하는 거대 로봇 아이언 자이언트의 목소리 연기를 훌륭하게 해내 단순한 ‘덩치’가 아니라 감성이 살아있는 배우라는 호기심을 줬다.

출세작은 <에이리언 2020>(2000)이다. 우주선이 미지의 행성에 불시착하고, 살인범으로 그 우주선으로 호송 중이던 죄수 리딕(빈 디젤)이 탈출한다. 생존자들은 리딕을 의심하지만 결국 더 무시무시한 에이리언의 존재 앞에 힘을 합치게 된다. 리딕이 딱히 생존자들에게 신뢰를 준 건 아니었지만 상황이 열악하다보니 힘 센 그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그는 ‘본의 아니게 정의로운 죄수’였다. 이 리딕 역할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는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2004)라는 속편까지 나왔다.

언제나 빈 디젤을 향한 수사는 ‘악당보다 더 악당 같은 주인공’이라는 표현이다. ‘쌈마이 007’이라 부를만한 <트리플X>나 마약 단속 경찰관으로 출연한 <빈 디젤의 디아블로>(2003)같은 영화들이다. 주인공이긴 하지만 어딘가 가까이 하기 꺼려지고, 영화 속 악당들보다 더 과격하고 주도면밀하게 사건을 해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간과되는 지점은 빈 디젤은 연기를 잘 한다는 사실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이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그리고 스티븐 시걸 류의 액션스타들과 비교하자면 그는 단순히 과도한 근육량으로 승부하는 배우가 아닌 셈이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보는 듯 화려하고 스피디한 액션연기도 좋았지만, 그의 영화들에 미국 젊은이들이 적극적인 호응을 보낸 것은 바로 그런 매력 때문이었다. 20년 가까이 변함없는 대머리에 늘 딴청을 피우는 것 같은 얼굴, 좀체 웃음이라고는 없으며 악당보다 더 까칠한 남자지만, 오히려 그 악당들을 조롱하면서 임무 하나만큼은 거뜬히 해낸다. 그는 변화하는 시대가 만든 새로운 마초 히어로였던 것이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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