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샤오강 감독의 <천하무적>(2004)은 뒤늦게 개봉하긴 했지만 꽤 괜찮은 오락영화다. 유덕화가 더벅머리로 출연해 마치 무협영화를 보는 듯 신기에 가까운 소매치기 기술을 선보인다. 반면 앞서 개봉한 최근작 <라스트 프로포즈>에는 세련된 신사로 출연한 유덕화는 그렇게 50세에 가까운 지금에 이르기까지(1961년생) 여전히 홍콩영화계의 중심배우로 맹활약하고 있다.
그보다 한 살 어린 양조위와 더불어 자기관리가 정말 철저한 배우다. 그 스스로 최근 몇 년간 자신의 출연작 중 최고라 말하는 <문도>(2007)에서는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마약 조직의 보스로 나왔다. 온통 백발을 해서는 가족과 조직 사이에서 고뇌하는 그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그는 늘 멋지게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유덕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는 <무간도> 시리즈(2002-2003)에서도 멋졌지만, 역시 옛 홍콩영화의 향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철부지 마초’의 전형을 보여줬다. 많은 남성팬들은 유덕화의 최고작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천장지구>(1990. 사진)에서 이루지 못할 사랑에 잔뜩 술에 취한 그가 방을 온통 어질러놓자, 오천련이 묵묵히 그걸 다 정리하고 치워주는 그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으리라.
그렇게 그는 의리와 사랑 앞에 일단 저질러놓고 보는 삼합회의 혈기왕성한 조직원으로 큰 인상을 남겼다. 아끼는 동생이나 형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거나 잔뜩 얻어맞고 돌아오면, 그는 자초지종을 듣기도 전에 일단 병이나 칼을 들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남자였다.
수많은 홍콩 누아르 작품들 중에서 ‘오토바이와 청자켓’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유덕화다. 그의 이름은 홍콩영화 안에서 하나의 ‘장르’다. 홍콩 남자스타들 중 영화 속에서 오토바이를 가장 많이 탔을 법한 유덕화는 ‘<천장지구>의 아저씨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왕정의 <용재강호>(1998)에서, 오토바이를 보며 “예전엔 오토바이 참 잘 탔는데”라며 회상에 잠긴 채 낮게 읊조린다. 그렇게 그는 홍콩 누아르 속에서 청재킷을 입은 삼합회의 잘생긴 철부지 혹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반항적 터프 가이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역시 그 최고봉은 아무래도 <천장지구>다. ‘비욘드’의 ‘단잠적온유’와 원봉영의 ‘천약유정’이 나란히 들려오는 <천장지구>의 라스트 신은 그야말로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과는 다른 의미에서 홍콩 ‘멜로’ 누아르의 완성이다. 이미 코피를 줄줄 흘리며 몸을 채 가누기도 힘든 상태의 유덕화가 이제 막 유학을 떠나려는 오천련의 집으로 찾아가, 쇼윈도를 깨트려 웨딩드레스와 흰 색 정장을 차려입고, 오천련이 성당에서 눈을 감고 기도하는 동안 그 자리를 떠나 오맹달과 함께 복수를 하는 그 장면은 유덕화를 추억하는 최고의 명장면이다.
유덕화는 홍콩영화계의 다른 남자 스타들과 달리 언제나 영화 속에서 죽었다. 말하자면 그가 죽어야만 영화가 끝났다. 혹은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그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천장지구> <복수의 만가> <지존무상> <천여지> <풀타임 킬러> 등 그는 대분의 출연작에서 죽었다.
<지존무상>에서 독이 든 술잔을 마셔놓고도 끝까지 다리 힘을 풀지 않던 그의 애절한 얼굴은 또 어떤가.(세 개의 술잔에 독이 든 잔이 하나 있고 그걸 피해서 마시면 친구 알란탐의 여자를 데려 나갈 수 있다는 일종의 ‘야바위’ 대결) 더불어 그의 옛 향수가 짙게 배어있는 <무간도>의 마지막 편에서도 그는 죽었다. <무간도> 시리즈가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 ‘과거 홍콩 누아르에 대한 총정리’라면 그의 죽음이 그것을 완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죽어야 사는 남자’ 유덕화는 그렇게 우리 가슴 속에 남아있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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