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부터 24일까지 62회 칸영화제가 열린다. 올해는 2002년 <올드보이>에 이어 박찬욱 감독이 다시 <박쥐>로 경쟁부문에 초청되고, 봉준호의 <마더>가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상영되는 등 예년에 비해 그 기대치가 높다. 더구나 올해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알랭 레네, 미하엘 하네케, 라스 폰 트리에, 두기봉, 리안, 켄 로치, 제인 캠피온, 쿠엔틴 타란티노 등 그 이름만으로도 주눅 들게 만드는 거장들의 총출동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보고싶은 작품은 바로 홍콩 두기봉 감독의 <복수>다. 프랑스의 국민가수로 추앙받는 자니 할리데이가 출연해 자신의 가족들을 몰살한 범죄집단을 좇아 홍콩으로 마카오로 그 복수의 여행을 떠나는 작품이다. 현재 공개된 예고편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을 한껏 분비하게 만드는 총격전이 두 눈을 사로잡는다.
물론 주인공은 자니 할리데이지만 황추생, 임달화, 임설 등 지금껏 두기봉과 함께 해온 멋진 ‘사나이’들도 당연히 모습을 비춘다. 특히 <무간도> 시리즈의 ‘황국장’으로 유명한 황추생은 자니 할리데이를 제외하고는 그들 중 가장 큰 비중으로 출연하고 있다. 지금 국내 관객들에게야 정의롭고 강렬한 인상의 황국장으로 각인된 배우지만 사실 황추생은 홍콩영화계에서 정말 산전수전 다 겪은 연기파다. 더구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거침없는 독설을 내뱉기로도 유명한 카리스마의 배우다. 국내에서도 제법 인기를 끌었던 <익사일>(2006) 등 두기봉 영화에서 보여준 무표정한 마초 캐릭터가 실제 현실의 모습과도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특히 그 서늘한 눈빛만큼은 최고다.
1961년생인 황추생은 과거 악역 전문(혹은 에로)배우였다. <지존무상2>(1992)에서는 유덕화의 연인 오천련을 죽게 했고, <첩혈속집>(1992)에서는 양조위를 죽게 했다.(<무간도>에서 양조위와 선후배 사이였던 것을 감안하면 기분이 참) 늘 정신분열에 시달리는 악당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미국의 R등급, 혹은 우리의 성인관람가 등급을 홍콩에서는 (1급과 2급에 이어) ‘삼급전영’이라 부르는데 일급이나 이급영화의 악역 아니면 대부분의 출연작이 삼급전영이었다. 그 자신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창피하다고 말할 정도다. 마니아들 사이에서 전설의 공포영화라 취급받는 <팔선반점의 인육만두>(1992. 사진)가 바로 그의 주연급 출세작이었다. 한때 그를 떠올리면 늘 함께 떠오르는 단어가 사이코패스였다.
그러던 그가 <천언만어>(1998)에서 독실한 신부를 연기하고, <야수형경>(1998)에서 정의롭고 터프한 형사를 연기하면서(이 영화로 금상장 남우주연상 수상) 일약 주연급 연기파 배우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그가 삼급전영이나 악역 전문 배우 시절 보여준 눈빛과 날카로운 마초 캐릭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변신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착한’ 역할을 맡더라도 아주 정의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딱히 타락한 것도 아닌 묘한 느낌을 준다. 그의 마초적 매력은 바로 그것이다.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주인공 말이다. 그것은 오직 파란만장한 영화인생을 걸어온 자만이 뿜어낼 수 있는 카리스마다. 과연 우리에게도, 아니 다른 나라 영화계에서도 허접한 에로배우로 시작해 어느덧 칸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게 된 배우가 있었던가? 황추생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아쉬운 건 <무간도> 시리즈 외에도 그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수두룩함에도 국내 개봉이 흔치 않다는 점이다. <이니셜D>(2005), <말할 수 없는 비밀>(2007)에서 주걸륜의 아버지로 나온 모습도 좋았지만 국내 개봉을 하지 못한 그의 주연작들은 훨씬 더 많다. 그의 영화들을 영화제가 아닌 극장에서 마주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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