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지지 않는 남자' 설경구, 쓰나미를 만나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09.06.25 14:52
ⓒ송희진 songhj@


좀 변한 게 있을 줄 알았다. 만인의 연인 송윤아와 결혼을 했으니 이 남자, 최소한 면도라도 하고 다닐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했다.

사진촬영을 마치고 헐렁한 티로 갈아입은 채 턱하니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은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남자였다. 결혼 질문에는 "패스"를 외치면서도 "결혼했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난 나니깐"이라고 말한다.

설경구가 돌아왔다. 100억원이 투입된 재난영화 '해운대'에 주연을 맡았다. 설경구는 '해운대'에서 아내 없이 아이를 키우는 무뚝뚝한 남자를 맡았다. 친절한 말 한마디 못하지만 여자가 낑낑대며 들고 가는 무거운 짐을 쓱 하니 채가는 그런 남자, 영화 속 남자는 설경구와 많이 닮았다.

설경구는 "내가 연기를 했으니 지금까지 내가 다 짬뽕이 돼 있다"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심드렁한 척 하지만 영화 이야기를 할 땐 눈에서 빛이 난다. 설경구는 '해운대'를 하면서 처음으로 즐겁게 촬영하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박하사탕'을 시작으로 설경구는 지금까지 영화 속에서 스스로를 '다운'시키려 애썼다. 고뇌하려 했고, 힘들어했다. 그런 모습에 주위까지 긴장시켰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윤제균 감독이 현장에서 흥을 돋우고, 하지원이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에 설경구도 즐거워졌다.

설경구는 "기분을 '업'시키면서 연기하는 법을 후배들에게 배웠다"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부산 사투리로 연기를 하는 게 힘들었지만 그마저도 즐기게 됐다.

설경구는 송강호 김윤석 등 동년배 배우들과는 달리 아버지 냄새가 나지 않는 배우다. 알파치노가 그렇듯 그는 아버지 역을 맡아도 야생의 분위기가 흐른다. 결혼을 해도 그래서 그는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았다.

설경구는 "생활인 냄새가 안나긴 하죠"라면서도 "더 가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의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으니깐"이라고 말했다. '해운대'에서도 비슷하다. 그는 하지원의 고백에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 마침내 결혼 결심을 하게 되자 쓰나미가 몰려온다. 이 남자, 바뀌려니깐 큰 일이 벌어진다.

쓰나미처럼 앞과 뒤를 완전히 바뀌게 한 사건이 있나고 묻자 "20년 뒤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아직까지 자신을 질적으로 변화시킨 일은 없다는 뜻이다.
ⓒ송희진 songhj@

쓰나미 영화에 출연하는데 불안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외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해운대' 시나리오를 읽고 낄낄 댔지만 쓰나미를 어떻게 스크린에 담을 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그게 가능하냐"는 주위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여러 삶이 녹진녹진하게 들어있는 이야기에 반해 결국 '해운대'를 택했다. 지금까지 본의 아니게 영화를 끌고 가는 입장이었지만 이번에는 박중훈 엄정화 등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그에게는 '해운대'가 다르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박중훈 선배가 그러더라구. 촬영 내내 분위기도 좋고 즐거웠다고. 결과까지 좋으면 26년 영화 인생 중 몇 손가락에 꼽을 것 같은 작품이라고 하시더라구. 나도 마찬가지죠."

설경구의 차기작은 연쇄살인범을 쫓는 부검의의 이야기를 그린 '용서는 없다'다. 제천과 군산을 오가며 현재 촬영 중이다. 여전히 강한 남자다. 당분간 아버지 냄새, 생활인 냄새와는 거리가 멀듯 하다.

"지방에서 살다보니 신혼이랄 것도 없다"는 설경구. 이 남자가 달라질까, 행여 길들여질까. "우리 한 번 지켜봅시다"라고 능청스레 답한다.

능청스러움이 얄미워 다른 배우들처럼 해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고 싶지는 않냐고 물었다. 그는 '박하사탕'이 칸영화제에 초청돼 신인 시절 칸에 간 뒤 영 해외 영화제와 인연이 없다.

그러자 설경구는 '오아시스'와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가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됐지만 멀어서 못갔다고 눙쳤다. 그러면서 "영화제 가려고 영화하는 게 아니니 인연이 닿으면 갈수도 있겠지"라고 말했다. 뭘 물어도 그는 여전했다.

천연덕스럽고, 능청스럽고, 때론 뻔뻔하고 더러는 냉혹한 남자. 아무래도 이 나쁜 남자의 매력은 당분간 스크린에서 계속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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