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더'(감독 봉준호·제작 바른손)의 원빈은 작심한 듯 보인다. 아름다운 꽃미남으로서 여심을 흔들었던 이 배우는 4년만의 신작 '마더'에서 맘껏 망가지고 맘껏 화면을 누비며 변화를 알린다.
며칠은 안감은 듯 한 머리, 후줄근한 옷차림, 초점 없는 눈동자와 불안한 걸음…. 심지어 탁자에 침을 줄줄 흘려가며 어딘지 모자란, 바깥에 내놓는 것이 불안하기만 한 아들 도준을 그려냈다. 원빈은 영화를 통해 '더 이상 나를 꽃미남이란 수식어에 가두지 말라'고 선언하는 듯 보인다.
비중조차 크지 않다. 김혜자의 비중이 절대적인 '마더'에서 원빈은 작지만 중요하고 꼭 필요한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충실히 해낸다. 돋보이는 주연만을 고집하는 여느 배우들과는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새로이 시작된 그의 배우인생 2라운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말했다. "꽃미남이라는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배우로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을 뿐이다. 외모는 언제든 중요하지 않았다. 비중도 마찬가지다."
-2004년 '우리 형' 이후 무려 5년만의 영화다. 제대 뒤에도 공백기가 길었다.
▶그 사이에도 작품은 들어왔는데, 마음이 가는 작품이 없어 시간이 걸렸다. '마더'라는 작품을 보고는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공백을 깨는 시기였고, 저의 또 다른 시작이라는 느낌이 왔다.
-'마더'는 김혜자의 영화라 할 만큼 김혜자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했던 이유는?
▶그야 '마더'니까 당연한 일이다. 봉준호 감독님, 김혜자 선생님도 중요했지만 내게는 도준이란 배역 자체의 매력이 크게 다가왔다. 기존에 하지 않은 캐릭터였고, 배우로서 한 번 하고 싶은 캐릭터였다. 배우로서 그런 연기를 할 기회는 흔치 않다. 비중을 떠나 충분히 욕심이 나는 일이었다.
-도준은 '꽃미남 원빈'의 이미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역이다.
▶꽃미남? 그야 요즘 나오는 분들이 꽃미남이지…. 꽃미남이 되고 싶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배우로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개인적으로 컸다. 그게 욕심이었다. 꽃미남이란 평가는 감사하지만 그걸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극중 도준을 두고 '눈이 사슴 같다'는 대사가 나오지 않나.
▶그런 대사 들으면 닭살스럽고 민망하다. 그 대사처럼 비춰졌다면 더 민망했겠지만 그런 대사에도 불구하고 도준이는 한 번도 그런 모습을 안 보여주지 않나. 그 대사 다음 장면에서 술 취해서 탁자에 침을 흘린다.
-그 장면, 보면서 '헉' 했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었지 않나. 그렇다고 지금은 안 그러는 것도 아니고.(웃음) 특별히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편했다. 외모에 신경을 안 쓰고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외모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마더'에선 한없이 보호해야 할 것 같은 아들인데, 실제 원빈은 어떤 아들인가?
▶무뚝뚝하고 말 없고…. 누나들이 제가 할 말까지 다 대신하다보니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었고 자연스럽게 말수도 줄었다.(웃음) 원래 누나들이 잘 챙겨주니까 동생이 편하지 않나. 부모님께 걱정은 많이 안 끼치려고 했다.
-봉준호 감독, 김혜자라는 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부담도 컸겠다.
▶부담이 컸고 걱정도 많이 했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제 역할을 해야 할까 고민이 됐다. 믿음을 져버리지 말아야겠다, 누를 끼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그런 걱정을 깡그리 없애주셨다.
-어떻게? 봉준호 감독이 어떤 주문을 했는지 궁금하다.
▶늘 정확하게 디렉션을 하셨다. 또 배우가 준비해 온 연기를 존중해주셨다. '도준이는 이럴 때 어떨까?' 정도의 질문을 던지신 뒤 찍고 모니터를 보고 다시 수정하고 그런 과정을 거쳤다. 늘 그러셨다. 배우가 연기를 완성하는 거지 감독은 카메라 뒤에 있는 거라고.
배경이 도시가 아니라 산이나 들이라 심적으로 편했다. 그런 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세트처럼 갇힌 느낌이 아니라 더 자유로웠다. 그런 쪽을 더 좋아한다.
-김혜자와의 호흡은 어땠나? 평소에도 엄마라고 부른다던데. 영화를 보면 두 사람이 닮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촬영 끝난 뒤에도 엄마라고 부르고 엄마라는 마음으로 대한다. 선생님께서도 따뜻하고 맑게, 편하게 저를 대해주신다. 배우 같지 않고 정말 엄마 같았다.
작품을 하며 서로 닮아갔을 수도 있다. 감독님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눈이 닮았다는 얘기를 하더라. 아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셨고, 저도 엄마라고 생각하며 연기했기 때문에 외모보다도 느낌이 닮아가는 것 같다.
-'마더'로 62회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어떤 경험이었나?
▶배우로서 소중한 경험을 했다. 좋은 작품으로 그 곳에 간다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웠다. 신기하고 소중하기도 했다. 레드카펫에 선다는 것보다 상영이 끝난 뒤 해외의 관객들이 보내 준 진심어린 박수가 와 닿는다.
-칸에서 한 인터뷰에서 '이제부터가 배우생활 2라운드'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기존에 보호를 받거나 여린 역할을 했었다. 기존과 다른 역할로 공백기를 깬 첫 작품이기도 해서 그런 의미에서 2라운드라는 표현을 썼다. 지금은 누군가를 보호해주고 싶은 입장이다. '마더'에서 보호받는 아들로 정점을 찍었다면, 그 정점을 마지막으로 이제 뭔가 다른 걸 하고 싶다.
-어느덧 원빈도 30대가 됐다.
▶서른 넘어갈 때 쯤 뭔가 많은 생각들이 들더라. 지금은 30대가 된지 워낙 시간이 지나서….(웃음) 나이에 대해 크게 생각은 안 한다. 다만 예전보다는 마음을 좀 열게 된 것 같고 개인적으로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는 마음이 든다. 그냥, 살면서 후회할 일을 많이 만들지 말자고 했다. 주변에 좀 잘하자 이런 것도 있고.
-앞으로 하고 싶은 연기가 있다면.
▶지금까지 보호를 많이 받았는데 앞으로는 보호를 해주는 남자를 하고 싶다. 가족이든 여자든. 남자로서의 모습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멜로도 느와르도 액션도 좋다.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혹시 결혼 생각은?
▶일 해야지 무슨 결혼? 아직까지는 생각이 없다. 다만 언젠가 결혼해서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살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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