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를 위해 자신을 버린 김대희의 재발견

[이수연의 클릭!방송계]

이수연   |  2009.09.10 10:11


초등학생이 대학생 되고. 핫한 새물건이 구닥다리가 돼서 뒷전으로 밀리고. 입사 초년병은 직급있는 간부가 되고. 자... 이 모든 것들은 10년 정도 변하면 생기는 일들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잖은가. 그만큼 10년은 처음 것을 색다르게 변화시키는 긴 시간임에 틀림없다.

갑자기 10년 타령을 하는 이유는 바로 10주년 된 프로그램 ‘개그콘서트’ 때문이다. ‘지난 주 일요일에 개.콘’10주년 특집 방송을 했다. 10이란 숫자는 글씨로 쓸 때 후딱 쓸 수 있는 것이지, 한 프로그램을 10년 동안 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일단 새로운 트렌드에 민감한 시청자들이 질리지 않아야 하는 건 기본이요, 그에 따른 시청률도 계속 보장되어야 할 것이요, 그러러면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들은 끊임없이 연구를 해야하니 그게 글씨 쓰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거다.

10년 전 ‘개.콘’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 난 KBS 예능국의 다른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당시 ‘개.콘’에 대해서 같은 예능국에서 오다가다 들었던 얘기는 이랬다. 대학로에서 공연하던 공개 콩트를 방송 프로그램으로 가져와서 센세이션하다, 하지만 대부분 의견들은 ‘공개 코미디라는 게 과연 성공할 수 있겠어? 잠깐 반짝이겠지’하는 비평들이었다.

그랬던 그 프로그램이 10년이나 롱런하는 저력있는 프로그램이 됐다. 그 10년 동안 ‘개.콘’에서 쏟아진 코너들이 수백개요, 남녀노소 신나게 따라한 유행어들도 수백개요, 거기서 나온 스타들도 한둘이 아니요, 그곳을 거쳐간 PD며 작가도 수십명이다. 이걸 다시 정리해보면, 그 10년 동안 코너며, 유행어며, 코미디언들이며, 제작진들까지 변화무쌍하게 교체(?)됐다는 것인데... 그 안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대희이다.

김대희의 코미디언 역사는 ‘개.콘’과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프로그램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 신인이었던 그는 어찌보면 최대의 수혜자였다. ‘개.콘’의 성공과 함께 신인으로선 빠른 성공을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시작이 콩트코미디어서일까?

‘개.콘’을 비롯한 콩트 코미디에선 빛을 발했지만, 소위 말하는 예능 버라이어티에선 별로 눈길을 끌지 못했다. 밤바야~~~를 시작으로 한 심현섭은 타방송사 MC를 비롯해서, 드라마에도 살짝꿍 얼굴을 비췄으며, 갈갈이 패밀리의 박준형은 엔터테인먼트의 CEO로 이름을 날리고 있으며, 정형돈 유세윤은 타방송사의 예능 버라이어티 입성에 성공했고, 이수근은 1박2일로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으며, 신봉선은 타고난 입담과 순발력으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여자MC 자리를 꿰차는 행운을 누리며 성공한 다른 동료들과 다르게 말이다.

그는 10년 동안 매번 핫하게 떠오르지도 않았으며, 유행어를 팍팍 날리지도 않고, 그저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동안 묵묵히 ‘개.콘’에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10주년 특집 방송 때 그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개그콘서트 10주년 특집 방송’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날 방송은 총천연색으로 온갖 보석이 모여있는 듯 화려했다. 유재석, 신동엽, 강부자, 소녀시대, 이문식, 남희석, 임창정, 정형돈, 노홍철 등등의 스타들이 깜짝 등장했으니 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시리라. 하지만, 그 화려한 스타들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김대희였다. ‘시청자가 뽑은 다시 보고싶은 코너 1위’로 ‘대화가 필요해’가 뽑혔고, 그는 신봉선, 장동민과 함께 그 코너를 부활시켰다. 그리고, 시청자가 뽑은 1위 코너인만큼 자기 몸을 다 불살랐다. 꽤 오랜 시간 길렀을 자기 머리카락을 즉석에서 삭발하면서 말이다.

말이 쉬워 ‘삭발’이지 그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머리카락이라는 게 아무리 자라나는 물질이라고 하더라도 자를 땐 어찌나 미련이 남는지... 오죽하면 여자들은 앞머리 자르는데도 자를까, 말까 수십번 고민을 할까. 하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일명 바리캉으로 고속도로 같은 길을 휘휘 내며 자기 머리를 밀어버렸다 이 말이다.

영화배우 강수연이 ‘아제아제바라아제’에서 삭발을 하며 화제가 됐고, 명세빈은 초코로 바른 파이 광고에서 삭발을 해서 하루아침에 스타로 떠올랐으며, 김정은은 ‘종합병원’이라는 드라마에서 삭발을 하고 나와 귀여운 신인으로 떴지만, 오호 통제라~ 2~3분짜리 콩트 코너에서 보여준 김대희의 삭발 장면은 너무 짧았다. 눈 한번 깜짝하거나 잠깐 화장실 한 번 갔다올 동안 지나갈 정도로 짧은 장면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이라면 누구나 ‘김대희 정말 프로답고 멋있었다.’라고 생각할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삭발투혼’이니 뭐니 하며 호들갑떨지도 않았다. 그저 시청자들에게 3초짜리 웃음을 주기 위해서 깜짝 희생을 했을 뿐이다. 그 모습에서 김대희를 재발견했다.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라면 ‘이 한 몸 아깝지 않게 날리는 개그 투혼’을 말이다.

‘스타’란 무엇일까? 광고 많이 찍는 사람? 한류 바람 타고 해외에서 인기 많은 사람? 아니면 돈 많이 받는 사람? 그렇다. 이 모든 게 다 ‘스타’ 맞습니다~ 맞고요~다. 하지만, 진정한 스타란? 자기의 직분(배우, 가수, 코미디언 등등)에 맞는 모습을 시청자에게 멋지게 선사할 수 있는 사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개그콘서트 10주년 방송에서 김대희의 삭발 투혼(?)은 진짜 스타다운 프로의 모습이었다.
<이수연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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