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 "내겐 칸 레드카펫 큰 의미없었다"

칸(프랑스)=전형화 기자,   |  2009.05.18 06:38
ⓒ17일 칸의 한 호텔에서 '마더'의 주인공 김혜자가 취재진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더'로 제62회 칸국제영화제를 찾은 배우 김혜자가 자신에겐 레드카펫이 큰 의미가 없었다고 밝혔다.

김혜자는 17일 칸 해변가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가진 한국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레드카펫은 큰 의미가 없었다. 한국에서도 시상식할 때 뒷문으로 들어가곤 했다"고 말했다.

김혜자는 주연을 맡은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이번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돼 16일 오후 뤼미에르 극장 앞 레드카펫에 섰다. 여느 배우라면 흥분을 감추지 못할 일이지만 김혜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혜자는 "외국 관객들이 엄마를 보러오니깐 감독이 의도하는 바를 잘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바람 뿐이었다"면서 "실수하지 말고 잘 올라가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며 웃었다.

-'마더'가 주목할만한 시선으로 칸에 초청됐는데.

▶어떻게 보면 경쟁이 아닌게 서운하지만 하나님이 내가 경쟁을 싫어하니깐 비경쟁으로 보내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

-갈라 스크리닝이 끝난 뒤 상당한 박수갈채를 받았는데.

▶이곳에선 박수를 쳐주는 게 예의라고 하더라. 그런데 끊이지 않고 박수를 쳐주셔서 약간 다르다고 감지했다. 의례적인 게 아닌 것 같더라. 어제는 정말 큰일을 하나 치룬 것 같았다. 이곳에서 영화 완성본을 처음 보기에 떨리기도 했다.

-외신에서 영화와 연기에 대해 상당히 높게 평가했는데.

▶아주 피곤한데 통역을 해줘서 다 들었다. 봉준호라는 재능있는 감독이 몇 년전부터 기획한 작품으로 행복한 순간을 갖게 해주신데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오프닝에서 막춤을 추는데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던데.

▶감독이 여러가지 춤을 춰보라고 했다. 그런데 난 정말 춤을 못춘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이 여러 춤을 가르쳐줬다. 그래도 연기할 때는 너무 어색해서 모든 스태프들에게 함께 춤을 춰달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이상하게 내 눈에 아무도 안보이더라. 그냥 내게서 들려오는 음악을 표현했을 뿐이다. 정신 나간 상태에서 뭔가 들리는 느낌,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처럼 표현하고자 했다.

-봉준호 감독은 세세한 부분까지 지시하는데 충돌한 부분은 없나.

▶30번 넘게 다시 찍은 적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다시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만하면 됐는데 왜 그래 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봉준호 감독은 타성에 젖어있던 나의 내면을 깨버린 사람이다. 잠자고, 죽어있는 세포를 깨워서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조종한 느낌이다.

-아들의 친구 역인 진구와 성적인 관계가 있는 듯한 장면이 있는데.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드러내지 않고 사람들이 느끼도록 연기를 했다. 진구가 내 앞에서 웃통을 벗고 지나가는 장면이 무척 강렬했다. 남편 없이 사는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진구는 형편없는 아이지만 못난 아들의 친구이기에 고마운 존재고, 그렇기에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숨은 그림 같은 장면이다.

-아들과의 관계도 복잡하다. 집착에 가까운 애정인데.

▶아들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봉준호 감독이 '선생님, 아들은 배속에서 10달을 키워 내보낸 이성이죠'라고 하더라. 숙제를 줬다고 생각했다. 난 그런 부분에서 그리스 비극을 연상했다. 내가 맡은 엄마는 처음부터 눈이 불안하다. 이 사람은 세상이 불안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양말을 신고 자는 장면이 있다. 언제라도 뛰어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들이 눈앞에 안보여도 불안하고, 보여도 불안한 사람이다.

-아들 역인 원빈과 눈이 무척 닮은 것 같은데. 영화에서도 그렇게 보여지고.

▶봉 감독이 아들을 누구했으면 좋겠냐고 했을 때 원빈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사람이 눈이 굉장히 맑다. 이 나이가 되면 세상 더러움이 묻어날 법 한데 그런게 없다. 원빈과 일을 해본 적도 없지만 사진으로도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감독과 그런 게 통했다.

-작품에서 수많은 아들을 만났는데 원빈은 어땠나.

▶원빈이 이 작품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잘생긴 배우가 모자란 역할을 하는게 싫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얼굴이 어느 작품보다 좋았다.

-지금까지 표현했던 엄마와는 다른 지점이 있는데. 광기랄까.

▶엄마의 본질은 똑같다. 다만 처한 상황이 그렇게 만들 뿐이지. 봉준호 감독이 평범한 엄마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그런 상황을 만들어줘서 고맙다. 그동안 TV에서 이미지를 답습한 시나리오를 많이 제의 받았다. 나도 지루하고 사람들도 지루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할 기회가 없었다.
ⓒ17일 칸의 한 호텔에서 '마더'의 두 주인공 김혜자와 원빈이 취재진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과 '마더'를 함께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5년전 봉준호 감독이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특이한 엄마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꺼내고 너무 오래 시간이 걸려서 나한테 예전에 한 말 때문에 억지로 캐스팅을 하려 하지는 말라고 했다. 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저런 감독이 있네 라고 생각했다. 그런 재능있는 감독이 나를 놓고 구상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가 끝나고 바로 영화 촬영에 들어갔는데.

▶봉준호 감독과 제작자가 잊을만 하면 전화하고, 연극 하는데 찾아왔다. 그러면서 내 안에서 '마더'가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바로 할 수 있었다. 원래는 작품이 끝나면 1년 정도 다른 일을 한다. 감독은 다른 장면을 먼저 촬영할 테니 쉬라고 했지만 쉬란다고 쉬어지나.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서 보여 졌던 히스테리컬한 엄마의 모습이 극대화된 듯한 느낌도 있는데.

▶그런 점도 있다. 봉준호 감독이 내가 출연한 드라마 '여'를 인상 깊게 봤다고 하더라. 아기를 유괴해서 자신이 사랑으로 키우는 여인이 나오는 드라마다. 성공한 사업가인데 자신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서 인터뷰를 해도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는 여자다. 그래도 사진을 찍자고 해서 상당히 히스테리를 부리는데 그 장면이 인상 깊었다더라.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던 지점이 꽤 있었을 것 같은데.

▶엔딩 무렵 아들에게 뭔가를 보여줄 때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너무 힘들었다. 대본에는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한다,였다. 그래서 감독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해달라고 하더라. 봉 감독을 보고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들어가서 울고 말았다.

-'마더'가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은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내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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